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해림 / 푸드 칼럼니스트, 푸드 콘텐츠 포르테·계절미식 대표
“차 한잔 하시죠” 초점 흐린 옛날 영화에나 나올 법한 플러팅이다. 시대는 커피의 것이다. 대체 누가 커피를 두고 차를 마신단 말인가? 커피는 세련됐으며, 앞서가고, 재기 넘치고, 유쾌하고 유려하다. 반면 차는 구닥다리에 뒤쳐졌고, 아둔하고, 센스 없고, 투박하다. 그러니 요즘 “차 한잔 하시죠”라고 말한다면 이건 플러팅이 아니라 거의 싸우자는 얘기다. “커피 같이 마실까요?”가 요즘 시대에 옳은 플러팅 대사다.
시류를 서핑하는 윤리 마케팅
구닥다리이며 뒤쳐졌고, 아둔하며 센스 없고 투박한 차를, 그러나 세련됐으며 앞서가고 재기 넘치고 유쾌하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브랜드가 여기에 있다. 차의 주요 소비국이자 주요 가공국 중 하나인 영국의 ‘브루티코(Brew Tea Co)’다. 2012년 리버풀 외곽에서 조그맣게 시작해 현재는 맨체스터에 자리한 브루티코는 최근 영국에서 가장 핫한 티 브랜드로 꼽힌다. 재료는 시대에 뒤처진 ‘차’이지만, 마케팅은 시류를 적절히 서핑해 반영해가고 있다.
가장 먼저 윤리성. 바야흐로 윤리성은 21세기에 빼놓을 수 없는 기초이자 최고 효과의 마케팅 덕목이다. 이들, 무척 윤리적으로 고결하게 앞서나간다. 슬릭(sleek)하고 매력 있다. 비즈니스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에 부여되는 브랜드인 비콥(B-Corp: 74개국, 150개 산업에서 35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 중)에 가입했으며 열대우림동맹(Rainforest Alliance)에도 가입해 있다. 열대우림동맹은 생물 다양성 보존, 환경보호, 노동자 권리 보호 등의 활동을 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다. 브루티코는 이 인증을 가진 농장의 찻잎을 사용하는 것으로 제국주의의 잔재를 씻어내고 찻잎 수확 노동자의 공정한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한편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플라스틱 공해로부터도 자유롭다. 대부분의 포장재는 종이박스로 되어 있다. 티백의 소재는 소일론(Soilon)이다. 빠르게 생분해돼 흙으로 돌아간다. 네이처플렉스 포장재는 목재 펄프에서 나온 셀룰로오스로 제작되며 100% 퇴비화 가능한 소재로 수분을 잘 잡아주는 코팅이 돼 있다.
이러한 올바름을 일부러 장삿속으로 꾸며냈는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브루티코는 회사가 성장해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윤리적인 업그레이드 또한 하나씩 챙겨 이뤄왔다. “좋은 차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좋은 비즈니스이기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브루티코의 뼈에 박힌 윤리적인 정신이다.
현대의 영국 차(Modern British Tea)
낡고 지루한 차를 재기 넘치고 유쾌한 것으로 탈바꿈시킨 브루티코는 세 가지 키워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현대의, 영국, 차. 먼저 ‘현재성’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차를 즐길 수 있는 접근성, 찻잎이 출발한 곳(테루아)을 알 수 있는 투명성, 웹에 차린 디지털 플래그십, 고객을 최우선에 둔 경험 개발 네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적’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얼그레이로부터 아쌈으로 펼쳐지는 다양성, 어디에 내놔도 으쓱한 아름다운 디자인 두 가지를 꼽았다.
‘차’에 대해서는 차 본연의 맛이 제대로 나는 ‘맛이 우선’, 합성 성분이나 향을 사용하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언제나 잘 말린 홀 리프(차 가공 과정에서 인위적인 공정을 최소화해 본래의 맛이 자연스레 나는)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즉, 나에게는 이 말이 “우리는 싸구려 티백과 정말 좋은 잎차 사이 어디쯤이에요”라는 말로 들리는데, 실제 마셔본 바로도 브루티코의 차가 떠올리게 한 건 ‘합리적인 럭셔리’였다. 어설픈 호텔 어메니티 홍차보다는 30배쯤 나으면서, 좋은 홍찻잎으로 내린 완성도 높은 홍차에 비해서는 아쉽지만, 대신 티백이라 간편하고 최소한 홀 리프 차라서 맛의 저점을 드높게 올려치고 있다. 기존 차 시장이 싸구려 티백 시장과 그 극단의 고급 시장으로 양극화 돼있던 것을 브루티코는 그 사이의 니치를 설정해 새로운 소비자군을 만들어낸 것이다.
차 취향도 보장하라!
접근 방식부터가 달랐다. 브루티코는 차가 기호식품이라는 기본을 설정하고 접근했다. 대량생산을 하고 있음에도 롤드 홀 리프(Rolled whole leaves: 이 가공 방식이 차 맛이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럽다)를 견지하고 있는 이유다. 아무리 티백 차여도 맛을 포기해선 안된다는 의지가 롤드 홀 리프에 투영돼 있다.
브루티코의 철학 중 코어를 이루는 것 중 하나가 ‘차에 대해서도 위스키나 와인, 커피와 같은 취향-문화가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치 와인 한 병을 두고 7명의 시음자들이 일주일 내내 떠들 수 있는 것처럼, 차 한 주전자에 대해서도 테루아나 가공, 브루잉 등 시시콜콜한 디테일에 대해 평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과연 브루티코의 야망이 이뤄질까?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이미 이뤄져 있다. 지금 우리가 보이차를 마시며 일주일 내내 떠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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