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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떠나요 더 새롭게

 

글 김다영 / 여행 트렌드 연구소 <히치하이커> 대표. 소비자 관점의 여행 트렌드를 분석하고 강의한다. 저서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여행의 미래> 외.

 


 

지난 3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여행길이 활짝 열리며 소비자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우리가 여행을 바라보는 기준과 행태는 팬데믹을 거치며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다양한 여행사가 대화형 챗봇을 도입하고, 비대면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스마트 호텔이 대중화됐다. 또 크리에이터 경제의 성장은 세분화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 상품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여행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인식도 변해 지속가능성은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친환경 여행 소비부터 세계 각국의 관광 정책까지, 엔데믹 이후 달라진 여행 트렌드를 살펴본다.

 

기술 기반 여행으로의 변화

엔데믹 이후 가장 먼저 살펴볼 여행 트렌드는 트래블 테크, 여행산업 분야의 기술 발전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맞춤형 정보 제공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챗GPT의 출현으로 인해 온라인 여행 서비스 분야가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발 빠르게 챗GPT를 도입한 기업은 ‘마이리얼트립’이다. 2023년 2월 자사 앱 내에 ‘AI 여행플래너’라는 신규 기능을 추가했는데 기획부터 출시까지 두 달밖에 소요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AI 여행플래너는 일종의 챗봇으로 고객이 궁금한 점이나 여행 일정을 물으면 자동화된 답변을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기존의 챗GPT와 다른 점은 답변으로 제시된 텍스트 중 여행지나 장소에 해당하는 키워드에 링크가 달려있고 클릭하면 자사의 상품 검색 결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고객은 여행 일정을 설계/검색하는 데 드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익스피디아, 트립닷컴 등 글로벌 여행회사가 챗GPT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좌) 여행 관련 주제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마이리얼트립의 AI 여행플래너 (우) 예약번호 또는 QR코드로 1분 만에 체크인&아웃할 수 있는 L7 호텔 / 출처 myrealtrip.com, lottehotel.com

 

오프라인에서는 비대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호텔에서는 서비스의 전통인 대면 체크인 대신 전용 기기를 통한 비대면 체크인이 익숙해지고 있다. 롯데호텔의 라이프스타일 호텔 L7 강남과 L7 홍대는 바코드만으로 체크인할 수 있는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해 예약 시 문자로 전송되는 번호나 QR코드를 통해 무인단말기에서 체크인 수속을 마칠 수 있다. 메리어트 계열의 목시 호텔 인사동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는 키 리스(Keyless) 시스템을 도입해 객실 키 없이 스마트폰으로 입실이 가능하다.

 

새로운 콘텐츠로 트렌디한 경험을

다음은 크리에이터 경제의 성장이 소비 취향의 세분화와 맞물리는 접점이다. 크리에이터 경제란 유무형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뜻한다. 여행 분야의 크리에이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여행을 영상,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유통하고 1인 미디어로 활동하는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팬데믹 시기의 여행 콘텐츠는 일종의 대리만족으로 기능하며 곽튜브, 빠니보틀과 같은 셀럽 크리에이터를 탄생시켰다. 이들의 콘텐츠는 기존의 TV 예능과 달리 정제되지 않은 연출과 소통 방식 등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냈다. 엔데믹 이후 쏟아지는 해외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오히려 이들의 콘텐츠 기법과 여행 방법을 참고할 정도로 트렌드를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현지인이 액티비티를 기획해 올리면 여행자가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 / 출처 airbnb.co.kr

 

두 번째는 직접 여행자를 인솔하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여행 상품 크리에이터다. 앞으로 우리는 세분화된 여행 상품을 이러한 크리에이터에게서 직접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품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 플랫폼이 에어비앤비와 프립(frip)이다. 에어비앤비는 숙박 외에 ‘체험(experience)’이라는 카테고리를 통해 세계 각국의 현지인들이 여행자와 전문성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등록하도록 열어두고 있다. 프립 역시 개인 호스트가 언제든 입점해 자신만의 투어를 판매할 수 있다. 기존의 여행업이 대규모, 다인원이 만족할만한 관광 명소 패키지를 생산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의 여행업은 자신만의 팬덤이 있는 크리에이터가 진입해 트렌디한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느리지만 낭만적인 본질을 찾아

마지막은 지속가능한 여행으로의 전환이다. 무한히 팽창할 것만 같던 여행산업이 중단되며 역설적으로 과잉 관광의 폐해가 눈에 띄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여행을 향한 의지는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팬데믹 초기에 비치코밍(바닷가의 쓰레기 줍기), 플로깅(산에서 쓰레기 줍기)이 인기를 끌었다. 이는 업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호텔이 플로깅 체험을 포함한 숙박 패키지를 판매하고, 제주도의 오름 지킴이 활동과 여행을 결합한 에코투어 전문 여행사가 탄생했다.

지속가능성의 부상은 세계 각국의 관광 정책에도 반영되는 중이다. ‘오버 투어리즘’ 즉 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았던 하와이는 2021년부터 말라마(Malama, 보호)를 관광산업의 핵심 가치로 천명했다. 또 관광객이 전통문화와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에코 투어리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관광객이 말라마 캠페인과 연계된 호텔 패키지 상품을 예약하면, 해당 호텔이 지정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 결과 할인이나 무료 투숙의 혜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항공 운항을 제한하고 기차 여행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유럽의 변화도 뚜렷하다. 최근 프랑스는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서는 국내선의 운항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함께 항공 여행에 밀려 하나 둘 폐지된 유럽의 야간 기차 노선이 최근 들어 부활하고 있다. 기차 회사 유러피언 슬리퍼(European Sleeper)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야간 운행하는 침대 기차를 부활한다는 소식은 BBC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였다. 향후 전 세계의 여행산업은 지속가능한 여행이라는 큰 물줄기를 따라 이전보다 느리지만 더 낭만적인 본질과 좀 더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은 점차 더 개인화된 여가 행위로 나아가고 있다. 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각자의 니즈에 맞는 여행을 손쉽게 탐색하고 예약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엔데믹 이후 활짝 열린 여행의 문턱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발전한 서비스를 활용해 여행을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선택지가 다양해진 만큼 여행을 소비하는 우리의 기준과 의식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 시점이다. 현지 문화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투어에 참여해 로컬 친화적인 경험을 쌓고, 탄소 배출을 적게 하는 대중교통을 활용해 여행과 지속가능성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보는 새로운 여행을 준비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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