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윤진 CⓔM / 대홍기획 크리에이티브솔루션3팀
라디오가 지켜준 날들
학창 시절은 매일 밤이 전쟁이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한 가운데에는 한밤의 음악 감상을 사수하기 위한 라디오대첩이 있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무슨 공부냐” 매일 라디오를 숨겼던 엄마. “그게 있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 라디오를 찾아내던 딸. 숨기고 찾고 뺏고 뺏기던 그 시절의 라디오. 작은 기계에서 흘러나오던 누군가의 목소리는 홀로 깨어있던 수많은 밤을 지켜준 힘이었고, 책상 앞에 앉은 나와 세상을 이어준 유일한 신호였다.
소리로 이어지는 클럽하우스
사람의 소리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텍스트 기능 하나 없이 오직 음성과 오디오로만 대화하는 새로운 SNS. 혜성처럼 등장한 클럽하우스가 ‘SNS의 새로운 미래’라 불리며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열었다 하면 5천 명이 참여해 방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 ‘성대모사방’부터, 유병재를 주축으로 읽지 않은 책을 리뷰하는 ‘허언증 책리뷰방(ex. <정의란 무엇인가>는 초코파이에 관한 책이다, 주인공이 복수하는 소설이다)’, 배우 배두나, 가수 호란도 클럽하우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이다.
2020년 4월, 스탠퍼드 출신 폴 데이비슨과 구글 출신 개발자 로언 세스 두 사람이 선보인 이 앱은 ‘정말로 대화하는, 더 인간적인 소셜미디어’를 구상한 끝에 개발됐다. 폭발적인 성장세로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알려진 클럽하우스는 이미 실질적인 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인 스타트업 유니콘 대열에 들어섰다. 재미있는 건 소셜미디어의 강자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오디오로만 이뤄진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는 사실. 오디오 소셜미디어 시장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오디오계의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오리지널 컨텐츠
얼마 전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내 취향의 음악을 찰떡같이 찾아준다는 초개인화 큐레이션으로 전 세계 3억 2천 명이 이용하는 공룡 컨텐츠 기업이다. 찰떡 큐레이션과 더불어 인기몰이에 한 축을 담당한 건 스포티파이에서만 들을 수 있는 오리지널 컨텐츠다. 영국의 해리 왕자와 메건 부부,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까지 다양한 명사들이 스포티파이 오리지널 컨텐츠 제작에 참여한다. 스포티파이 코리아도 올해 안에 팟캐스트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국어로 된 오리지널 컨텐츠를 적극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220만 개 이상의 팟캐스트 컨텐츠를 자랑하는 컨텐츠 공룡 스포티파이는 과연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 OTT와 달리 치열한 음악 시장에서 오디오계의 넷플릭스가 될 수 있을까?
점점 판 커지는 팟캐스트
기본 앱으로 제공하는 애플 팟캐스트도 점차 판이 커지는 추세다. 대형 테크 기업들이 팟캐스트에 더 투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애플 팟캐스트를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팟캐스트 크리에이터들에게 수익 창출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기 위한 이유라고 하는데, 유튜브처럼 수익 창출을 위해 더 많은 크리에이터들을 모여들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아마존 역시 팟캐스트 분야를 강화한다. 음악 쪽 컨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원더리’를 인수한 아마존은 월 이용자 수 2천만 명에 달하는 팟캐스트 전문 스타트업 원더리를 통해 오디오 컨텐츠 분야에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라디오계의 유튜브, 스푼라디오
진화된 라디오 서비스인 스푼라디오는 녹음방송이 주류인 팟캐스트와 달리 라이브의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오디오 컨텐츠 앱이다. 고퀄리티의 음악과 컨텐츠를 멜론이나 스포티파이에서 듣는다면, 일반인이 만드는 친근하고 공감 가는 컨텐츠는 스푼라디오에서 즐기는 것이다. 스푼라디오는 일찌감치 글로벌로 진출해 전 세계 3천만 명이 즐기는 우리나라 오디오 컨텐츠계의 대표주자다.
이제 유튜브도 듣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에서 가장 오랜 시청 시간을 기록하는 컨텐츠는 귀로 듣는 것들이다. 자연의 소리를 담은 ASMR이나 개성 있는 유튜버가 선곡하는 상황별 플레이리스트, 스르르 잠들기 전에 듣기 좋은 오디오북, 공부할 때 듣기 좋은 로우파이 등 오디오 컨텐츠는 온 신경을 쏟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공기처럼 소리를 흡수하는 MZ세대를 주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주로 사람을 보내고,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오디오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술이 한발 앞서면 사람은 한발 뒤로 물러나 다시 가장 인간적인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가장 오래된 미디어는 어쩌면 사람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수많은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오랜 컨텐츠일 테니까. 사진이 발명되어도 그림은 계속 그려졌고, TV의 시대가 와도 라디오는 건재했다. 이제 다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영상은 수많은 미디어를 독식하고 있지만, 그 틈새로 미디어의 시조새 격인 오디오는 진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디오는 어쩌면 아주 오래된 미래이자 컨텐츠 혁신을 주도할 다음 주자가 아닐까?
* 서울라이터즈 레터: 디지털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트렌드, 핫이슈 등 한 주간 화제가 된 디지털 트렌드, 크리에이티브를 현직 카피라이터가 큐레이션해 전하는 위클리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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