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묘한 / 커머스 업계에서 분석가이자 마케터로 일하며 다수의 매체에 기고한다. 매주 커머스 트렌드를 전하는 뉴스레터 <트렌드 라이트>를 발행한다.
상품 소개에 콘텐츠를 더해 구매 전환율을 높이겠다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콘텐츠 커머스. 지금까지 많은 이커머스 기업들이 이에 도전해 왔지만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진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나 배송 등이 여전히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콘텐츠 커머스라는 키워드가 업계에서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는 콘텐츠 커머스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터질 듯 터지지 않은
콘텐츠 커머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기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티몬이다. 이들은 2017년부터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 ‘티비온’을 선보이며 업계 최초로 콘텐츠 커머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초기 반응은 뜨거웠다. 기존의 홈쇼핑을 살짝 비틀어 날것의 느낌을 더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정형돈의 도니도니돈까스 편이 대표적이었다. 직접 출연한 정형돈이 당황할 정도로 진행이 두서없었는데, 이런 색다름이 오히려 조회수 2백만이라는 성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영광의 시절은 그리 길지 못했다. 티비온은 현재 티몬플레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존재감은 강하지 않다.
이처럼 라이브 커머스 중심의 콘텐츠 커머스가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콘텐츠와 커머스를 모두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평균 시청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물건이 필요한 고객은 어차피 구매 후 이탈했고, 관심 없는 고객은 더더욱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콘텐츠 측면에서 약점을 드러내자 좋은 상품들은 콘텐츠 커머스를 기피하기 시작한다. 잘 팔리려면 좋은 가격을 제안해야 하는데, 그 조건이면 굳이 콘텐츠가 없어도 충분히 판매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평을 연 네고왕
이렇게 한때의 트렌드로 지나가는 듯한 콘텐츠 커머스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한 것이 유튜브 콘텐츠 ‘네고왕’이다. 네고왕은 기업을 상대로 가격을 네고한다는 성격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전형적인 ‘앞광고’ 형태의 콘텐츠다. 사실 유튜브 채널은 이미 TV와 같은 전통적 매체 대비 낮은 비용으로 광고를 진행할 수 있는 대안매체로 각광받고 있었다. 다만 시장이 형성되던 시기다 보니 광고를 표기하지 않은 이른바 ‘뒷광고’들이 많았는데, 당시 네고왕은 대놓고 프로모션 콘텐츠를 지향했기에 이들과 차별화되며 빠르게 성장했다.
네고왕의 성공 요인은 역시나 재미다. 터무니없는 네고 과정에서 의외의 재미 요소들이 발굴되어 적게는 수십만 회, 많게는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엄청난 파급 효과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대놓고 제공하는 프로모션이 붙자 참여 기업의 판매 페이지가 연일 다운될 정도로 매출 기여도도 컸다. 그러자 좋은 브랜드가 광고주로 붙고 이는 다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이처럼 네고왕은 제대로 만든 콘텐츠와 여기에 어울리도록 설계된 커머스가 결합될 때 콘텐츠 커머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나 네고왕이 바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이들의 성공 방식은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통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고왕을 통해 기존의 라이브 커머스 유형이 아닌 예능형 콘텐츠 커머스의 가능성은 증명됐지만, 여전히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필연적으로 다가온 홈쇼핑
이와 같은 성공을 관심 있게 지켜본 곳이 있으니 바로 홈쇼핑 업계다. 홈쇼핑은 과거 대비 TV의 영향력은 점차 낮아지고, 반대로 송출수수료는 증가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성장의 근원이었던 TV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콘텐츠 커머스다.
이미 홈쇼핑 업계는 기존 방송을 그대로 모바일로 옮긴 라이브 커머스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나 역시나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고객의 자연스러운 시청 습관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티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때 예능형 콘텐츠 커머스의 부상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네고왕에서 검증된 것처럼 우선은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의 ‘강남은 덤덤’, 현대홈쇼핑의 ‘앞광고 제작소’, CJ온스타일의 <대쪽상담소:生라이브> 등으로 예능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라이브 커머스를 덧붙여 실제적인 매출도 만들어내고 있다.
파편화된 취향을 잡아라
물론 예능형 콘텐츠 커머스가 증명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현재의 콘텐츠 소비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반짝 열풍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과거 홈쇼핑 기업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당시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역시 지상파 TV 채널을 중심으로 획일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드라마, 국민예능이라는 수식어가 존재하던 당시 시청률 20%, 30%는 흔한 일이었고, 이렇게 TV의 영향력이 강력했기에 홈쇼핑 역시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콘텐츠를 접하는 매체가 TV, OTT, 유튜브 등으로 다양해졌고 이에 따라 취향도 파편화됐다. 따라서 과거처럼 특정 매체에 기대기보다는 소비자들이 혹할만한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제작비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커머스 기업이 콘텐츠 커머스를 주도해 왔다면 앞으로는 콘텐츠 기업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커머스에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콘텐츠 커머스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까? 파편화된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이 좀 더 슬림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유명 연예인에 기대는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커머스에 특화된 인력이 새로이 등장할 것이다. 실제 홈쇼핑 업계에서도 자체적으로 기존의 쇼호스트에 해당하는 인플루언서들을 육성하고 있다.
또한 숏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더 많은 고객을 데려오려면 더 많은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퀄리티를 한없이 낮출 수도 없는 일이니 가성비 좋은 숏폼은 콘텐츠 커머스에서도 위상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과연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 성공을 거둘 기업은 어디일까? 콘텐츠 커머스가 이번에야말로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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