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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THE ISSUE 2] 진정성과 깨어 있는 5%

진정성이라 하니 또 다시 생각나는 이벤트가 있다. 2004년 5월에 KT&G가 서태지, 800여 상상체험단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의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했던 ‘서태지와 상상체험단 프로젝트’다.  2002년 필자가 KT&G 기획부장으로 입사했을 때, 회사에 대한 소비자 인식은 ‘아저씨, 공기업, 낡은(Old)…’ 연상 내용이 주였다. 이에 반해 외국 경쟁 브랜드는 ‘세련된, 글로벌, 젊은’ 등의 이미지였다. 시장은 외국 브랜드에 월 0.5%씩 잠식되어가던 때. 획기적 신규 브랜드에 주력해도 시원찮을 판에 기업 이미지부터 영 아니었다. 광고 수단도 없었다. 해법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2003년. 그 해는 2002년 한일월드컵 열풍이 지나자마자 IT와 주식시장을 견인하던 테헤란밸리의 붕괴로 청년 실업률이 치솟아 청년들이 실의에 빠졌던 때다. 위기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착수한 게 ‘로컬 기업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혁신적 이미지를 이식하자’였다. 그러려면 ‘고래 배로 들어가기’ 또는 ‘동굴로의 진입’이 필요했다. 그래야 진정성이 확보된다. 그래서 발해의 땅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그 결실로 회사 이미지는 상당히 개선되었고 또한 그 뒤로 홍대 앞 ‘상상마당’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상상 유니브’도 만들어졌다. 상상은 회사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2018년인 지금, 진정성 주제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전략적 계산이었는지 진정성이었는지 헷갈린다. 처음에는 진정성이 꽤 있었다. 당시 회사가 고려했던 또 하나 프로젝트가 ‘정(情) 캠페인’이었던 것이 그 증거다. 전국 15만 판매인에게 초복에는 홍삼 삼계탕, 동지에는 홍삼가루 경단을 넣은 팥죽을 드리자는 프로젝트였다. 외국 회사는 절대 할 수 없는 정 프로젝트. 그런데 이것 역시 계산이 있었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없던 것도 아니다. 

 

 



진정성을 보는 두 시각

 

요즘 갑질 이슈에다가 기업에 대한 국민감정이 들끓고 있으니 이것은 결국 기업의 마음을 스스로 다잡자는 주제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주제를 기회로 볼 것이 아니라 우선 성찰적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정성 개념을 문학용어비평사전(2006)에서 먼저 찾아보았다. 인문의 역사에서 진정성이라는 이슈가 어느 때 왜 대두되었는지 알아야 비즈니스에서 진정성이라는 문제의 시대적 좌표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전에는

 

 

 

 


진정성의 이상은 기성의 정체성들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 자신의 욕망과 의식에 즉하여 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라고 기술하면서 그 기원으로 루소를 언급한다. 따라서 진정성은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근대의 여명 시점인 18세기 중반, 루소는 자신에게 만큼이나 그의 동세대에게도 자아(self)가 문제라는 것을 강요하면서 자아에게 근대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심원하게 낯선가를 보여주었다. ‘휴머니즘과 자아의 회복’이라는 미션과 ‘근대는 억압적이고 낯선 것’이라는 현실 대비는 마치 현재의 기업과 고객현실의 대비 같다.

이번엔 우리에게 친근한 비즈니스 언어로 진술된 것을 보자.

 

 

 

 

 


소셜 미디어가 사회관계 유지의 핵심 채널로 부상하면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기존 광고에 대한 불신도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이 주목받게 되었는데, 바로 진정성(authenticity) 전략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제임스 길모어 등은 <진정성의 힘(2007)>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고안되거나 조성되지 않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고유한 형태가 진정성’이라고 정의한다. 이 진술은 마치 진정성이 기업 스스로 찾아낸 성찰적 해법인 것처럼 들린다. 어쨌든 좋다. 진정성은 결과적으로 소비자 이익과 부합하고 또 미래 기업에도 필요한 것이니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품은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인공이 아닌 천연 소재 제품, 지금까지 없었던 최초의 제품(original), 기존 제품과 구별되는 특별함을 가진 제품, 브랜드 연관 이미지를 진짜처럼 완벽히 구현하는 제품, 경제적 이득을 넘어 대의를 추구하는 제품(influential)이 그 다섯 가지다. 인공적, 짝퉁, 평범한 제품, 실제와 이미지가 다른 제품,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제품은 진정성이 없는 제품이란다. 이를 염두에 두고 진정성 경영을 하는 사례를 보자.

