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사이트2팀 강승혜 CⓔM
“종잡을 수 없는 현상들, 그러나 새로움은 적었던 한 해, 2024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
2023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가 가장 눈여겨본 현상은 그 어떤 것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까지 연평균 41% 성장했던 수제맥주는 급격히 성장세가 꺾이면서 위스키, 하이볼에 그 자리를 내줬고 ‘플렉스 소비’의 상징인 ‘오마카세’ 열풍도 마침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골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골프 열풍 역시 고금리가 가시화된 2022년 가을을 정점으로 잦아들었다. 어제까지 오마카세를 먹으러 다니던 사람들이 오픈채팅 ‘거지방’에서 무지출을 결심하고, 마라탕과 탕후루가 유행하는 한편 술과 음료에는 제로 열풍이 불었다. 매년 연말이면 나오는 많은 트렌드 전망에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발견이나 서로 일치하는 부분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처럼 급부상했던 것이 갑자기 훅 꺼져버리고 앞뒤가 다른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한다. 일관성 없이 상황과 시류에 따라 너무 빠르게 선호와 행동과 태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 가장 새로운 건 바로 이런 현상 자체가 아닐까.
그래서 2024 라이프시그널 리포트에서는 새로움의 키워드가 아니라, 소비 행동 속 작은 변화들을 조망해 이를 관통하는 의미를 ‘현상의 시그널’로, 선제적 대응 사례로부터 엿보이는 유효한 접근 방식 혹은 태도를 ‘대응의 실마리’로 추출, 제시하기로 했다. 먼저 사람들의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5개의 차원에 걸쳐 정리한 현상의 시그널을 통해 종잡을 수 없는 세태를 이해해보자.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3高에 대한 이야기가 내내 반복된 한 해였다. 소비심리는 급격히 위축됐고 새로운 소비와 트렌드의 첨병인 젊은 층의 소비여력이 감소하면서 새로운 트렌드의 태동과 탄생에도 제동이 걸렸다. 마트와 편의점, 이커머스몰에서는 PB와 초저가 기획전이 인기를 끌고 ‘미친 가성비’를 무기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기반 이커머스가 전 연령대에 빠르게 침투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은 초저가, 불황형 소비에만 급급하지는 않다. 과감한 소비 지향적 문화가 번지면서도 가성비 소비가 덩달아 늘어나는 모순적 현상, 불황기 소비의 특징은 ‘편향 소비’다. 호캉스를 즐기면서도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먹거리를 해결하는 행태 덕분에 호텔에 입점한 편의점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편향 소비의 경향을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여행 지출이다. 2023년 상반기 신용카드 지출액에서 여행 지출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여행의 니즈 또한 ‘도장깨기’식 섭렵에서 다채롭고 깊은 경험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2023년의 열풍을 돌이켜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돈을 쓰는 영역은 다채롭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상품, 즉 ‘경험재’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는 여행의 니즈가 진화하는 방향성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지속적 경험의 ‘꺼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은 잠시 반짝하더라도 금방 관심을 잃어버린다. 결국 소비와 비소비를 가르는 데에는 그들의 경험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올해 유행한 말로 ‘도파민’을 빼놓을 수 없다. SNS 상에서 도파민 언급량은 작년 대비 무려 422% 증가했다. 보통 ‘터진다’, ‘폭발한다’, ‘중독된다’ 등의 서술어와 함께 쓰이면서 강렬한 자극적 즐거움을 표현하는 어구로 사용된다. 새로운 콘텐츠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싶다면 댓글이나 리뷰에 도파민이 터진다는 언급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한편 콘텐츠 형식에서도 숏츠, 릴스, 틱톡 등 기승전결 필요 없이 핵심만 짧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숏폼이 대세다.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는 트렌드는 콘텐츠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올해는 극단적인 단맛의 탕후루가 인기를 끌면서 마라탕을 먹고 탕후루를 즐긴다는 신조어 ‘마라탕후루’가 등장했다. 이토록 극단적인 맛을 추구하면서도 혈당스파이크를 걱정하며 술과 음료는 슈거제로를 찾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한편 해를 넘어 만인의 소비를 촉진하는 감성이 있으니 바로 ‘귀여움’이다. 지난해 발행된 <2023 라이프시그널 리포트>에서 예견한 대로 2023년이 다 끝나가는 현재까지 한층 다양한 캐릭터 굿즈와 콜라보, 팝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3년 최고의 귀여움이라면 역시 전 국민의 아기 판다, 푸바오겠다.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푸바오 팝업스토어에서 1인당 굿즈 평균 구매금액은 60~70만원이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한 힘은 뭘까?
