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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짧고 짜릿해

 

글 최지혜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2014~2021)> 공저. 소비자 조사, 트렌드 분석 프로젝트 수행 및 소비자 행동에 관해 연구한다.

 


 

“가로로 보면 비극, 세로로 보면 희극” 2017년 발표된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뉘여 영상만 감상하면 재미없지만, 휴대전화를 세워 댓글을 함께 보면 재미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깡’은 발매 당시 인기가 높지 않았으나 Z세대가 댓글놀이를 통해 소환해 차트에 재등장시킨 사례다. 그러니까 ‘깡’ 열풍의 핵심은 ‘댓글’이다.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특한 댓글을 보기 위해 영상을 클릭한다. 제국의 아이들의 ‘후유증’ 무대영상과 드라마 ‘야인시대’ ‘천국의 계단’ 등 다양한 과거 컨텐츠가 일명 ‘댓글맛집’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유튜브 ‘깡’ 뮤직비디오 영상에 달린 댓글 일부 / 출처 유튜브 캡처

 

이러한 현상은 밈(meme)의 시대를 의미한다. 밈의 핵심은 자발적 참여, 강력한 재미, 짧은 생명이다. 죽었던 컨텐츠도 소비자에게 선택되어 부활하고, 선택된 컨텐츠는 짧게 소비되며, 또 다른 컨텐츠가 소비자에 의해 소환되는 ‘완벽한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밈 현상은 특정 컨텐츠에만 그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짧은 주기로 새로운 자극을 쫓아다니는 현상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브랜드 소비 주기가 짧아졌다. 특정 브랜드에 장기적으로 로열티를 갖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나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이색적인 자극을 추구한다. 따라서 마케팅도 스테디셀러를 강조하기보다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소비자의 호기심을 유도하고 있다. 10·20세대에게 컨셉맛집으로 불리는 이니스프리는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색조화장품을 다양하게 변주해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1~4개월에 한 번씩 ‘이달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하거나, 제주에서 영감을 얻은 색조제품 ‘제주컬러피커’ 시리즈를 연초에 출시하는 식이다. 명절, 홀리데이 에디션 등 시즌 컬렉션도 수시로 출시된다. 핵심은 다양한 한정판을 짧은 주기로 내놓아 소비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데 있다.

 

(좌) 차병원 기업 차바이오F&C 브랜드인 ‘세러데이스킨’. 미국을 중심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일부 제품을 미니 사이즈로 출시한다. (우) 아모레퍼시픽이 진행하는 브랜드 ‘레어카인드’의 미니앨범 투고 블러셔. / 출처 인스타그램 @Saturday_skin @rarekind_official

 

용량을 줄이고 가격 부담을 낮춰 다양한 제품을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케팅도 흥미롭다. ‘더샘’은 파운데이션을 출시하며 휴대가 간편한 미니 사이즈 제품을 함께 선보였으며, ‘레어카인드’는 인기 색조 아이템을 3분의 1 크기로 줄여 내놓았다. ‘세러데이스킨’ 역시 베스트셀러 아이템을 2분의 1 사이즈로 출시해 어필하고 있다. 싫증을 빨리 느끼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상 소용량 미니 사이즈 열풍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테디셀러를 변주해 스핀오프로 출시하는 사례도 주목해야 한다. 오리온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초코송이는 버섯머리 부분을 흰색으로 바꾼 하양송이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초콜릿 부분만 떼 제품을 출시하겠다고 예고 포스팅해 초코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SNS와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샌드위치 브랜드 써브웨이는 스포츠 브랜드 휠라와의 협업으로 독특한 의상 라인업을 선보였고, 과자 브랜드 해태는 캐주얼 의류 브랜드 폴햄과 함께 맛동산 콜라보 라인을 출시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이종 콜라보레이션 출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계속되는 브랜드 간의 이색 콜라보 열풍. (좌) 써브웨이&휠라 (우) 해태&폴햄 / 출처 휠라, 폴햄 공식 홈페이지

 

짧고 강렬한 소비문화를 이끄는 주역은 Z세대다. 이들은 전 세대보다 부유하게 태어나 기대 수준은 높지만, 경기침체와 고용 불안정으로 불안은 더 크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평범한 일상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정체된 현실을 탈피하고자 소비에서만큼은 짜릿한 재미를 즐기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가 추구하는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에 대한 반감도 내재되어 있어 가볍고 재미있는 것에 대해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Z세대는 태어나며 바로 디지털 기술을 당연하게 접하며 자란 인류 첫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넘어선 ‘디지털 보헤미안’.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혼재된 환경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이 생활의 중심 그 자체다. 이들은 커뮤니케이션, 쇼핑, 여가 등 일상 전반에서 모바일을 활용한다.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는 세대로 짧은 컨텐츠를 선호하며, 집중적으로 즐기고 바로 다른 컨텐츠로 갈아탄다. 이들은 유행과 유행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유연하고 빠른 이동에 익숙하다.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컨텐츠뿐만 아니라 소비생활에서도 유행 아이템을 짧게 소비하고, 바로 다른 유행으로 옮겨 가는 데 익숙하다.

빠르고 자극적인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Z세대 젊은이들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젊은 세대의 트렌드는 다른 세대로 전파돼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숏케팅 트렌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짧은 주기로 짜릿한 재미를 원하는 Z세대가 증가함에 따라 기업도 이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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