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주영 / 남성 패션 매거진 <아레나옴므플러스> 편집장
라틴어로 기계의 신이란 뜻을 가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패션 브랜드다. 이들의 옷이나 액세서리는 새로운 세대에게 흥미롭게 다가간다. 실제로 잘 팔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브랜드는 옷을 팔기 이전에 문화로 말을 건넨다.
여행이나 출장길에 오를 때 마치 순례자처럼 발 도장을 찍었던 ‘공간’이 있다.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지어놓은 매장이다. 난 이걸 ‘데우스 성지’라고 불렀다. 내가 찾아 헤맨 성지는 브랜드 컬처가 집대성된 그런 공간이었다. 제일 먼저 경험한 건 (지금은 철수한)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였다. 1층은 브런치와 음료를 즐기는 카페이고 2층은 모터사이클이 한두 대 전시돼 있고 카페 손님들을 위한 좌석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은 옷을 팔기보다는 브랜드의 철학을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인도네시아 발리 짱구 지역에 자리 잡은 ‘열정의 사원(Temple of enthusiasm)’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이곳에는 수십 대의 바이크가 전시돼 있고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며 심지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하고 햄버거 등을 비롯한 식사와 술을 포함한 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밀라노에 문을 연 정비소 느낌의 공간도 방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브랜드가 태어난 호주 시드니 캠퍼타운에 자리한 최초의 성지에 발을 디뎠다. 홍대 인근에 문을 연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서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프와 모터사이클 문화로부터
이렇게 성지라는 표현을 하니 뭔가 과장되고 전설적인 것을 서술하는 듯하다. 하지만 2006년생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데 이 공간들은 필수적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패션 아이템을 팔기 위해 브랜드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창립자 데어 제닝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보는 게 옳다. 조금 놀라운 나이인 65세에 브랜드를 창립한 데어 제닝스에게 서프 문화와 모터사이클은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일본 여행 중 오토바이 커스텀 및 튜닝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것을 브랜드의 골조로 삼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존경, 그리고 문화에 대한 열정이 뒷받침되어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스트리트 브랜드라 일컫는 꽤 많은 브랜드들이 이와 같은 고유한 문화를 바탕 삼아 설립됐다. 전 세계 유스 컬처를 뜨겁게 달궜던 슈프림과 팔라스 스케이트보드는 스케이트 보딩을 포함한 스트리트 컬처의 모든 것에 대한 리스펙트가 담겨 있다. 또 다른 브랜드 스투시가 그래피티와 서프 컬처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 역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커뮤니티 지향적 브랜드
다시 한번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성지 순례로 돌아가보자. 시드니에서 시작해 밀라노와 도쿄, 로스앤젤레스와 서울,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그다지 관련성을 찾기 쉽지 않은 지역에 데우스는 안착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데우스의 지형도는 명확해진다. 이 모든 곳에는 자연과 도시의 역사성이 혼재돼 있다. 그래서 서퍼들이 머물고, 바이커들이 들른다. 국적과 인종이라는 관습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공동체로서의 의식이 안착된다. 나는 데우스가 패션 브랜드로 각광받기 이전에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표출했기에 그 문화와 관련 없는 소비자들까지 흡수했다고 믿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숍에 들러 가장 기본적인 티셔츠 한 장을 골라보라. 왼쪽 심장 위에는 브랜드의 로고가, 뒷면에는 큼직하게 브랜드가 자리 잡은 도시의 주소가 프린트돼 있다. 그러니까 데우스는 디자인만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브랜드가 아니다. 등 뒤에 새겨진 주소가 자랑스러워지는, 마치 창립자 데어 제닝스의 청춘 시절을 휘감았던 히피 문화와 같은 그런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브랜드다.
로컬리티에 대한 존중
사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패션 브랜드로써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저물어가는 줄만 알았다. 20세기부터 우리를 사로잡았던 슈프림마저 힘을 잃어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데우스는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다(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의 편집숍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다시금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데우스는 언제나 자신들의 거점을 기반으로 로컬 컬처와 융화되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여느 글로벌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차이점인 듯하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그 도시의 정체성을 다른 도시에 전하려는 것과는 반대다.
역으로 데우스는 자신들이 둥지를 튼 도시와 동일화되고, 일체화되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지의 로컬 문화를 존중하고 그 문화를 향유하는 도시의 청춘들과 친구가 된다. 동시에 그들은 각 지역별 특색을 살린 도시만의 사원을 구축한다. 시드니는 말 그대로 바이커 카페이며, 도쿄는 모던한 시티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했다. 서울 역시 모던하다. 발리의 짱구 비치 사원은 일종의 종교적 접근까지 가능하게 한다. 밀라노는 디자인 도시의 면모를 한껏 살렸다. 아직 가보지 못한 로스앤젤레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그럴 것이라 예측한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감성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강점은 로컬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정체성을 독특하게 결합하는 것이라 결론 내릴 수 있다. 이렇게 현지 문화와 글로벌 브랜드의 철학 및 디자인이 혼합된 결과물이 바로 지역별 플래그십 스토어다. 이런 가치를 강조하는 브랜드는 수많은 동조자를 양산해냈다. 특히 그들의 레트로한 감성은 밀레니얼과 젠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들에게 데우스가 선보이는 문화는 완전히 새로운 ‘뉴트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원주민이라 지칭되는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합친 잘파세대)에게 데우스와 같은 브랜드가 선보이는 문화는 아날로그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게 데우스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과거 나와 같은 X세대가 서울에서 즐겨 찾았던 T.G.I.프라이데이스, 베니건스 등과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향수와 맞닿아있다. 그곳에 가면 신기한 문화가 가득했고, 맛난 음식들로 넘쳐났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설령 서핑을 해보지 못했어도, 오토바이는 커녕 자전거조차 즐기지 못한대도 괜찮다. 이곳에 들러 그들의 동조자가 되면 그만이다. 그때부터 당신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친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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