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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엔데믹 이후의 리테일 테라피

 

글 황지영 /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UNCG) 마케팅 전공 교수. 저서 <리테일의 미래> <리:스토어> 외.

 


 

리테일 테라피는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반기를 드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순리적 경험이라 볼 수 있다. 판매 공간을 줄이고 고객에게 휴식과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리테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엔데믹 시대, 리테일 테라피는 보다 더 대규모로 자연을 흡수해 제공하는가(하이퍼리얼리즘)와 볼거리와 창의성으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해 쇼핑과 예술, 휴식의 경계를 허물고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고객의 감정부터 소비까지

얼마 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운영하는 제네시스 하우스를 찾았다. 1층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의 전시장도 인상적이었지만 2층에 마련된 한국의 고유한 차를 즐기는 공간과 궁중요리를 바탕으로 한 식사를 경험할 수 있는 레트로랑 온지음(Onjium)은 독특했다. 특히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통창 너머의 강가와 노을은 당시의 지쳤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는 듯했다. 이번 여름 한국 방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바로 콘서트홀 콩치노 콩크리트에서다. 1만여 장의 LP, 억대가 넘는 고급 스피커가 뿜어내는 소리, 주인장의 설명과 함께 음악을 경험하는 그 자체도 힐링이었지만, 방문객들이 강가와 일몰이 보이는 창을 바라보는 장면 또한 눈길을 끌었다. 입장 시 제공되는 물 이외에는 음료를 마실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2시간 동안 음악은 물론 층마다 각기 다른 뷰와 각각의 공간에서 주는 경험에 심취한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위) 차량 전시, 레스토랑, 라이브러리, 공연장, 테라스 가든을 포함한 복합 문화 공간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 (아래) 음악감상을 위한 공간 콩치노 콩크리트 / 출처 genesis.com @concino_concrete @archilifecom

 

이처럼 리테일 공간과 소비를 통해 휴식과 정서 완화를 할 수 있는 경험을 리테일 테라피라고 한다. 특별한 서비스, 체험을 제공해 소비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리테일 테라피는 소비를 통한 정서 완화라는 기능이 함께 한다. 소비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는 것(예를 들어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쇼핑을 통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그리고 보상적인 감정(예를 들어 자신의 성취를 위해 스스로 선물로 보상해 즐거워지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더 거대하게, 경계를 허무는 공간들

지난했던 3년 간의 팬데믹을 지나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다시 활동 반경이 넓어진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은 리테일 테라피 맥락의 경험/공간 마케팅을 강조하고 있다. 리테일 테라피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첫째, 휴식을 테마로 한 리테일 테라피는 보다 더 거대해지고 자연을 한층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마치 식물원을 방문해 커피와 빵을 즐기는 셈이다. 서울 근교의 경우 파주 더티트렁크를 시작으로 김포 글린공원과 일산 포레스트아웃팅스, 양주의 오랑주리 등 대형 카페가 속속 들어섰는데, 언제 방문해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그만큼 자연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커졌고 리테일러들은 실내 매장에 자연을 얼마나 실감 나고 웅장하게 구현하는가 즉,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을 두고 경쟁하는 양상이다.

 

 

물론 도심 속 리테일 테라피 사례도 있다. 성수동에서 팝업 매장으로 선보인 나뚜루 시크릿 가든은 작은 공간이지만 브랜드가 추구하는 ‘삶의 여유, Relax’라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하기에 충분했다. 나무목재와 천장 가득한 풀, 바닥에 놓인 나무껍질 등은 촉각을, 재즈음악과 함께 떨어지는 물소리로 청각을, 그리고 바닥에서 나오는 안개는 시각을 자극해 자연의 숲 속 느낌을 경험케 했다.

 

(위) 탬버린즈 삼청점 플래그십 스토어. 소파, 고양이 등 일상적 장면을 캔들로 구현한 전시 공간 (아래) 논밭, 허수아비, 농기구 등 수확에서 영감 받은 탬버린즈의 하베스트 퍼퓸 비누 체험 공간 / 출처 tamburins.com

 

둘째, 쇼핑과 예술, 휴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리테일 테라피로 소비자의 시간을 점령한다. 퓨처 리테일을 표방하는 젠틀몬스터의 하우스도산에 마련된 다양한 디지털 아트와 건물 잔해, 6족 보행 로봇, 흔들리는 갈대를 형상화한 키네틱 오브제가 그 예다. 탬버린즈 삼청동 플래그십 매장은 1~2층만 상품 판매 공간이고 3~4층은 양초로 만든 고양이와 먹의 전시 공간으로 제공한다. 지난 5월에는 비누 출시를 기념해 성수동에서 하베스트 퍼퓸 팝업 전시를 진행했는데 이는 ‘비누를 농사지어 수확한다’는 창의적인 브랜드 세계관을 형상화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유도했다. 이렇듯 쇼핑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기에 오히려 고객을 매장으로 유도할 수 있고 그들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공간, 브랜딩, 판매까지 연결

이렇듯 진화하는 리테일 테라피는 오히려 디지털로 이동하는 시대에 진가를 발휘한다. 디지털 만능 시대라지만, 오프라인 공간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체험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이라면 과거의 오프라인 경험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새로운 감각으로 재단장해야 한다. 즉, 판매보다는 ‘경험’에 방점을 찍는 리테일 테라피는 리테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며 판매 공간을 줄이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방문과 체류, 그리고 SNS를 통해 자발적인 공유/확산을 촉진해 궁극적으로 브랜딩과 판매까지 연결하는 전략이다.

 

미래의 리테일 테라피는 어떤 모습일까? 3~5년 후의 리테일 테라피는 AR/VR을 통해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현재는 공간에서의 경험이 리테일 테라피의 중심이지만 애플과 메타의 적극적인 행보로 앞으로는 가상환경 안에서도 가능한 새로운 리테일 테라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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