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우성 / 시인, 컨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쿼어란틴’. 이렇게 적는 게 맞는지 정확하지 않아서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발음 듣기 버튼을 눌렀다. ‘쿼어언틴’이라는 것 같기도 하고. 철자는 이렇다. Quarantine. 이 단어 나만 몰랐나? 굳이 알 필요도… 없지. ‘격리’라는 뜻이다. 모국어로 들어도 어려운 단어. 시국이 아니라면 떠올릴 일이 별로 없는 단어.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쿼어언틴 뒤에 루틴(routine)을 붙여 ‘쿼어루틴(Quaroutine)’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뜻은 격리 중에 생긴 습관, 격리 중에 생긴 반복된 행위 정도? 충분히 등장할 만한 단어다. 지구인 모두 격리 중이니까.
쓸데없는 설명을 더 하자면, 요즘은 ‘방콕’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정적 상황을 자조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깨달은 것이다. 방콕이 나쁘지 않다는 걸. 출근하기 싫어, 아, 추운데 밖에 안 나가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 하루 종일 넷플릭스 보면서 놀고 싶다 등과 같이 신세 한탄할 때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집에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 그렇다, 그러니까 격리 중인 거고. ‘방콕’ 대신 ‘집콕’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이기만 하다면, 집콕도 나쁘지는 않지.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다고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오, 그렇네, 사회적 동물. 관계 속에서 행복과 위로를 느끼는 존재. 집콕의 단점은 이러한 관계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혀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 안 나간다면? 갑자기 다 같이, 야, 우리 서너 달 만나지 말자, 합의한다면? 강제로? 그래서 꼭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꼭 나쁘지 만도 않은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것, 그게 요즘 ‘격리’인 거지?
덕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혼자 뭐하지? 친구들에게 ‘쿼어루틴’을 물었다. 여러 명이 ‘독서’라고 대답했다. 진부해. 취미가 뭐냐고 해도 독서고 특기가 뭐냐고 해도 독서라고 말하면서, 쿼어루틴도 독서라고? 하지만 한 친구의 말은 이런 생각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내가 책을 못 읽는 줄 알았어. 그런데 한 줄 한 줄 읽어보니, 꽤 잘 읽더라고. 이런 사실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친구가 새삼 좋아졌다. 사회적 동물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일을 시작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에게 독서는 단순히 활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인으로서 나는, 자기개발의 일환으로 책을 읽거나 읽어야 한다고 인식시키는 것이 싫다. 독서는 인간이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행위다. 인간만이 이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좀 진부한 건 뭐, 맞지.
러닝 크루의 한 후배는 저녁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세탁한다. 그러고 난 후 향을 피운다. “원래 집에서 뭘 잘 안 해 먹는데, 요즘은 요리를 많이 해요. 그랬더니 음식 냄새가 좀 나더라고요.” 나는 후배가 향을 피우는 것과 요리를 하는 것을 쿼어루틴이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제가 피우는 향은 30~40분 정도 타요. 그 시간 동안 기타 연습을 해요. 덕분에 어쿠스틱 기타를 2020년에 처음 잡았는데 만족할 만큼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아, 나는 이 말을 듣고 후배가 더 좋아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앉아 풋체어에 발을 올려 두고 노트북을 켠다. 시를 쓴다. TV를 보는 것도 좋지만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당연히 시를 쓰는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집 안의 고요가 새삼 알려주었다. 새로 몇 편을 더 쓰고 다듬은 후에 시집을 출간할 것이다. 나는 내 쿼어루틴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감정 덕분에 만족을 느낀다. 밖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잘생긴 이우성이 이우성에게,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해? 라고 묻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좋다고, 나에게 질문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고.
지구인들은 어떤 쿼어루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뭐, ‘헛되이’ 보내면 어떤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바이러스지. ‘쿼어루틴’ 같은 단어를 왜 만들고 왜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혼자 머물며 알게 되었어, 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진 게 나는 참 좋다. 그러니 내 쿼어루틴을 한 가지 더 적는다. 더 행복해진 친구들을 만날 시간을 매일 조금씩 기대하는 것. 결국 모두 다시 만날 거니까!
글을 읽는 여러분의 쿼어루틴은 뭔가요?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쿼어루틴을 물어보세요. 친구들은 뜻밖의 언어로 당신을 놀라게 할 거예요. 우리 모두 지난 몇 달, 성장했잖아요. 기어코 꽃은 피어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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