푸바오에 대한 사람들의 언급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가장 중심에 있는 ‘귀여움’과 빈번하게 언급되는 ‘무해함’이라는 감성을 관찰할 수 있다. 무해함, 사전적 의미로는 ‘해롭지 않다’는 의미일 뿐인데 여기엔 귀여움을 넘어서는 다른 감성이 내포돼 있다. 무해함의 포인트는 부드러운 털이나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이 아니다. 풀이하자면 무해함이란 경쟁과 자극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꼬인 데나 앞뒤 계산 없이 단순하며, 뛰어나진 않지만 불만 없이 평온하고 선량한 성격, 천진하고 순수한 언행이나 태도 같은 것으로 결국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가리킨다. 그렇게 ‘귀여움’의 감성에 ‘무해함’이 결합되면 사람들이 열광하는 평화롭고 공격성이 없으며 악의 없이 순수하다는 의미가 비로소 완전해진다. 귀여움과 무해함에 무장해제된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자극 중독 시대의 반대급부로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가 하면 스마트폰의 만능이 싫은 사람들은 피쳐폰을 다시 찾기도 한다. 2023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점 역시 자극과 경쟁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사람들이 실은 얼마나 그 반대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시사한다. 참으로 상반된 현상이 아닐까. 자극적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평화롭고 악의 없는 순수함을 갈망하는, 무해와 자극, 양극단의 선호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고 있다.
요즘 쇼핑은 목적형/발견형 쇼핑으로 나뉜다. 사야 할 것이 명확한 목적형 쇼핑은 속도와 효율이 중요하다. 따라서 검색과 스크롤로 원하는 물건을 찾고 비교하고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이 대체로 커버하고 있다. 한편 발견형 쇼핑은 보고 찾고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매장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포인트다. 트렌드세터의 78%가 쇼핑은 물론 즐길거리와 먹거리를 갖춘 복합 공간에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고 응답했고, 그러한 공간의 대표 격인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최단기간에 연간 매출 1조를 달성했다. 하지만 모든 리테일 공간이 더현대서울처럼 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발견형 쇼핑이 꼭 대단한 공간적 경험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의 구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한 오프라인 리테일이 있다면 역시 다이소와 올리브영이다. 두 업체는 나란히 연 매출 3조를 바라보고 있다. 다이소는 ‘MZ들의 놀이터’로 떠오르더니 불황을 맞아 날개를 달았고 올리브영은 H&B 시장을 평정했다. 그런데 다이소와 올리브영을 소셜데이터로 살펴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구경하다’, ‘털다’, ‘산책하다’ 등이 공통 연관어로 나타나는 것이다. 목적 없이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털어오게 되는 곳, 결국 발견형 쇼핑을 만족시키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조건이란 목적 없이 ‘산책하듯 둘러보다가 발견하는 기쁨을 주는’ 것이 포인트다.
요즘 데이트 코스에는 맛집, 카페, 때로는 술만이 아니라 ‘소품샵’이 낀다. 행리단길 소품샵, 연남동 소품샵, 성수동 소품샵 등 핫플레이스의 지역 검색 연관어에 ‘~ 소품샵’이 상위권에 랭크된다는 건 산책하듯 둘러보다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발견형 쇼핑이 비단 대형 복합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한편 이러한 발견형 쇼핑의 공간들이 인기를 끄는 건 앞서 ‘소비와 비소비’에서 언급한 경험재가 사람들의 지갑을 연다는 점과도 통하는 맥락이다.
온라인 쇼핑 초창기만 해도 사람들은 지역과 시간의 제약을 초월해 하염없이 쇼핑몰 웹페이지를 유영하면서 필요한 것 같기도 한 아이템을 골라 일단 장바구니에 넣었다. 발견형 쇼핑의 공간은 원래 온라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온라인몰이란 정확히 내가 원하는 물건을 빨리 사는 곳,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곳이 됐다. 종합몰들이 점차 전문관 중심의 버티컬몰 체제를 갖추는 이유는 온라인 쇼핑이 목적형 소비의 수단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접점을 늘리는 온라인에서 명성을 얻은 브랜드들이 오프라인으로 역진출하는 것은 물건 판매 이상의 접촉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무신사가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것에는 온라인 점유율의 시장지배적 지위 등 복합적인 사업적 고려도 물론 존재하지만, 고객과의 접촉과 관계의 고려 역시 내재돼 있다. 물건을 소유하는 충족감은 빠르게 소멸되지만 경험으로 전달된 만족감은 오래 남는 까닭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콜포비아’, 즉 전화를 불편해하는 걸 넘어 두려워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메신저, SNS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사전 예고나 시간 약속 없이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를 불청객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생활의 많은 부분이 스마트폰으로 말하지 않고 해결된다. 그런 영향으로 비대면을 더 선호하는 걸 넘어서 대면이나 직접 대화를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히려 혼자 하는 활동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낄 정도다.
