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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The Issue

밈이라는 하이브리드

 

지금 가장 독특한 대중문화

 

글 서동현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 Korea> <ARENA Homme+>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다양한 매체에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20년 대중문화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는 ‘밈(meme)’을 알아야 한다. 밈은 디지털 모바일 라이프를 이끄는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문화를 넘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meme, 그게 대체 뭔데?

분명 ‘미미’라고 읽는 사람도 있을 거다. 언제부터인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밈(meme)’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는 쉽게 말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확산되는 짧은 영상, 이미지 등을 뜻한다. 어렵게 말하자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자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모방에 의해 전수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너도나도 따라 하고 싶어지는, 스스로 복제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걸 ‘밈’이라 부를 수 있겠다.

 

 

친구들과 카톡을 통해 주고받은 재미있는 이미지들, 뭔지 모르지만 따라 하고 싶어지는 춤이나 행동 양식을 담은 영상 등 ‘모방’의 총체인 밈이 대중문화를 이끌고, 새로움을 창조하고 있다. 쉽고 간편한 밈을 통해 문화적 자기 복제를 하고, 확산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밈의 탄생

굉장히 생소한 단어 같지만 사실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이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달했을 때 우리는 이것을 밈 대신 ‘짤’ 혹은 ‘짤방’이라 불렀으니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현시대의 밈은 복제가 매우 손쉽고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이다. ‘짤방’ 개념에서는 특정 짤을 퍼 나르는 사람과 이를 즐기는 사람이 어느 정도 구분됐다면, 밈의 개념에서는 모두가 쉽게 따라 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위 좌측) 트위터 직장인짤봇 출처: @ILOVEWORK_True (위 우측) MBC 예능 복면가왕 중 신봉선 (아래 좌측) 영화 해리포터 속 도비 (아래 우측) 맷 퓨리 작가의 만화 ‘Boy's Club’ 등장 캐릭터 페페(Pepe)

 

이를테면 HBO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명대사 “Brace yourselves, Winter is coming(각오해, 겨울이 오고 있어)”은 엄청난 일을 예고하는 상황의 밈으로 자주 쓰였다. 포토샵 같은 거 몰라도 재치 있게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지 단어를 채워서 써먹을 수 있는 왕좌의 게임 밈 만드는 사이트가 생겨날 정도다.

 

왕좌의 게임 밈 제작 사이트 (클릭하면 이동)

 

소화제 개비스콘 광고 이미지로 밈을 제작하는 사이트 (클릭하면 이동)

 

# 챌린지의 시대

이렇듯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행하는 ‘짤’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사람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이어지는 짧은 영상의 유행은 2014년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양동이 얼음물을 가득 담아 뒤집어쓰는 이 영상이 셀럽과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극히 일부의 유명인들 사이에서만 참여가 이뤄졌다.

대중이 직접 짤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는 빌보드의 새 역사를 썼다. 뮤직비디오의 카우보이 컨셉을 활용한 이햐 챌린지(yeehawchallenge)가 틱톡을 중심으로 붐을 일으키며 밈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이 노래와 밈 덕분에 백인 고유의 문화 같던 카우보이 컨셉이 인종과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끌었다. 집 앞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진짜 말과 함께, 이햐 챌린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SNS를 가득 채웠다.

 

릴 나스 엑스의 노래 올드 타운 로드를 활용한 이햐 챌린지. 평범한 사람들이 이햐 주스를 마시고 카우보이로 변해 춤을 추는 컨셉이다.

 

# 밈계의 오스카, 아무노래 챌린지

밈에도 오스카상이 있다면, 지코와 틱톡의 협업은 아마도 작품상을 탔을 거다.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틱톡을 기반으로 한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가 SNS를 휩쓸었다. 일단 이 밈의 첫 타자가 지코였다는 점이 상당히 유효했다. 옷 잘 입고, 쿨하고,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지코가 따라 하기 쉬운 동작으로 안무를 짜 화사, 청하 같은 힙한 동료들과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바로 당신이라는 듯 바통을 넘긴다. 동료 연예인들이 밈을 이어받더니,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밀레니얼이 적극적으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또 이들의 부모님까지도 아무노래 챌린지에 도전하면서 빠르게 ‘국민 밈’으로 확산됐다.

 

출처: 유튜브 캡처

 

아이스 버킷 챌린지처럼 대의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다음 타자를 지목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지코 노래 가사 그대로 ‘심심한데 아무 노래나 일단 틀고 놀아볼까?’하는 가벼움이 핵심이다. 이햐 챌린지가 그랬듯 특정한 의도나 명분 대신 심심함과 따분함을 채워줄 재미와 즐거움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심심한 모두가 모여서 춤을 추고 이를 SNS에 올리고, 이는 새로운 문화가 됐다.

 

# 인싸의 조건, 알아야 웃는다

밈의 생명은 양방향성에 있다. 어디서 어떤 소재가 밈이 될지 아직까지 밝혀진 논리는 없다. 곽철용과 사딸라가 대표적인 예다. 13년 전 영화 <타짜>의 등장인물 곽철용과 18년 전 드라마 <야인시대> 김두한이 2019년을 강타했다. 곽철용의 거의 모든 대사가 밈으로 재탄생됐고, 사람들은 실생활에 이 대사를 적용해 놀기 시작했다. ‘사딸라 아저씨’ 김영철은 또 어떤가.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형님이 미군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협상을 하며 오직 “사딸라!”를 외쳤던 장면이 밈이 되어 드라마를 보지 못한 세대까지 즐겼다. 미끼는 던져졌고 사람들은 덥석 물었다.

 

(좌) 최근 밈이 된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의 대사 "묻고 더블로 가" (우) 드라마 <야인시대> 속 김두한의 대사 "사딸라"

 

# 인싸력을 건드려라

SNS에서 너도나도 따라 하는 유행이 된다면, 이보다 더 탐나는 바이럴마케팅 소스도 없을 거다. 그래서 밈을 활용하는 기획은 새삼스럽지 않게 쏟아지지만 모든 밈 마케팅이 앞서 언급한 지코나 곽철용, 사딸라 같은 파급력을 가져오진 못했다. 원하는 메시지를 너무 노골적으로 노출했기 때문일 거다.

 

 

밈은 스스로 복제하고 싶은 문화 유전자를 가졌다. 친구의 재미있는 말투를 흉내 내다 보면 같이 놀던 친구들 모두 그 말투를 쓰게 되는 것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밈을 만들고, 이걸 자연스레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인싸력’을 건드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크게 의미도 없고 명분도 없지만 따라 하기 쉽고, 결과물을 내 SNS에 올리면 좋아요와 댓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어떤 것. 말처럼 쉽지 않지만 또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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