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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팬더스트리, 누구보다 뜨겁고 예민한

 

글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팬더스트리’가 주목받고 있다.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팬(Fan)과 산업(Industry)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꽤 흥미로운 울림을 준다. 최근 팬더스트리를 유행시킨 거대 팬덤의 중심에는 이제 ‘세계 속의 케이팝’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아이돌 그룹들이 있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인종, 국적을 불문한 이들의 사랑과 응원이 흘러넘친다. ‘‘오빠’를 외치는 여성 팬’을 부르는 멸칭이었던 ‘빠순이’가 한국 최초의 아이돌 그룹 H.O.T 등장 이후 25년 만에 한 산업의 당당한 기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빠순이가 팬덤이, 팬덤이 팬더스트리가 되는 결정적인 역할에는 그룹 BTS와 팬덤 아미(A.R.M.Y)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아미는 이제 아이돌 그룹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BT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란성쌍둥이 같은 존재다. 가수와 팬 사이의 일체감이 유독 큰 것으로 유명한 케이팝 신 안에서 BTS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아미가 있고, 아미가 있는 곳에는 늘 BTS가 있었다.

 

(좌) BTS를 새겨 넣은 응원봉 등의 MD (우) 전 세계 50개 국가에서 출시한 맥도널드 'THE BTS' 세트

 

2021년 BTS는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최장 기간 1위를 해냈다. 또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시상식 중 하나인 AMA(American Music Awards)를 대표하는 올해의 음악인 상을 받았다. 동시에 아미는 무대 위 BTS가 흘린 땀과 노력만큼, 아니 가끔은 그들보다 더 뜨겁게 달렸다. BTS의 미국 내 인지도가 아직 미미하던 무렵 50개 주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과 함께 BTS의 노래를 신청한 미국 아미들의 ‘@BTSx50States’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영어 가사가 아니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대중에게 한국어로 부르는 이들의 노래를 지속적으로 노출한 결과, 라디오 방송 점수 비중이 30~40%에 달하는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에서 BTS 순위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역사의 시작이었다.

 

미국 내 50개 주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 노래 선곡을 신청하는 BTSx50states 프로젝트. 아미(방탄소년단 팬덤)가 미국 대중에게 BTS 노래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진행했다. / 출처 btsx50states.com

 

이와 같은 팬덤의 단체 행동은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한 공동구매, 각종 차트나 시상식에서의 선전을 위한 투표 독려, 음원 차트 성적을 위한 스트리밍 총공(총공격)을 비롯해 이미 산업 구조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충성스러운 팬은 동시에 구매력이 뛰어난 소비자다. 응원봉부터 아이돌의 사진과 이름, 캐릭터를 이용한 각종 MD가 날개 달린 듯 팔려 나간다. 국내에서는 일종의 상식처럼 여겨져 온 이러한 팬덤 기조는 BTS 붐을 타고 전 세계 케이팝 팬덤으로 뻗어 나갔고, 심지어는 케이팝이 아닌 다른 분야까지 가지를 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트로트 스타에서 인기 뮤지컬 배우, 심지어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팬이 모이는 곳에 돈과 화제가 모인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했다. 팬더스트리의 탄생이었다.

 

이렇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단하게 다져진 아이돌 팬덤의 화력은 팬데믹에 맞춰 발 빠르게 성장 중인 IT 산업과 결합하며 산업 내부의 색다른 터닝 포인트를 쉼 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흥행이 대표적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리슨’, 하이브의 ‘위버스’, NC소프트의 ‘유니버스’가 독보적이다. 이들 플랫폼은 팬덤을 주요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외에는 각자 조금씩 다른 목적을 추구한다. ‘리슨’의 주력 상품은 자신이 구독하는 아티스트와 1대 다수 방식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디어 유 버블’이다.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서비스는 2021년 1분기에만 매출액 89억 원, 영업이익 32억 원을 올렸다. SM은 ‘버블’의 흥행 덕분에 2021년 1분기 자회사 합산 영업이익 31억 원을 기록하며 2016년 이후 이 분야 첫 흑자를 기록했다.

 

(위) SM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리슨' (아래 좌부터) NC소프트의 '유니버스', 하이브의 '위버스', 구독하는 아티스트와 1대 다수 방식으로 소통하는 '디어 유 버블' 서비스. / 출처 리슨 홈페이지, 유니버스 홈페이지, 위버스 구글플레이, 리슨 어플

 

한편 하이브의 ‘위버스’는 규모로 압도한다. BTS라는, 지금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IP를 보유한 저력에 힘입어 국내 케이팝 스타는 물론 미국의 저스틴 비버나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팝 스타까지 영입해 화제를 모았다. 2015년 서비스 개시 이후 인기 아이돌 가수들의 실시간 라이브 방송으로 전 세계 아이돌 팬덤을 집합시킨 네이버 브이 라이브와의 합병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비교적 후발주자인 NC소프트의 ‘유니버스’는 탄탄한 자금력을 활용해 서비스 공개 초기 몬스타엑스, 더 보이즈, 강다니엘, 오마이걸 등 팬덤이 큰 케이팝 그룹을 다수 영입했다. 오픈을 기념한 무료 콘서트 ‘유니-콘(UNI-KON)’을 개최하는 등 새로운 컨텐츠 개발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체가 아닌 게임 회사가 만든 서비스로서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NC소프트의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에서 개최한 무료 콘서트 '유니-콘(UNI-KON)' / 출처 클렙

 

대형 팬덤이 가진 커다란 영향력에 주목하는 팬더스트리 산업은 앞으로도 한동안 화제의 중심에 설 것이다. 고만고만한 즐길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열광적인 팬덤이 내뿜는 에너지는 화제성이나 상업적인 면 모두에서 특정 컨텐츠의 힘이자 또 다른 개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높은 충성도로 해당 아티스트의 홍보는 물론 기획사 역할까지 자처하는 케이팝 팬덤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은 단지 음악계뿐만이 아닌 팬덤 경제에 관심 있는 누구나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가장 뜨거운 용광로다.

 

그러나 용광로는 뜨거운 만큼 위험하다. 무엇보다 이 산업의 모든 것이 ‘사람’을 주요 원료로 삼는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사람’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터지고, 그렇게 발생한 리스크는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을 이탈하게 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산업의 특성상 국제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들을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면 누구보다 쉽게 팬에서 안티로 돌아서는 팬덤의 특징도 잊어서는 안 된다. 팬덤이란 잘 사용하면 약이지만, 섣불리 썼다가는 독이 되는 특수 물질과도 같다. 팬더스트리의 유행 속 ‘산업’에 쏟아지는 유례없는 관심만큼 ‘팬’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만 흔들리지 않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무엇도 예측하기 힘든 곳에서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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