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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그레이네상스 시대의 마케팅

 

뉴시니어의 새로운 소비시장

 

글 전영수 /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기자, 경제·금융평론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고령사회를 비롯한 시대 문제를 연구한다. 저서 <각자도생 사회> <대한민국 인구 소비의 미래> 등이 있다.

 


 

인구변화가 악재일 수만은 없다. 잘 뜯어보면 새로운 호재가 적잖다. 변화란 늘 위기와 기회를 동반하는 까닭이다. 휘둘리면 넘어지고, 올라타면 좋아진다. 인구충격을 인구혁신의 디딤돌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신고객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새롭게 부각된 고령인구가 그렇다. 숫자도 많고 의지도 높아 미래시장을 주도할 유력한 잠재고객일 확률이 높다. 평균수명까지 늘어나 소비시장으로선 결코 놓칠 수 없는 알짜손님이다. 이들을 잡을 묘책마련은 필수다.

연령대별 한국의 인구구성 비중 추이 (출처: <한국이 소멸한다>, 비즈니스북스, 전영수, 2018)

 

이름을 불러줄 때 관심·주목은 배가된다. 매력적인 고령고객을 뜻하는 신조어는 갈수록 기발하고 재미있다. 최근엔 오팔세대가 대세다.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이란 의미처럼 활기찬 인생 후반전을 즐기려는 신노년층을 말한다. 젊은 노인을 뜻하는 욜드(Young Old)족의 출현도 일반화된다. 달라진 신고객답게 액티브시니어로서 오팔세대가 적극적인 소비계층으로 부각된 결과다.

한국적 측면에서는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평균으로 58년 개띠 고객과도 일맥상통한다. 선두주자인 1955년생이 2020년부터 고령인구 연령기준인 65세에 대규모로 진입한다. 사실상 오팔세대는 신중년 타이틀 속에 40~69세의 30년을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때 구성비율은 2015년 42.7%(2,1782만 명)에서 2035년 43.8%(2,312만 명)로 늘어나 청년(10~39세)의 35.4%(2035년)를 능가하는 최대 소비집단으로 부각한다. 잡지 않을 수 없는 잠재고객이다.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이란 활기찬 인생 후반전을 즐기려는 신노년층을 말한다. 젊은 노인을 뜻하는 욜드(Young Old)족도 소비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오팔세대가 열어젖힐 새로운 소비시장은 무궁무진하다. 달라진 신고객답게 새로운 소비시장을 주도할 능력과 의지, 경험을 두루 갖췄다. 기존 이미지였다면 오팔세대의 구매력은 제한적이다. 은퇴이슈와 맞물려 빈곤노후가 예고된 퇴장고객이란 잔상이 짙었다. 오팔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은퇴·노후를 부정한다. 비록 몸은 늙어가도 최대한 노화에 맞서며 현역생활의 연장소비를 지향한다. 부모 봉양, 자녀 부양으로 절대빈곤에 빠진 선배세대와 구분된다. 게다가 평균수명까지 2~3년에 1세씩 증가한다. 75세부터 본격화되는 유병비율을 봐도 현역소비에 준하는 욜드족의 구매패턴은 확장된다. 케케묵은 늙음소구를 연령마케팅에서 제외·무시해야 하는 이유다.

 

오팔세대는 최대한 노화에 맞서며 현역생활의 연장소비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오팔세대의 구체적인 차별지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구매력이 독보적이다. 돈이 많다는 이야기다. 자산·소득이 중장년에 집중되는 건 맞지만, 최근의 오팔세대만큼 독점력이 높은 집단도 별로 없다. ‘고성장→저성장’의 변곡점에서 상대적인 자산증식, 고용안정의 끝물을 맛본 결과다.

실제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은 50대(3억 9,419만원)가 제일 많다. 60대(3억 5,817만원)까지 넣으면 압도적이다(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월평균 소득도 45~49세(367만원)가 가장 높다. 그 뒤를 40~44세(362만원)와 50~54세(360만원)가 잇는다(2018년 일자리행정통계). 소비파워도 막강하다. 연령계층별 소비증감을 보면 2015~16년 전체평균은 3.8% 늘었지만, 65세 이상은 7.2%로 확대된 소비력을 보여줬다(2016년 국민이전계정). 환갑을 넘겨도 소비 축소는커녕 되레 증가할 가능성을 선뵌다.

 

 

그럼에도 오팔세대는 절대 녹록하지 않다. 만들면 사주던 착한(?) 고객이 아니다. 그레이네상스(그레이+르네상스)를 누리자면 전제조건이 필수다. 확실·정밀·섬세한 고객분석이 대전제다. 오팔세대는 뉴시니어답게 완전히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 평균적인 고학력인 데다 가치관은 제각각이고, 구매경험·소비취향도 길고 까다로워 범용적인 특정집단으로 규정·접근하는 코호트적인 마케팅은 먹혀들지 않는다. 다양한 인생 스타일을 살아왔기에 각각의 기대 수준은 천양지차다. 물론 길어진 평균수명과 불안한 미래생활로 요약되는 장수위험은 내재한다. 따라서 눈높이에 일치할 때 지갑을 열지만, 기본적으로는 절제된 소비패턴이 기저에 깔린다. 사전발상부터 사후관리까지 총체적인 개념전환의 시니어시프트(Senior Shift)가 투영·안착될 때 오팔세대는 고객으로 연결된다.

