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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Play

광고인의 서재를 털어라

 

늘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논리를 듣는 게 재미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캐묻고, 지구 반대편의 인종과 성별이 되어보고, 사이코패스가 되어 하루를 살아볼 수 있는 것.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책으로 다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나에게 타임머신이고 아바타이자 순간이동을 도와준 네 권의 책을 소개한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최고의 이야기꾼인 스티븐 킹이 알려주는 맛깔스러운 글쓰기 비법. 이 책은 제목과 작가 이름만으로도 안 읽을 수 없다. <그것> <캐리> <미스트> <그린마일> <쇼생크 탈출> <미저리> 등 영화 수십 편의 원작자이자 출간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인 스티븐 킹이 직접 글쓰기 비결을 알려준다니! 처음에는 자기개발서 같은 형식일 줄 알았는데 소설가답게 자신이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술술 읽다 보면 어느새 문장을 쓰는 기본기 같은 실질적인 비결도 쉽게 이해하게 된다. 다 읽고 나면 ‘그녀가 말했다’ 이 부사 하나 없는 단순한 문장이 얼마나 용기 있고 훌륭한 것인지 납득하게 된다. 간결하고 명확하고 매력적이게 기획서를 쓰는 것도 스티븐 킹이 말하는 유혹하는 글쓰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를 매료시키는 기획서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대홍기획 자료실을 찾아가보자!

 

My pick

‘글쓰기에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대개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 자신의 논점이나 어떤 심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 『유혹하는 글쓰기』 중

“스티븐 킹의 뼈 때리는 글쓰기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몇 구절입니다. 솔직하고 명쾌하고 유머러스까지 다 하는 그의 글쓰기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생각의 축제> 이어령

 

늘 아이데이션을 해야 하는 광고인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시대 최고 지성의 머릿속을 여행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사고능력을 엿볼 수 있다. 이토록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라면 아이데이션이 한결 수월할텐데… 숫자 0에 대한 다양한 해석부터 시인 이상이 문학 속에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방법까지, 이어령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문장 그리고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똑똑한 사람은 말을 참 간결하고 쉽게 하는구나!’ 이 책을 읽으며 열세 번 정도 느낀 것 같다.

 

My pick

정적, 어둠, 깊숙한 침몰… 밤은 양을 소멸시킨다. 숫자를 없애는 것이다. 밤은 숫자의 무덤 그리고 분할의 종착점이다. 거리도, 계산도, 한계도,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생동생동한 그것들이 잠들어버리는 순간… 어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수가 아니라 영혼일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감싸 안는 심연. - 『생각의 축제』 중

“‘밤’과 ‘숫자’ 이어령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단순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연결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Mark Haddon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자폐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많다. 이 책은 자폐증 소년이 살해당한 이웃집 개의 비밀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화자인 자폐 소년이 되어 생각의 회로를 따라가며 그의 독특한 문제 접근 방식에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아기자기한 삽화와 함께 자폐 소년만의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번역본도 출간됐지만 원서를 추천한 이유는 화자인 소년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어휘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영어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원서 완독의 뿌듯함은 덤이다.

 

My pick

소수는 모든 규칙들을 지웠을 때 남는 수다. 나는 소수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소수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당신이 한평생 생각하더라도 소수가 만들어지는 규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중

“수학처럼 인생에도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것을 정의하는 자폐 소년의 관점이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마이 코리안 델리> 벤 라이더 하우

 

업무를 하다 보면 종종 인류애를 상실한다. 그럴 때 마음속에 따뜻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책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억척스러운 한국인 장모와 백인 사위가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겪은 좌충우돌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작가 벤은 고지식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문예지의 편집자로 일하는 백인 남성이다. 그는 생활력 강한 이민 1.5세대 한국 여성과 결혼해 영어 한마디 못하는 친척들이 우당탕탕 거리는 처가살이로 시작해 장모님과 한인마트까지 운영하게 된다. 한국 이민자 가정 그리고 다문화 이웃들과 부대끼는 작가의 모습이 마치 시트콤을 보듯 재미있다.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 어느덧 잃었던 인류애가 회복된다.

 

My pick

개브와 나는 처음 세 달 동안 섹스를 전혀 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으므로. 아시아 사람들은 집 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불안했다. 게다가 박씨 집안의 상식으로는 벗어둔 셔츠는 입는 사람이 임자, 남은 닭다리는 먹는 사람이 임자였고 우리 방으로도 늘 사람들이 불쑥 들어와 호시탐탐 침대를 노리곤 했다. - 『마이 코리안 델리』 중

“백인 사위와 한국인 아내 그리고 처가 식구들의 동거. 모 광고에서 말한 ‘문명의 충돌’ 중에 가장 큰 충돌의 예 아닐까? 서로 파괴하고 융화되어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이야기의 서막을 잘 담아낸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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