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세계를 구축하는 서사전략, 트랜스미디어
글 김신엽 / Digital Signage lab 소장,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겸임교수. 디지털 대행사, 종합 광고대행사, 브랜드 매니저로 이어지는 경로를 거쳤다. 트랜스미디어와 광고 융합이 주요 연구 분야 중 하나다.
트랜스미디어와 스토리텔링
횡단, 초월, 주파, 전이의 의미를 가진 트랜스(Trans)와 미디어(Media)의 합성어인 ‘트랜스미디어’는 미디어 경계를 넘나드는 컨텐츠와 서비스를 의미한다. 영화 ‘다크나이트(2008)’는 ‘조커(2019)’ 전에 개봉했다. 두 영화의 모티프인 악의 근원은 자기연민으로, 출구를 찾지 못한 연민은 세상을 향한 증오로 표출된다. 조커에서는 그 끝이 브루스 웨인(배트맨)에게 향함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두 영화를 잇는 연결점이자 이야기 분기점으로 조커는 다크나이트 이후 개봉했으나, 이야기 구조상 다크나이트의 전편인 프리퀄에 해당한다. 조커는 다크나이트 세계관의 트랜스미디어 컨텐츠인 것이다. 중국 내 상영 없이 R등급 최초 10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둔 조커는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와 결합해 시너지를 만드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의 전형이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여러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개별 이야기를 ‘하나’로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고 경험하게 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충족조건으로 ‘각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개별 스토리는 전체에 분명하고 가치 있는 기여를 하는 독립적 구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영감받은 영화 ‘매트릭스’는 3편의 연작으로 이뤄졌으나, 전체를 이해하려면 9편의 애니메이션 외전 ‘애니매트릭스’ 관람이 필요하다. 세계관을 이해한 사용자들은 캐릭터 피규어를 모으거나 다른 외전이 담긴 만화를 읽고, 온라인 게임에 몰두한다. 이는 영화를 알지 못해도 영화의 세계관에 진입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미디어 경계가 해체되고 융합되며 사용자 역시 경계를 초월해 횡단하고 주파하는 지금. 트랜스미디어는 디지털 컨버저스 시대의 다양한 미디어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다. 서사전략으로서 트랜스미디어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공개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구축해나가며, 원전(Original text)을 재현하는 컨텐츠 및 서비스로 시공간(영역)을 확대하며 사용자를 획득한다.
광고와 이야기
브랜드는 사용자에게 인식된 효용과 가치의 의미 집합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계를 구축한다. 이를테면 늙은 어부가 환희에 차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고 일갈하는 모습이 당연한 세계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광고는 브랜드의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서사전략이 된다. 원전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트랜스미디어와 광고는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현에 있어 트랜스미디어는 크로스미디어를 넘는 보다 적극적인 융합적 관점을 취한다. 온·오프라인 등 다양한 매체 간 결합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크로스미디어는 OSMU(One source Multi use)를 기반으로 한다. 드라마 1, 2화처럼 원전을 분리한 후 연결하는 서사전략으로서 TVC를 통해 컨셉을 알리고 웹사이트의 상세 내용 탐색을 유도하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크로스미디어는 원전을 미디어 특성에 맞게 변형하는 매체적 각색(Media creative)이 필요하다. 반면, 트랜스미디어는 사용자와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재현 가능성을 추구하며 전이적 각색(Transformation)을 특징으로 한다.
에어프랑스가 TVC를 통해 편안한 항공 서비스를 알리고, 웹사이트를 통해 개별 서비스를 상세하게 소개한다면 이것은 크로스미디어다. 그러나 이륙 당시 비행기 소음과 압력차로 귀에 통증을 느끼는 고객을 위해 천연 껌을 출시했다면 이는 트랜스미디어다. 더군다나 이 껌은 3가지 맛이다.
광고와 브랜드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덕타이징(Productising),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의 첫 번째 원칙 ‘제품과 광고를 결합하라’는 트랜스미디어를 토대로 연결될 수 있다. 먼저, 트랜스미디어의 개별 이야기들은 헨리 젠킨스의 정의와 같이 전체 이야기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부분’으로 고유성을 가져야 한다. 보통의 영화 예고편과 달리 영화 ‘블레어위치 프로젝트’는 독특한 예고편을 통해 본 영화의 기대를 이끌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예고편이 원전의 설득적 요약(매체적 각색) 혹은 장면의 차용(OSMU)이 아닌, 영화가 표방하는 미스터리한 세계의 증거라는 별개의 기능과 고유성으로 인해 트랜스미디어 최초의 마케팅 사례로 일컬어진다.
사건 현장에 버려진 캠코더에 남겨진 영상만으로 이뤄진 영화 블레어위치 예고편 블레어위치 프로젝트
박카스 나를 아끼자 캠페인 - 버스쉘터 디지털 사이니지에 손바닥을 대면 심장 박동, 피부 온도, 땀 분비량 등을 측정해 피로 정도를 확인할 수 있고, 결과가 프린트된 영수증을 편의점에 제시하면 박카스로 교환해준다.