 

오팔세대 마케팅을 위해서는 사전발상부터 사후관리까지 총체적인 개념전환의 시니어시프트가 필요하다.

 

시장·기업은 기발하고 발 빠르다. 이미 오팔세대에 주목해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진화시키려는 새로운 실험이 한창이다. 서구시장은 오팔고객이 선두에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진두지휘할 정도다. 업종불문 달라진 오팔세대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자랑한다. 주목되는 건 한국사회와 유사하고 오팔세대의 시장성숙이 구체화된 일본의 사례다. 이들은 2000년대부터 시니어마켓을 둘러싼 다양한 시행착오를 반복 중이다. 오팔세대의 소비취향을 주도면밀히 분석·연구하며 일상적 재화쇼핑은 물론 유통·금융까지 가세한 향(向)서비스로의 혁신적인 대응 마련에 열심이다. 30%를 웃도는 초고령사회(고령인구/현역인구)답다. 한국은 이제 시작이다. 15%의 고령화 비율에 순식간에 도달했듯 시장개막은 시간문제다. 생존과 성장은 당분간 오팔세대의 장악여부에서 엇갈릴 전망이다.

 

일본은 2000년대부터 시니어마켓을 둘러싼 다양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혁신적 대응 마련에 열심이다.

 

‘청년고객→오팔세대’로의 무게이동은 전방위적이다. 학원처럼 사업모델 자체를 ‘입시수험→평생교육’으로 대폭 전환하는 건 물론 기존 제품·서비스의 연령차별을 없앤 평생소비형의 강조마케팅 혹은 오팔세대 취향저격의 라인업을 추가·강화하는 흐름이 구체적이다. 당장은 고객접점이 잦은 유통현장 변화가 돋보인다. 선두주자는 고객이탈·매출감소로 고군분투 중인 백화점업계다.

다이마루백화점은 2011년부터 6070세대의 맞춤형 전공공간(마담실렉션)을 열어 오팔세대에 집중한다. 휴게공간을 늘리고 전통강좌를 열며 관심을 유도한다. 다카시마야백화점도 오팔취향에 맞춰 설비투자는 물론 의류 등 차별제품에 집중한다. 신사·부인복 전문판매점인 도클라세(DoCLASSE)는 2018년 도쿄 1급지 고급상권에 중년모델을 내세운 대형 전용매장을 오픈했다. 체형붕괴와 보정기능을 강조, 젊음유지를 마케팅 전략으로 내걸었다. 방치했던 오팔세대의 관심을 끈 건 물론이다. 이 밖에도 오팔세대에 맞춰 상품구성을 비롯한 출점·홍보·판매전략 등의 유통실험은 부지기수다.

 

시니어 모델을 활용한 브랜드 DoCLASSE (출처: doclasse.com)

 

편의점의 오팔고객 확보전략도 의미심장하다. 세븐일레븐은 2000년 세븐밀(배달도시락)을 출시할 때 중장년 관심사인 건강레시피를 대폭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배달 시 생활곤란을 동시에 해결해줌으로써 ‘Safe+Station’이란 타이틀까지 붙었다. 100만 이용자 중 70%가 50대 이상이다. 패밀리마트는 ‘약국+편의점’의 병설점포로 중고령고객의 질환수요에 대응한다. 로손은 특화점포(로손스토어100)를 확대하며, 간병상담에까지 진출했다.

소매유통에선 오팔고객 특화할인도 상식이다. 이온은 55세부터 매월 15일에 할인특전을 부여한다. 영화관(토호시네마)은 부부 중 1명이라도 50세를 넘기면 2인 기준 2,200엔만 받는다. 정상가보다 1,000엔 할인된 금액이다. 요즘 인기인 이키나리스테이크는 50세 이상을 위한 마일리지카드를 도입했다. 무료음료에 할인쿠폰까지 있다.

 

일본의 편의점은 오팔세대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패밀리마트는 약국과 편의점을 합친 컨셉으로 중고령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금융이라고 오팔고객을 방치할 수는 없다. 거대자산을 갖춘 매력적인 고객의 금융수요를 발굴하고자 상시적인 대응체계에 돌입했다. 대표적인 게 체감적인 장수위험을 경감시켜주는 신상품의 설계다. 미쓰이스미토모는 일본은행 중 최초로 별칭 ‘장수연금’인 톤틴상품(종신연금보험)을 내놨다. 가입자가 대략 83세를 넘기면 이득인 상품이다. 일본생명보험도 업계 최초로 톤틴상품(Grand Age)을 출시해 큰 주목을 받았다. 노무라증권은 연 3% 목표 이자를 설정해 오팔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장수투신으로 맞대응 중이다. 하나같이 50세 이후에나 가입이 되는 신상품이다. 결국 오팔세대의 대량등장은 업종불문 새로운 맞춤형 전략수립으로 귀결된다. 한국으로선 오팔세대를 꾀려는 다양한 마케팅 사례가 생소한 만큼 이들 선행사례를 공들여 살펴보는 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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