다만 완벽한 혼자는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다. 뭐든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소통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혼자 활동을 선호하지만, 메신저나 SNS를 통해 언제나 타인과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타난 것이 ‘밥친구’, ‘켜잠’이다. ‘밥친구’는 혼밥을 하면서 편하게 보는 콘텐츠를 가리킨다. 요즘 인기인 밥친구가 될 수 있는 콘텐츠는 편집이나 자막이 그다지 없이 긴 분량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형태, 중간에 반찬을 집다가 잠시 딴생각을 해도 크게 연결에 무리가 없는, 집중하지 않고 흘려들어도 되는 콘텐츠다. 대체로 나영석의 ‘지글지글’이나 ‘나불나불’, 유재석의 ‘핑계고’처럼 익숙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주제를 특정하지 않고 수다를 떠는 콘텐츠가 밥친구로 많이 언급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보이스톡을 켜놓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저 숨소리만 공유하면서 숙면을 취하는 ‘켜잠’도 유사한 맥락이다.
한편 이와 상반된 현상이 요즘 모임에서 포착된다. 요즘은 운동이나 독서 모임 등 관심사나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모임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회원 모집 단계부터 ‘뒤풀이가 없다’ ‘필요한 시간에 운동만 하고 가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친목을 위한 회식이나 커뮤니티 활동이 강조되던 과거와 달리 요즘 모임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함께 있지만 목표한 일을 하고 나면 미련 없이 헤어진다. 혼자 있어도 연결되고 싶지만 함께 있어도 혼자이길 원하는 새로운 관계 지향이 읽힌다.
그래서 운동, 게임, 덕질, 절약, 스터디, 음악 등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이 주목받고 있다. 익명게시판 기반 커뮤니티 문화가 채팅으로 옮겨가면서 오픈채팅방이 활성화된다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탭에서 검색해 보면 정말 다양한 관심사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안에서는 익명으로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채팅방 테마에 해당하지 않는 대화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혼자 있어도 연결, 함께 있어도 혼자이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오픈채팅은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연결됐다가도 원할 때는 바로 ‘나가기’를 누를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이에 카카오는 지난 5월 중순 ‘오픈채팅 Lite’를 선보였다. 카카오는 오픈채팅을 향후 사업의 중요한 키(key)로 간주하고 있다.
올해 가장 새로운 것을 꼽으라면 단연 생성 AI, 챗GPT다. 이전까지 우리에게 AI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었을 텐데, 2016년 당시 한국고용정보원이 AI로 대체불가능한 직업을 조사한 결과가 있어 살펴봤다. 당시 AI로 대체불가능한 직업 1위는 무려 화가였다. 그러나 미드저니와 DALL-E가 출현한 2023년 현재, AI가 가장 활발히 또한 쉽게 활용되는 분야는 그림, 음악 등 예술분야다. 심지어 2022년 말에는 미국의 한 미술 공모전에서 생성 AI로 그린 그림이 1위를 차지하면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한편 대화형 생성 AI가 등장하며 사람들이 직접 AI를 경험하게 되니 AI에 대한 관심이나 기대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73%의 사람들이 챗GPT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고, 58%는 챗GPT로 인한 변화가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AI의 획기적인 성능을 체험하면서 이로 인해 위협받을 인간적 가치에 대한 막연한 우려도 공존한다. 그 막연한 우려의 핵심은 역시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할리우드에서 발발한 북미 예술계 배우들의 파업 사태는 그러한 두려움의 날 선 표출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란 오히려 몸을 쓰는 직업, 사회적 관계와 연관된 직종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간호사 보다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의사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충주시 유튜브를 운영하는 김선태 주무관은 챗GPT의 등장으로 공무원이란 직업도 없어질 거란 전망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도 받아주는 공무원이 여전히 필요하다며 웃는다.
