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노성산 / 샌드박스네트워크 데이터랩에서 데이터 분석 및 개발, 크리에이터 경험(CX)을 총괄한다. <뉴미디어 트렌드 2022> 공저.
넷플릭스의 2021년 국내 결제액은 약 8,809억원으로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출처 와이즈앱).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월 결제액이 처음으로 800억원을 넘었는데 그 배경에는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 <오징어 게임>이 있었다. 끊었던 구독도 다시 하게 만드는 힘, 바로 오리지널 컨텐츠다. 오리지널 컨텐츠는 일반적으로 플랫폼이나 채널 사업자가 자체 제작하는 독점 컨텐츠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방송 채널과 OTT에 동시 방영하는 컨텐츠나 유튜브에 독점 공개되는 대형 컨텐츠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달라지는 컨텐츠의 본질
이름 때문인지 오리지널 컨텐츠에서 독점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잘 생각해보면 컨텐츠는 예전부터 독점적이었다. 드라마는 특정 채널에서만 볼 수 있었고, 영화도 일정 기간 영화관에서만 개봉했다. 지금 오리지널 컨텐츠가 주목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컨텐츠의 주인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광고주가 제작비를 부담했던 이전과 달리 OTT 플랫폼은 구독료가 제작비의 원천이다. 어떤 컨텐츠를 촬영할지의 결정 권한은 플랫폼뿐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
OTT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되면서 오리지널의 파급력 또한 커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공개 28일 만에 전 세계 1억 4,200만 가구가 시청했으며 이는 이전에 상상하기 힘든 속도와 규모다. 파급력 있는 오리지널 컨텐츠는 단순히 영상 시청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력한 IP(Intellectual property)가 되어 팬덤을 형성하며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만들어 낸다. 넷플릭스가 성공한 오리지널 컨텐츠를 바탕으로 커머스를 시도하고 게임을 만드는 이유다. OTT 플랫폼의 성패를 쥐고 있는 오리지널 컨텐츠, 그중에서도 흥행하는 오리지널 컨텐츠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세계관이 바탕이 된 이야기
보통 세계관이라고 하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거대한 가상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작은 세상도 충분히 세계관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직업 세계관이다. 유튜브에서 멧돼지 사냥꾼, 카지노 딜러, 덤프트럭 기사 등 특이한 직업군을 인터뷰한 영상의 평균 조회수는 500만 회에 달한다. 독특한 직업이라는 배경에 종사자들의 생생한 디테일이 더해지면 작지만 색다른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여기에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 바로 오리지널 컨텐츠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 관련 유튜브 컨텐츠에서 출발해 왓챠의 오리지널 컨텐츠가 된 <좋좋소>가 대표적인 예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에서는 웹툰 기반의 컨텐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스위트홈> <경이로운 소문> 등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컨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웹툰의 세계관이 통하는 데에는 그림이라는 자유로운 표현 수단도 한몫했지만, 매주 연재하면서 시청자들과 주고받은 피드백이 컸다. 즉 웹툰의 세계관은 작가 혼자가 아니라 독자와 팬덤이 함께 쌓아 올린 것이다.
오리지널 컨텐츠에서 세계관이 중요한 이유는 스토리텔링의 당위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스토리를 더 증폭시켜주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는 평범한 장면도 어떤 세계관이냐에 따라 기쁨이 되기도, 추억이 되기도, 슬픔이 되기도 한다.
현실을 담아내다
우리의 삶을 실감 나게 묘사한 하이퍼 리얼리즘 또한 대세 컨텐츠다. 직장인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시작해 출판으로 이어졌고, 유튜브에서는 <피식대학> <빵송국> <숏박스> <짧은 대본> 등이 생생한 생활밀착형 컨텐츠로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D.P.>도 헌병과 군대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전 세계 시청 순위 상위권을 기록한 바 있다.
하이퍼 리얼리즘 컨텐츠의 핵심은 디테일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사람과 집단, 관계, 감정의 변화와 반응, 말투와 행동 전반에 걸친 리얼리즘은 디테일할수록 공감대를 건드린다. 작은 소품, 복선 하나, 대화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 시청자들은 컨텐츠의 진정성을 느끼는 순간 팬이 된다. 현실을 오롯이 담아낸 하이퍼 리얼리즘은 컨텐츠 홍수 시대에서 분명한 차별화 포인트다. 흉내 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진정성 전달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생각을 이어가는 컨텐츠
최근 성공한 오리지널 컨텐츠를 보면 대중의 변화를 긴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녹여낸 것이 많다. <오징어 게임>은 팬데믹 버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중요한 흥행 요소 중 하나였다. <솔로지옥>은 기존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자의 노출이 많았지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바디프로필이 유행하며 부정적인 여론은 일지 않았다.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은 달라진 이성 선호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신감과 성취욕이 넘치는 알파걸이 보편화된 시대에 신데렐라 스토리는 더 이상 성공 공식이 아니다.
대중의 취향과 흐름을 정확히 반영한 컨텐츠는 시청자의 2차 창작물로 이어진다. 커뮤니티의 짤방, 유튜브의 리뷰 컨텐츠, 명대사 모음, 심쿵 하이라이트 등이 커뮤니티 곳곳에 퍼져나가며 잠재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바이럴 마케팅된다.
뉴미디어 시대가 되며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컨텐츠의 주도권이 자본가에서 대중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대중의 생각을 이어가고,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열광할만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오리지널 컨텐츠뿐 아니라 브랜딩, 마케팅,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자, 이제 또 어떤 컨텐츠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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