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2019년 CNBC 방송에 한 고등학생이 등장.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로 연간 백만 달러(약 11억 원)의 매출을 올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스니커즈 한 켤레가 가장 비싸게는 2만 달러(약 2천만 원) 정도에 판매됐다고 말하는 고등학생을 두고 이런 한정판 마케팅이 특수 카테고리와 마니아층에 국한될지, 더 일반화될지 의견이 분분했다. 현상에 대한 해석이나 전망은 달랐지만, 이와 유사한 방식의 한정판 마케팅은 더 다양하고 일상적으로 우리 삶에 침투되고 있다.
작년 여름, 한정판 굿즈 대란을 일으켜 아침부터 긴 줄을 서게 한 스타벅스의 서머레디백, 서머체어를 떠올리면 쉽게 납득될 것이다. 이처럼 한정판 마케팅은 숫자를 한정해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을 만들거나, 수량이 한정된 제품에 대한 구매 자격을 무작위 추첨을 통해 부여하는 래플(Raffle), 특정 장소나 날짜에 기습적으로 신제품을 판매하는 드롭(Drop) 등을 통해 소비자의 소유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리셀을 부르는 한정판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나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서머레디백처럼 한정판 마케팅의 위력은 소장을 넘어 리셀(Resell)을 일으킬 수 있을 때 발휘된다. 희소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더 큰 가치로 되팔 수 있다는 확신이 젊은 세대를 들끓게 만들어 시장을 다이나믹하게 한다. 어찌 보면 한정판 마케팅은 ‘희소성’ ‘유니크한 가치’에 대한 욕망을 창조하는 ‘럭셔리 마케팅’의 속성과 그 맥이 통한다. 이는 한정판 마케팅의 교과서 슈프림(Supreme)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21세기의 문제적 브랜드 슈프림. 벽돌, 젓가락, 도끼, 성냥 등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에 브랜드 로고를 붙여 단 몇 초 만에 완판을 기록하는 등 한정판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슈프림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James Jebbia)는 실제로 샤넬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샤넬이 디자이너의 소화기를 고가에 판매한 프로모션에서 영감을 받아 3년 후 이와 유사한 슈프림 소화기를 발표하며 한정판 게임을 시작한다.
이후 샤넬의 럭비공을 따라 한 슈프림 럭비공을, 샤넬의 축구공을 오마주해 슈프림 축구공을 발표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한정판 마케팅의 본질을 깊이 파악하게 된다. 이를 통해 슈프림은 샤넬급의 프리미엄을 보유하는 동시에 서브컬처적인 명성까지도 가지게 된다. 이후 슈프림은 더 다양하고 일상적인 아이템으로 확장된 한정판 마케팅을 통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상을 획득한다. 매주 목요일 12시에 드롭되는 400장의 한정판 신상을 사기 위해 슈프림 전 세계 매장 앞에 긴 줄을 선 사람들은 지금 구매하는 제품이 5년, 10년 뒤 어마어마한 가격에 되팔 수 있는 레어템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경계에서 발견된 희소성
혁신은 ‘경계’에서 발생한다.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분야가 만날 때, 연결고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연성 제로의 관계에서 의외성 그리고 희소의 가치가 싹튼다. 대부분의 한정판 마케팅이 콜라보 즉 협업을 통해 발현되는 이유다. 한정판 마케팅은 이 시대의 마케팅이 지나친 신중함보다는 빠르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실행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개인이 미디어가 된 SNS 시대가 되며 일상화되는 전시형 소비트렌드는 소비자로 하여금 인스타하기 좋은 아이템들을 직접 소유하도록 부추긴다. 이는 보다 접근성이 높은 푸드나 뷰티, 패션 분야에서 더 파격적이고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수브랜드로 알려진 곰표다. 69년 된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한정판 패딩을 만들었을 때는 대체로 시큰둥했다. 이후 ‘하얘져요’라는 카피와 함께 선크림, 쿠션으로 등장하자 한번 사볼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카테고리 연관성도 갖추게 됐다.
재미와 확산의 정점은 밀맥주였다. 맥주의 한 카테고리인 밀맥주와 밀가루 브랜드가 만나 곰표 밀맥주라니. 잘 버무려진 레트로 감성과 위트는 바로 휘발력을 일으켰다. 패션-뷰티-푸드로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연관성과 의외성의 폭을 다양하게 구사한 한정판 제품은 품절의 품절을 이어가며 매출 상승뿐 아니라 대한제분 주가를 상승시키며 곰표를 MZ세대에게 가장 친근한 장수브랜드로 만들었다. 이처럼 런칭 즉시 매진을 부르는 한정판 제품은 단순 프로모션 이상의 역할을 하고, 더 이상 한정판이 아닌 상설판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처럼 잘 통한 한정판 마케팅은 브랜드에게 또 다른 카테고리로의 확장성 및 새로운 정체성을 수혈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주기도 한다.
취향을 발전시키는 MZ세대
트랜스미디어 시대의 스토리텔링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미디어와 미디어 사이,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갭이 있다. 그 작은 틈에서 MZ세대의 놀이가 시작된다. 그들에게 성공은 ‘덕업일치’다. 취향이 직업이 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이 벌리는 삶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취향은 단순한 취미나 여가에 머물지 않고 공부처럼 파고들며, 일처럼 성실하게 취향을 발전시킨다. ‘끌올세대’이기도 한 MZ세대는 이미 존재하는 좋은 제품을 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미 사라진 제품이나 컨텐츠를 부활·역주행시킨다. 단, 그들이 공감하고 의미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최근 나이키의 허락 없이 슈즈를 커스텀하고 사탄을 주제로 해 ‘사람의 피 한 방울을 섞었다’는 자극적인 마케팅을 벌인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미스치프(MSCHF)는 666켤레의 신발을 1분 만에 완판시킨 기록 이상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이키의 상표권 침해소송 끝에 결국 모든 제품의 리콜 조치가 내려졌다.
MZ세대와 브랜드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이들은 소비자라는 지위에 만족하지 않는다. 때로는 팬으로, 때로는 프로듀서로 행동하며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모두가 하나 이상의 미디어가 된 시대. 이들이 대체 불가능하고 더 의미 있는 희소성에 반응하며 다양한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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