박카스는 2016년 젊은 세대에게 다가서기 위해 ‘나를 아끼자’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나 피로회복이라는 브랜드 효용을 젊은 세대가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이에 버스쉘터 체험 캠페인을 기획했다. 측정을 통해 피로를 시각적 실체로 전환하는 체험은 젊은 세대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TVC와 피로도 측정 캠페인을 모두 체험한 소비자가 그중 하나만 체험한 소비자와 비교해 브랜드 이해 수준 및 구매의도에 있어 더 높은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 연결 측면에서는 단일감각보다는 다중감각이 대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IMC의 시너지 효과이자 형식(인지적 공감 형성)과 내용(체험을 통한 실체 인식)을 통합한 트랜스미디어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전체에 기여하는 개별 이야기를 연결하는 관점은 롯데 엘포인트의 ‘옴니로 산다, 옴니패밀리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캠페인은 예고편을 통해 전체 이야기 구조를 공개한 후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가족의 일상을 표현한다. 이때 예고편은 개별 이야기의 존재를 알려주는 이야기 분기점이다. 해당 캠페인은 동일한 내용을 모델만 달리했던 멀티캐스팅을 벗어나 가족 구성원으로 대표되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연결되고 분기되는 브랜드 내러티브(Brand narrative)를 구축한 사례다.
롯데 엘포인트, 옴니패밀리의 탄생 예고편
사용자와의 새로운 연결과 참여
트랜스미디어는 기존의 세계관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사용자와의 연결을 만들어낸다. 국내 최초의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꼽히는 ‘맛의 지구정복, 붕어싸만코’ 캠페인은 붕어싸만코가 사실 지구를 정복하려 했던 외계인이었다는 기존 SF 작품을 패러디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캠페인은 3편의 영상 스토리텔링과 SNS 및 다양한 옥외접점에서 붕어싸만코 목격담을 제보받는 이벤트로 구성돼 많은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다.
트랜스미디어는 세계관을 즐기는 사용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다양한 감각을 포괄하고 세계관을 확장한다. 참여를 통해 그들은 수동적인 청중에서 적극적인 미디언스(Midiance)로 전환된다. 이는 세계관과 동화하는 과정(연대)이며 개개인의 외전이 탄생하는 트랜스미디어의 탈중심화와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외전을 브랜드로 바꿔 보면, 표적집단을 대표하는 필요와 욕구가 사용자 각자의 혜택과 가치로 전환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2015년 패키지의 바나나맛우유라는 브랜드명을 ‘ㅏㅏㅏ맛 우유’로 표기해 사용자가 직접 빈 곳을 채워 넣는 #채워바나나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용자는 자장가맛우유, 하하하맛우유, 사랑해맛우유 등 재치를 뽐냈고 해시태그 수만큼이나 바나나맛우유의 세계관은 확장될 수 있었다.
트랜스미디어를 주요 전략으로 채택한 방탄소년단(BTS)은 다양한 퍼포먼스와 캠페인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화양연화 Young Forever> 앨범 발매 시 가상의 꽃 ‘스멜랄도’ 이야기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해체했고, 서울 상공에 비행선을 띄우며 시작한 유니세프와의 ‘Love yourself’ 캠페인 진행, 2019년 2월 21일에는 데뷔일인 2013년 6월 13일부터 2080일간 팬클럽 아미와 함께 전 세계에 숨겨놓은 2080개의 QR코드를 찾는 캠페인을 종료했다. 캠페인은 2080일의 기록을 채워가는 과정으로 전 세계 곳곳에 숨겨진 QR코드를 찾아 접속하면 아미피디아로 연결된다. 아미들은 QR코드에 숨겨진 그날의 사진이나 감회를 통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한다.
프랑스의 팬이 발견한 QR코드를 전 세계 아미와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
확대하고 만들어 놀다
트랜스미디어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똑같은 장난감이 여러 역할로 등장하는 것을 목격한 문화연구가 마샤 킨더(Marsha kinder)가 트랜스미디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란 개념을 발견하며 시작했다. 크로스미디어가 원전을 미디어에 적합한 양식으로 재현하지만 원전에 갇혀 있다면, 트랜스미디어는 여러 캐릭터를 갖는 아이들 놀이의 장난감처럼 원전의 지평을 확대해 개별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가 광고와 트랜스미디어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대상을 재현하는 서사전략으로서 광고는 광고하는 대상이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수프를 모르는 사람에게 캠벨수프를 이해시키려면, 먼저 수프를 먹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 대해 이해시켜야 한다”는 앤디워홀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세계를 구축하는 서사전략인 트랜스미디어는 가치가 분화되고 전복되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이야기 방식이다. 트랜스미디어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미디어 경계 해체와 재구성을 필요로 하며, 재구성된 공간을 세계관으로 연결하는 공간확보 전략이다. 사용자는 세계관을 통해 공간을 주파하며 각자의 필요를 획득한다.
트랜스미디어는 ‘One sight One voice’라는 IMC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목소리라는 주파수 안에서 미디어를 차별하지 않고 사용자와 연결될 수 있는 모든 해법을 고민해야 하며, 연결된 개별 이야기는 부분의 합이 아닌 세계를 그려야 한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라는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영향받은 IMC 창시자 돈 슐츠(Don E Schultz)가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가치의 다양한 노출이 아닌, 복수의 가치가 하나를 말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세계는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되 하나의 원리로 해석될 수 있는 사고의 지평이다. 한 가지 가치만으로는 뛰어놀 수 있는 세계가 너무 작다.
[참고]
* 광고와 융합할 수 있는 서사이론의 관점에서 소비자가 아닌 사용자라고 표기했다.
* 원전의 재현이 아닌 대상의 재현이 옳은 표현이나 글의 맥락을 고려해 원전의 재현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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