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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Play

주목할 만한 문장들

 

저는 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은 사회초년생입니다. 그러다 보니 최소 몇 년에서 몇 십 년 앞서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집,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 갈 수도 있는 길을 여성의 말로 접하다 보면 든든한 언니가 생긴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소위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지 외에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면서 시야가 트이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합니다. 책의 줄거리보다는 제가 얻은 삶의 태도가 담긴 구절을 보여드릴게요.

 

<출발선 뒤의 초조함> 박참새

 

여성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책이라 표지를 보자마자 집어 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 외에 다양한 일을 겸업하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김겨울, 이승희, 정지혜, 이슬아 창작가가 저마다 가진 일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을 볼 수 있어요.

굳이 싫어하는 걸 말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말하며 살아도 충분히 나를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순간 세계는 멈춘다. 자신을 향한 탐구의 자세가 인상적인 구절입니다. 더불어 이미 멋지게 커리어를 쌓고 있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인터뷰이들도 여전히 물음표를 갖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우리는 아직 버티는 중일까요? 언제쯤이면 무언가를 알게 될까요?라는 질문을 보며, 내가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는 용기도 얻었어요. 아마 저 역시도 평생 물음표를 단 채로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박연준

 

눈에 띄는 제목과 표지의 그림체에 끌려 선택했습니다. 제목과 달리 통통 튀는 경쾌한 에피소드들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력이 좋았어요. ‘절대로’란 말을 남발하는 시기는 축복받은 시기다. 때가 되면 온다. ‘절대로’ 뒤에 오는 말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마는 시기가. 작심삼일이라지만 작심은 얼마나 귀한 마음이며, 삼일은 얼마나 충분한 시간인가! ‘나는 그런 거 절대 안 할 거야’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호언장담하던 저도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의지가 꺾이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마음을 열고 새로운 자세로 일에 기쁘게 뛰어드는 제 모습을 기대하게 됐습니다.

설을 맞아 생각해본다. 올해는 뭔가를 끊으려고만 말고, 안 하던 일을 해볼까.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늘리지 말고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늘려볼까. 아끼지 말고 헤퍼져볼까. 할 일을 또박또박 하지 말고, 하지 않아도 될 일만 찾아서 해볼까. 마침 새해를 맞았는데 기대되는 일은 없고 걱정만 가득하던 1년 차 직장인이었던 저에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전반적으로 이 책은 경직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랑말랑한 기분을 전달해줍니다.

 

 

<모순> 양귀자

 

꽤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였지만 왠지 모르게 무거워 보이는 제목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스물다섯 살 생일 선물로 받아 스물다섯 동갑의 여성 주인공에게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의 가족과 연인을 둘러싼 이야기가 담긴 장편소설입니다. 생각보다 기승전결과 스토리 전개가 뚜렷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독백에서 느껴지는 성격, 사고방식, 삶의 태도가 변하는 과정이 저와 비슷해 후루룩 읽었습니다.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책의 뒤표지에 적혀있을 정도로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90년대에 나온 꽤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주관 있고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해나가는 주인공이 멋지게 느껴집니다. 비슷한 느낌의 여성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다면 양귀자 작가님이 쓴 또 다른 책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도 추천합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일은 했지만 명함이 없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던 인터뷰이와 그들의 딸까지 이어지는 업무 환경에서의 무언가를 담백하게 담아냅니다. 통계적으로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정리해줘 지식도 얻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다고 불리진 않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번의 삶에서 디자이너로, 셰프로,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는 경이롭습니다. 책임감, 능력, 욕심이 넘치는 그들의 삶을 보면 명함 한 장이 그렇게 가치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생에서 신기한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요. 이 문을 지난 이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건 분명 나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을 일이야. 취업을 앞두고, 결혼을 앞두고도 그랬답니다. 앞으로 겪을 모든 일들이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닌 나의 태도와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이라고 생각하면 지루한 직장생활이 좀 더 다채롭고 즐거워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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