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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AD Note

호모사피엔스가 소유하고 싶은 브랜드북

 

글 브랜드&컨텐츠팀 강효정 CⓔM

 


 

좋아하는 영화는 꼭꼭 씹어 아껴 먹듯 본다. 그렇게 인생 영화로 자리 잡은 것들은 해를 넘기더라도 어느 때가 되면 재시청하게 된다. 거듭해서 본 최애 작품의 명대사쯤은 거뜬히 읊조릴 만큼.

그런데 간혹 영화가 재미없어진다 싶으면 유튜브 시청하듯 배속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20분 드라마 요약도 1.5배속으로 보고 숏폼마저도 아니다 싶으면 휙휙 넘겨버리는 요즘, 영상도 아닌 무려 독서는 참으로 인내를 요하는 것이 됐다.

 

호모사피엔스의 독서

그러니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한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의 말에 위안을 삼았다가, 순간접속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가 ‘깊이 읽기’의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끄덕였다가, 호모사피엔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24시간으로 치면 독서의 대중화는 고작 밤 11시 53분경에 발생된 발명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왠지 납득되는 핑계가 된다.

독서는 호모사피엔스의 후천적 노력이란다. 뇌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편하는 독서의 과정, 이 고차원적 능력을 계속 갈고닦고 있는 이유. 지극히 개인적 취향일 수 있지만 독서가 주는 고유한 경험에서도 찾아본다. 케케묵은 헌책일수록 묘하게 끌리는 종이냄새,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사락거림의 질감, 표지나 삽화, 편집 형태가 주는 시각적 체험, 호모사피엔스가 파피루스 시절부터 느꼈을 고유한 경험, 그 감성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날로그적 감성의 손맛은 전자책의 터치스크린 손맛으로, 시각적 체험은 AI가 2배속으로 들려주는 오디오북의 청각적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 안 읽는 현대인은 독서보다 검색, 완독보다 발췌, 글자보다 영상, 긴 것보다 짧은 것, 영상과 음성 등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 익숙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도 종이책으로 발간하고 있는 브랜드들의 브랜드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서론이 길어졌다. 그들은 왜 그들의 책, 브랜드북을 만들까?

 

브랜드를 경험하게 만드는 브랜드북

브랜드북은 물성이 없는 브랜드를 손에 잡히는 책을 통해서 경험하게 만드는 마케팅 도구다. 브랜드의 역사, 철학, 가치, 비전, 서비스 차별성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다. 독자들에게 브랜드와의 강한 연결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특정 목표 그룹을 대상으로 설계되거나 파트너, 직원, 협력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해 브랜드 이해를 돕는다. 디지털 시대의 브랜드북 트렌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특징으로 볼 수 있겠다.

 

감도 높은 비주얼, 시각적 매력으로 어필

(위부터 시계방향) 유한락스 <화이트북>, 노브랜드 <노브랜드: 디스 이즈 낫 어 브랜드>, 삼립호빵 <호빵책 : 디 아카이브> / 출처 @urbanbookskorea, designhouse.co.kr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조한 비주얼 중심의 디자인 특징을 갖는다. 감도 높은 다양한 그래픽, 이미지,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편집 형태로 시각적인 흥미와 관심을 끌게 만든다. 내지 또한 꽉 채운 텍스트보다 이미지 플레이로 쉽게 보면서 읽히게 만든다. 또 어떤 책은 내용도 보기 전에 강렬한 표지만으로 사고 싶게 한다.  

 

감동과 영감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링과 내레이션의 힘

일광전구의 브랜드북 <일광전구 : 빛을 만들다>. 국내 유일 백열전구 제조사의 헤리티지를 훼손하지 않고 피보팅에 성공한 과정을 조명, 인터뷰 형식의 컨셉. 60년 역사, 리브랜딩의 과정, 제품과 디자인, 마케팅과 미래 계획을 담았다. / 출처 bookjournalism.com

 

브랜드북은 스토리텔링과 내레이션 기법을 통해 브랜드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브랜드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브랜드의 기원, 창업 이야기, 실패와 교훈의 성장 과정, 감동적인 성공 이야기 등을 제공하며 독자와 브랜드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형성하게끔 한다.

 

(위부터 시계방향) 현대카드 <더 웨이 위 빌드>, 도드람 <Dodram Pride>, 프로스펙스 <우리의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 / 출처 @hyundaicard, prospecs.com, dodram.nonghyup.com

 

현대카드의 브랜드북 <더 웨이 위 빌드(The Way We Build)>은 20년의 공간 프로젝트 여정을 기록한 아카이브북이다. 현대카드가 고수해 온 브랜드 철학을 29개 공간에 숨겨진 why를 통해 압도적인 공간의 이미지와 건축, 디자인, 이용자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풀어냈다. 프로스펙스의 <우리의 열정은 끝나지 않았다>는 40년 브랜드 역사, 여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미지북과 전문가 좌담, 인터뷰 등이 담긴 텍스트 북으로 구성해 프로스펙스가 지켜온 스포츠에 대한 믿음과 가치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도드람의 <Dodram Pride>는 국내 최초로 브랜드육 돼지고기를 출시한 도드람이 만든 업계 최초 브랜드북이다. 도드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 망라해 상생, 성장, 진화도약, 비전약속 등 4가지 파트로 구성해 도드람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유용한 콘텐츠 제공과 상호작용성

(위) <미쉐린 가이드> (아래) 소비자들의 실생활에 유용한 사용법을 함께 담은 유한락스 <화이트북> / 출처 guide.michelin.com, @urbanbookskorea

 

독자들은 브랜드북을 통해 브랜드와 관련된 정보, 가이드, 팁 등 독자들이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콘텐츠를 얻고자 한다. 또한 쿠폰이나 이벤트, 브랜드북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 요즘은 QR코드로 추가 콘텐츠에 접근하거나 AR 콘텐츠 등으로 독자들의 참여, 상호작용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1900년에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의 탄생 이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타이어 소비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던 미쉐린 형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운전을 장려하기 위한 전략으로 운전자를 위한 무료 가이드북을 만들 때 타이어를 교체하는 방법, 주유소의 위치, 여행 중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잠을 청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같은 유용한 정보를 담았던 이유였겠다. 21세기의 미쉐린 가이드는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됐다. 식도락 여행 콘텐츠가 독자들과 상호작용하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질 줄 미쉐린 형제는 예상했을까. 디지털 시대의 브랜드북에서도 유용한 콘텐츠와 상호작용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브랜드북으로 브랜드 소유하기

깊이 읽기’의 능력을 잃어가는 지금의 호모사피엔스가 ‘브랜드 깊이 읽기’를 원하게 만드는 방법. 읽는 것도 읽히는 것도 전략이 필요한 시대에 ‘브랜드의 이야기 팔기’는 감동과 영감을 얻는 스토리텔링과 내레이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살아있는 비주얼 중심의 디자인, 다양한 형식과 채널, 유용한 콘텐츠의 활용과 상호작용, 특정 그룹을 위한 맞춤형 발간 등이 그 방법이 되겠다.

브랜드북은 브랜드의 가시성과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와의 관계 형성, 팬덤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물성이 없는 브랜드를 물리적인 형태, 손에 잡히는 책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많은 브랜드들이 브랜드북을 발간하는 이유가 되겠다. 브랜드북으로 브랜드를 간직하게 하는 것, 또 다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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