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AI스튜디오 고유진 CⓔM
롯데건설과 대홍기획이 함께한 <폭염주의복-Vest for Rest> 캠페인이 2026 클리오 어워즈 Media 부문 브론즈를 수상했다. 그래서 우리는 벅참과 설렘을 안고 뉴욕으로 떠났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쯤이었다. 입구 앞 가드가 어떤 이유로 왔냐고 물었다. 클리오 어워즈에 참석하러 왔다고 대답하자, 열린 문 뒤는 칵테일 파티였다. 스팽글이 잔뜩 붙은 드레스를 입었거나 금발을 틀어 올린 사람들이 잔을 하나씩 들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구적인 풍경이었다. 배경화면들이 현실로 튀어나와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평소에 특별히 자각하지는 않는 것들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뉴욕은 여전히 세계 광고의 중심이었다. 이 도시에서 만들어진 캠페인, 브랜드, 시스템과 취향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뻗어내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영향력
행사장에서는 AXA, VASELINE, HEINEKEN 등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들이 단상에 올라 상을 받았다. 글로벌 에이전시들은 너무 거대한 팔을 휘두르고 있어서 평소에는 그 존재감을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지구 자전을 느끼지 못하듯이. 그들은 지구 반대편의 우리 머릿속까지 내적 친밀감을 심어 놓을 정도로 경기장을 넓게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경기장이라 해서 그들만 쓰라는 법은 없다. 서울역에 앉아 세계의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시대다. 더욱이 K-컬처의 영향력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현상으로 커져가는 지금, 대한민국 역시 더 이상 세계의 변방이 아니다. 뉴욕의 에이전시들처럼, 글로벌 브랜드들처럼 얼마든지 큰 무대에서 뛰어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의 일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쉽게 압착된다. 좁은 과녁, 좁은 가능성, 좁은 시야. 점점 더 작은 틈 안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시대를 뒤덮고 있다. 과감하게 투자하는 클라이언트 찾기가 어렵고 콘텐츠의 휘발은 가속도가 붙는다. 그래서 쉽게 속단을 내리게 된다.
‘어차피 안 팔릴 아이디어다.’
‘어차피 답을 못 찾을 거다.’
‘어차피 그런 게 그런 것이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물론 세계 무대가 서울보다 덜 치열할 리는 없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짧은 미래만 들여다보며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아졌다.
다시 돌아본 <폭염주의복>
어떻게 하면 이 자본주의 공룡들 사이에서 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폭염주의복> 캠페인을 돌아봤다. <폭염주의복>은 세계 무대에서의 첫 번째 성공이고, 그래서 다음 캠페인의 등대다.



기록적인 폭염이 매해 이어지고 있다. AI 시대가 와서 세상이 바뀐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태양 아래 몸을 움직이며 일해야 한다. 법은 쉬어야 하는 때를 정하고 있지만 늘 그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현장의 작업 진행 현황, 위계질서, 온도 변화 때문이다.
그래서 휴식 시간을 더 직관적으로 알리고, 휴식을 시작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카피와 디자인의 재미를 덧붙였다. “I’M FINE”은 법정 기준 온도에 도달하면 “I’M NOT FINE”이 되고, “DO WORK”는 “DON’T OVERWORK”가 된다. “2시간마다 20분, 열을 식혀주세요”라는 안내 문구도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염을 보여주자, 그것이 이 캠페인의 목적이다. 온열성 질환을 막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한눈에 바로 알 수 있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왜 세계에서 통했을까?
우리는 2024년에도 롯데건설과 함께 <포트폴리모-Hatfolio> 캠페인을 진행했다. <포트폴리모>와 <폭염주의복> 캠페인은 모두 건설 노동자 이슈를 다룬 점에서, 그리고 각각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왜 <폭염주의복>만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기후 위기’라는 문제가 전 세계 모두의 현실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포트폴리모>는 건설 노동자의 자부심과 전문성을 조명하는 캠페인이었기에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감의 온도가 낮았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미국 건설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짐작했다.
더 큰 무대에 나가고 싶다면 다음의 크리에이티브는 보편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보편적이기만해서는 역시 튀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슈에 우리만의 색채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큰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항상 어렵다. 초점이 쉽게 흔들리고 마이크로(Micro)하게, 매크로(Macro)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한 장짜리 백지도 망망대해가 된다.
캠페인은 혼자 도착하지 않는다
되돌이켜 보면, 그 항해를 혼자 해온 적은 없었다. 같이 뉴욕에 온 동료들은 물론이고 카피 한 마디를 더 붙여준 사람,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준 사람, 조끼의 박음질 실을 함께 뜯어준 사람, 오타를 봐주고 촬영, 편집, 번역을 도와준 사람, 보고 피드백을 주고 아이디어 좋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회사 안팎에서 크고 작은 배려와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넘어온 파도들을 돌이켜볼수록 캠페인은 혼자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선명해진다.

행사장에서 금발의 광고지망생 친구를 만났다. 뉴욕 에이전시에 취업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친구는 엄청난 커리어의 동료들과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모델로 쓰고, 시작부터 타임스퀘어에 온에어되는 그런 광고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친구의 출발선은 우리보다 훨씬 더 화려할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 입장이다. 함께라도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고, 어쩌면 뉴욕까지 다시 못 올 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는 뉴욕이 시작점이겠지만.
그럼에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동료들이 있는 서울역의 백지 앞으로 돌아왔다. 아직 세상을 다 보지 못했는데, 속단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음엔 더 많은 동료들과 함께 뉴욕에 가고 싶다. 칸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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