생성 AI를 가깝게 접하면서 도리어 AI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 듯하다. AI는 지시된 업무를 처리하는 면에서는 인간보다 유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생성 AI의 시대에는 질문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생각이나 구상, 혹은 의지와 희망을 갖지 않는 AI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AI가 정확히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질문하고 명령하는 것, 즉 ‘프롬프트’가 중요하다. 그래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뜬다고도 하고, 서점에는 프롬프트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해설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프롬프트를 잘 쓰기 이전에 필요한 건 결국 인간의 생각이다. 따라서 AI와 함께 하는 세상에선 인간의 생각, 구상, 기획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2024 라이프시그널: 현상의 시그널_ 모순의 일상화
경제감각, 선호형성, 관계운용, 구매방식, 기술수용의 5개 차원에서 양극단으로 벌어지는 현상의 시그널들. 우리는 이를 ‘모순의 일상화’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기업과 브랜드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다. 한동안 지속될 불황 속에 효율도 욕망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인하기 어렵다. 변화가 워낙 빠르다 보니 준비하는 사이에 이미 시기를 놓쳐 대응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 또한 워낙 빠르게 변해 붙잡아 두기가 어렵다. 백인백색, 만 갈래로 취향이 흩어져 제대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이런 세태에 기업은, 브랜드는 어떻게 접근하고 대응해야 할까?
상품이나 서비스의 범위, 비즈니스 모델, 경쟁 범위 등 업태와 업종 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빅 블러(Big Blur)’의 시대, “우린 원래 이랬는데?!”라는 생각은 통하지 않는다. 팬데믹과 경제불황을 맞아 송두리째 변해버린 소비 행태와 패턴에 대응하려면 경계 없는 연상과 확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근린 종합생활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는 편의점을 들 수 있다. 편의점은 높은 트래픽, 주거지 인근의 입지를 바탕으로 신선식품까지 갖추고 근린 장보기 채널이 되는가 하면 앱을 통한 주류 예약 및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반값택배로 트래픽을 끌어 모으더니, 이제는 엔터 사와 협력해 아이돌 음반과 굿즈 판매까지 구색을 확장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컬래버레이션이 합리적인 비즈니스 방식이라는 건 이미 입증됐다. 이제는 화제성 획득을 넘어 타깃 확장, 경험 확대, 단독상품 기획 등 더 똑똑한 목적 달성을 위한 창의적인 연합이 필요하다.
좋은 사례로 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가 10~20대 대상의 새로운 화장품 판로로 주목받으면서 여러 화장품社와 협업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투쿨포스쿨과 협업해 런칭한 TAG는 뛰어난 제품력으로 화제몰이 중이다. 한편 GS25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넷플릭스 핫도그, 제주라거, 믹스넛, 콤보팝콘을 단독판매했다. 이는 넷플릭스 작품을 정주행 할 때 즐길 수 있는 먹거리라는 컨셉에 넷플릭스의 즐거움을 오프라인으로 연결한 창의적인 기획으로 호평받았다.
고객의 지출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더 나은 혹은 더 새로운 것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이런 경향은 기업으로 하여금 롤러코스터 같은 상승과 하락을 경험하게 한다. 나날이 새롭고 더 알고 싶은 대상이 되기 위해 브랜드는 스스로를 즐겁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느껴지도록 연출해야 한다.
한 스타트업이 내놓은 ‘서울박스’는 한국산 상품들을 K-컬처의 종합적 경험재로 포장한 좋은 사례다. 서울박스 안에는 한국 스낵, 라면, 음료, K-POP/K-드라마 상품, 그밖에 한국의 독특한 상품들이 들어있다. 글로벌 K-컬처 팬들에게는 단순한 한국 상품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질 것이다.
정리하자면 상황과 시류에 따라 일관성 없이 급변하는 관심과 태도에 맞춰 대응하기 위해서는 진정 사람답게 생각해야만 한다. 경계를 허물고 의외의 창의적인 연결을 만들어내고 경험의 지평을 넓혀주는 상품, 즉 경험재로 연출해내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의 결과다. 그래서 결국 관건은 누가 더 흥미롭게, 의외성 있게, 똑똑하게 연상하고 연결하고 연출하는가에 있다. 끊임없이 연상하고 연결하고 연출해야 팔리는 시대, 결국 가장 필요한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기획력, 휴먼 씽킹(Human Think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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