 

 



스카이72와 방탄소년단

 

영종도 공항 근처에 있는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72)는 진정성 있는 골프장이다. 그 골프장은 수많은 유머 글 판과 역발상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이는 “한국 골프는 너무 높은 데 있어. 주말 골퍼들이 재미있고 편하게 치면 좋겠어. 그러려면 우리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해”라는 골프장 대표의 진심에서 구현된 것 같다. 골프장 대표는 그런 마음이 주말골퍼이던 시절 형식적/권위적/배타적이었던 골프장에 불편했던 마음에서 부화했다고 한다. 그 후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골프장을 돌면서 만난 캐디와 어린 골퍼들에게서 그 마음이 더 강화됐다. 그들에게서는 편함, 즐김, 지역 공동체의 센터 같은 오리지널 골프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고 했다. 스카이72 대표는 그래서 ‘골프에서 펀(fun)을 찾아라’ 슬로건을 걸고 유머, 편함, 러브 오픈, VOC에 치중한다. 그러면서 이익도 낸다. 

 


세상엔 이러한 진정성 CEO들이 몇 있다. 홀푸드마켓의 존 매키,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더바디샵의 아니타 로딕,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브 캘러허, ‘관대한’ 이미지로 연상되는 인도 타타 그룹의 잠세트지 타타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연탄 나르고 기부하고 재단을 만드는 그런 선행을 한 리더들이 아니다. 내가 이걸 왜 하지? 라는 자아의 소리를 들으면서 혁신을 이끈 리더들이다. 그래서 현실을 넘어서는 처음, 특별함, 진짜의 아우라, 대의명분 등이 있다. 그게 길모어가 말한 진정성의 힘이다.

 


이번엔 한국 대중문화의 진정성을 가름할 K팝을 보자. 필자는 시건방진 눈으로 카메라를 꼬나보는 공연 머신, 인공 범벅 K팝 아이돌이 별로다. 그런데 방탄소년단(BTS), 씽씽 밴드 등은 범상치 않아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Fake Love’나 ‘전하지 못한 진심’ 등에는 자신들의 진솔하고 절박한 육성이 있다. BangTan Sonyeon Dan에서 출발한 BTS에는 BulleTproof Boy Scouts라는 뜻과 Beyond The Scene 뜻이 추가됐다. 씽씽 밴드는 엽기적 퓨전국악밴드다. 창부타령 같은 국악을 거뜬히 그들 스타일로 소화한다. 이들은 아무래도 K팝 표준과 달라 보인다.

 

 



정직이 솔루션이라고 믿는 5%가 답이다

 

소비자의 진정성은 어떨까? 90년대 후반에 모 교수는 “앞으로는 정직이 솔루션이다”고 했다. 근거는 정보 민주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은 반쪽 진실이다. 정보가 실행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체리피커 소비자들을 보면 현실은 정직이 솔루션이 아니다. 95% 소비자들은 진정성 기업보다 당장 이익을 주는 기업을 찾는다. 마크 저커버그도 이를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가 아니라 자기 집 현관 문 앞에 죽어 있는 쥐”라고 했다. 95% 소비자들은 아직 정보 권력을 갖지 못했다. 설사 가졌어도 햄릿 증후군 환자, 앱에서만 바른 소비자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오뚜기를 갓뚜기라 부르는 깨인 5% 소비자들이 있으니 진정성 솔루션에 기대를 해본다. 결국 진정성은 자아 성찰에서 오는 기회다.

 

 



황인선 대표컨설턴트 / 브랜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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