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주영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ARENA Homme+> 부편집장.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숏폼 컨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완성도보다 재미와 정보에 더 치중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숏폼 컨텐츠가 은밀히 구축하려는 또 다른 세상이다. 그건 바로 정보를 소비하게 만들거나,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교두보로서의 기능이다.
MZ세대의 짧은 이야기
필자는 X세대다. 나에게 컨텐츠 내러티브(스토리)란 ‘기승전결’ 형식으로 구조화된 완결된 형태다. 하지만 시대는 급변해 장황한 내러티브보다는 짧디짧은 컨텐츠 속에서 재미를 추구하게 돼버렸다. 이게 다 신인류라 호칭해도 무방한 밀레니얼 Z세대(이하 MZ세대)의 등장 때문이다. 최근 대중문화 및 라이프스타일 측면에서 트렌드라 칭해지는 많은 특징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MZ세대는 동시대 소비문화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나와 같은 세대 구성원은 다이얼식 전화기, 버튼식 전화기,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 시티폰, PCS, 모바일 등의 순차적 변화를 겪었다. 물론 이런 스마트한 변화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단지 단계별로 적응해나가는 일종의 학습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MZ세대에게 현재의 테크놀로지는 학습이 아닌 선천적이다. 이들은 날 때부터 모바일, 태블릿을 통해 컨텐츠를 소비해온 세대다. 따라서 긴 호흡의 이야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습득할 정보가 무한한 세상에서 하나의 컨텐츠에 오래 집중하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오늘을 ‘숏폼 컨텐츠 전성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영화도 보고 TV 드라마도 본다. 도드라지는 특징이 그렇다는 말이다. 유튜브 컨텐츠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기존 컨텐츠 시장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아니, 벌써 넘어섰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 세대는 어느 플랫폼에서 음악을 들을까?” 각양각색의 답변이 나왔다. “멜론, 네이버뮤직, 애플뮤직 등.” 정답은 유튜브다. 정보 공유의 장이 된 셈이다. 그랬던 유튜브는 이제 정보의 홍수로 몸살을 앓을 만큼 거대해졌다. 개그맨보다 재미있는 유튜버가 등장했고, 그 어떤 전문가보다 전문적인 유튜버도 나타났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포털 기업들도 자신들의 영상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제 집에서 가족이 TV 앞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하나의 컨텐츠를 공동으로 시청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컨텐츠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며 선택할 개체가 증가한 만큼 컨텐츠 시청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사로운 행위가 됐다. 더욱이 내러티브보다는 ‘짤’ ‘밈’ 등으로 표현되어 온라인상에서 부유하는 짧은 컨텐츠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제 극장과 TV보다 더 안락하고 완벽한,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이 전 국민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숏폼 전성시대
MZ세대는 소비라는 측면에서 효율성을 추구한다. 때문에 몇 초에서 10분 내외로 구성된 숏폼 컨텐츠가 각광받는 건 당연하다. 2020년 1월 개최된 CES 2020의 개막 기조연설자 제프리 카젠버그(전 드림웍스 CEO)는 ‘퀴비(Quibi)’를 공개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이 플랫폼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같은 유명 감독이 연출하고 리즈 위더스푼, 덴젤 워싱턴과 같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업로드할 것이라 했다(지금 그런 컨텐츠가 올라와 있다). 그런데 60~90분이 아닌 6~10분짜리 작품이다. 바야흐로 모바일이라는 기술 속으로 촬영, 유통, 소비라는 컨텐츠의 모든 과정이 편입되었음을 반증하는 순간이다. 이제 숏폼 컨텐츠는 21세기라는 시대에 걸맞은, 훗날 역사에서 이것이 컨텐츠라고 정의할지도 모르는 대안이 아닌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 속에 ‘카카오 TV’라는 채널이 개국했다. 그 속에서 개그맨 이경규는 자신의 나무위키를 뒤적이며 너스레를 떤다. 이효리가 모바일 카메라, 메신저 등을 통해 일상다반사를 노출한다. 노홍철과 딘딘은 주식계좌를 개설하고 실제 거래를 한다. 대부분 1~3분 내외 컨텐츠들이다. 익숙한 가로화면 비율로 촬영된 컨텐츠도 있지만, 낯설지만 익숙해질 세로 비율 컨텐츠도 있다. 네이버도 ‘네이버 NOW’를 통해 유사한 형태의 컨텐츠를 송출해왔다. 방금 필자는 민호와 피오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온 참이다.
숏폼 컨텐츠라는 사전적 정의에서는 카카오 TV의 그것들이 더 적합해 보인다. 네이버는 오히려 라이브 방송에 가깝기 때문이다. 카카오 TV 속 숏폼 컨텐츠는 유튜브 컨텐츠와 넷플릭스, 왓챠 등의 OTT(Over The Top) 컨텐츠 사이에 위치해 보인다. 아무나 컨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할 수 없다는 게 유튜브와의 차이다. 그렇다고 지극히 완결된 서사 구조로 조금은 긴 호흡의 시리즈, 영화로 빼곡하게 채워진 OTT와도 다르다. 숏폼 컨텐츠를 시청하며 그간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고전적 내러티브를 기대하면 안 된다. 사실 현재의 숏폼 컨텐츠는 뭔가를 하려다 만듯한, 그래서 허전한 느낌이 더 강하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메신저 대화 내용만 보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시쳇말로 ‘대체 이게 뭐야?’라는 의문을 남길 때가 많다는 이야기다.
숨겨진 전략을 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폼 컨텐츠만이 가진 장점이 꽤 많다.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컨텐츠 시청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출퇴근길 잠시, 집에서도 잠시. 그게 전부다. 그렇게 할당된 짧은 시간에 적합한 게 바로 숏폼 컨텐츠다. 이들은 만듦새에 있어 기존 제작방식과 다르기에 아직 서투르다. 아마 점차 개선될 거다. 이 짧은 컨텐츠 속에 많은 것들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쩌면 완성된 기술 속에서 마케팅적 교집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컨텐츠 소비, 모바일 쇼핑 등을 개별적으로 한다. 어떤 셀러브리티의 아이템이 궁금하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연동된 쇼핑몰로 가서 구매한다. 하지만 카카오 TV 등이 시작하는 숏폼 컨텐츠들은 추후 이걸 통합할 수 있는 접점을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굳이 유명 PD를 영입하고, 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고 제작비를 들여 컨텐츠를 만드는 게 단지 광고 수익만을 노린 걸까? 분명 아닐 것이다. 결국에는 그 컨텐츠에 포함된 상품을 구매로 연결하는 일종의 커머스로의 전환이 목표가 아닐까 싶다.
꼭 카카오 TV만 그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닐 것이다. 플랫폼에 마련된 컨텐츠를 소비하며 결국 그 속에 노출된 현물을 또다시 소비하게 되는, 그래서 플랫폼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거대한 구상이 곁들여 있다고 봐야 한다. 필자는 숏폼 컨텐츠 전성시대의 도래는 세대 구성원의 특성을 파악해 그것을 마케팅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고도의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비 명목으로 수익을 배분했다면, 앞으로 다양하게 펼쳐질 각기 다른 플랫폼은 크리에이터는 물론 그곳에 당당하게 뒷광고가 아닌 앞광고를 한 기업 및 브랜드에게 판매 수익을 안겨주는 창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틱톡커의 컨텐츠를 보다가 직접 클릭해 뷰티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카카오 TV 속 이효리의 어떤 아이템을 살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현재 숏폼 컨텐츠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역시 시청자이자 소비자인 우리 시대의 주축들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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