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묘 / 대중음악 평론가. 저서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 <아이돌리즘> 외.
인터넷, SNS를 선택한 이들
2015년 어느 유튜브 채널에 걸그룹이 출연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들이 방송에 건성으로 임했다는 비난과 함께 “‘저런 방송’에 얼마나 나가기 싫었겠냐” “게스트를 함부로 대했다” 같은 의견도 많았다. 물론 품위 있는 교양 채널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음악방송 1위를 몇 번이나 한 아이돌이 1인 미디어 채널에 출연하는 게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8년 전의 일이다.
이제 아이돌이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흔해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음악이나 댄스 채널을 표방한 곳도 있고, 예능 토크쇼 포맷에 근접한 <문명특급>도 있다. 이들이 한번 흐름을 선도한 이후 아이돌의 인터넷 방송 출연은 신보 홍보의 기본 중의 기본이 됐다. 최근 뉴진스는 신보 프로모션의 첫 스케줄로 <침착맨> 방송을 택했다. 뷰티, 먹방, ASMR, 낚시, 축구 등 다양한 채널에 아이돌이 찾아가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 TV 출신이 도외시되던 분위기도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인터넷 방송의 파급력이 과거보다 커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많이 지적됐듯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다. 스마트폰으로 SNS에 상시 접속돼 있는 세대,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 세대, 꼭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은 유튜브에서 그나마 요약본으로 본다. 케이팝 산업에서는 흔히 BTS를 이 기점으로 본다. 이들은 지상파나 케이블 TV의 수혜를 거의 받지 못했지만, 대신 선택한 것이 적극적인 SNS 활용이었다. 어른들과 달리 초등학생들과 해외 팬들은 이들을 미리 알아봤다. BTS가 세계의 정상에 오른 2017년, 해외에서의 인기가 국내로 역수입되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2013년 데뷔해 4년, 방송국의 미디어 주도권이 인터넷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유튜브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지금 케이팝 스타들이 인터넷 방송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케이팝을 소비하는 이들이 TV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국이 아이돌을 출연시키지 않아서이기도 하며, 팬이 될 만한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인터넷 방송에 훨씬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상력을 더한 마케팅의 장
방송국이 담당하던 케이팝 홍보의 빈자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진다. 지코의 ‘아무 노래’ 이후 연예인, 인플루언서, 일반인이 참여하는 ‘챌린지’는 신곡 발매 전략의 기본이 됐다. 메타버스 세계로 들어가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나 트와이스의 의상을 제페토 아바타에게 입힐 수 있다. ‘세계관’을 담은 웹툰이라는 포맷은 제한된 성과만을 거두고 사그라든 것 같지만, 세계관의 일부를 떼어 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도는 여전히 더러 있다. 빌리는 앨범마다 세계관의 OST 스코어 앨범을 발매하고, 뉴진스는 뮤직비디오 속 수수께끼의 인물 ‘반희수’의 유튜브 채널을 따로 운영한다.
한 아티스트의 팬덤만을 위한 전용 어플도 있다. NFT 포토카드는 꾸준히 미묘한 반응을 얻고 있다. 트리플에스는 아예 카드 컬렉팅 게임의 UI와 한정판 디지털 포토카드 발매로 수집 욕구를 자극함과 동시에 팬이 수집한 포토카드를 투표권으로 이용해 아이돌 유닛 멤버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무한한 상상력의 경쟁장처럼 보일 지경이다.
팬덤을 이해한 후 방향 설정을
그러나 참신한 마케팅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초기 이달의소녀나 트리플에스가 펼친 전략은 케이팝 업계에서도 가장 이색적이고 과감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이 NCT DREAM이나 아이브만큼의 반향을 (아직) 이끌어내지 못한 건 외모나 실력, 노래의 퀄리티, 자본력 같은 것으로 갈음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어쩌면 독특하고 눈길을 끄는 마케팅이 아티스트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는 건 아닐까. 케이팝 아이돌에게는 외모, 실력과 더불어 ‘잘나감’도 ‘스탯(능력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잘나가는 아이돌을 소비하려 한다. 팬들도 종종 투자자 같은 시선을 가지고 향후 잘나갈 아이돌을 골라 ‘입덕’하려 한다. ‘잘나감’을 먼저, 혹은 동시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이색적인 전략만을 펼친다면 아이돌 입덕에 있어 ‘덕후 전용’이라는 낙인의 위험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팬들은 방송국 바깥의 크리에이터에게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유튜브 출연 붐을 선도한 채널 중 지상파 방송국과 연계돼 있거나 방송인이 출연하는 곳이 많았던 것도 무관하지 않다. 지상파 방송이 성공의 주요 척도였던 관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저렴’해질 것을 우려하기도 하고, 여기에는 크리에이터의 출신이나 전력 등 다양한 요소가 결부되기에 채널의 조회 수나 구독자 수처럼 정량화되기 쉽지 않다. 또한 인터넷 방송은 방송국보다 제약이 적은 만큼 아티스트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경계도 아직 높다.
케이팝 팬덤은 아티스트를 여론과 감정적 상처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 NFT 역시 팬덤 커뮤니티가 확고한 아티스트일수록 저항이 심하다는 분석이 있다. 팬덤은 이미 안전하게 즐기고 있는 영역에 대해 의외로 보수적이기도 하다.
팬덤이 팬심에 의해 놀이 반, 헌신 반으로 움직이며 동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케이팝 산업의 유구한 복음이다. 팬이 팬덤을 떠나는 수많은 이유 중에 ‘마케팅 전략에 동의할 수 없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이겠지만, 마케팅 역시 이 대원칙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성공적인 전략은 결국 일차적으로 이미 확립된 팬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이는 많은 경우 팬덤에 관한 일각의 편견과 달리 ‘아티스트의 모습을 본다’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콘텐츠나 캠페인 자체가 재미있거나 의미 있어야 하고 혹은 이것이 아티스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남기는 일이라고 팬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팬들에게 즐겁게 회자되고 다른 팬들에게 자랑할 내용이 되며, 그래서 더 큰 대외적 파급력과 팬덤 결속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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