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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M Report

디지털 시대의 가난, 그리고 마케팅

 

정보 소외 계층 끌어안기

 

글 김봉섭 /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 언론학 박사.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이용자의 인식과 태도 변화를 탐구한다. 저서 <사이버불링의 이해와 대책> <디지털 디바이드> 외.

 


 

대학 시절 은사님을 뵌 자리였다. 근황을 나누자마자 은사님께서는 질문을 쏟아내셨다. “이 앱은 어떻게 쓰는 거야?” “예전에 썼던 앱이 없어졌는데 뭘 잘못 만진 거지?” 한참 이런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독신으로 살아오신 터라 스마트폰 관련 문제를 물어볼 가족이 주위에 없어 불편이 크셨던 것이다. 학계의 인정과 제자들의 존경도 손바닥만한 기계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처럼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기기나 서비스 이용에 있어 사람들 간 차이를 흔히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 한다. 정보를 가진 계층과 못 가진 계층의 격차를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세계 각국이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천명하며 일반 국민과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등 정보취약계층 간 정보에 대한 접근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디지털 격차는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의 가난에 대한 구분에 따르면 사회적 가난에 해당한다. 남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사회적 가난이라 하는데, 디지털 격차가 바로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정보취약계층이 되는 이중적인 특성을 지닌 것도 디지털 격차라 할 수 있다. 고령에 저소득층이며 노화로 장애를 경험하는 것처럼 정보취약계층은 개별적인 계층의 집단이 아니라 계층 간 중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정보취약계층에게는 단지 불편함이 문제였다. 은행이 온라인 뱅킹으로 바뀌면서 점포가 점점 없어지고, 1층에서 2층으로 옮겨졌어도 내 몸 하나 부지런하면 됐다. 온라인 쇼핑으로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물건은 버스를 갈아타고서라도 직접 가 현금을 주고 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는 불편을 넘어 불이익을 낳고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을 만들고 있다. 몇 해 전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는 재난문자가 일부 휴대전화에는 발송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정보취약계층이 주로 사용하는 2G, 3G 폰에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취약계층은 가뜩이나 재난에 취약한데, 아예 경보조차 받지 못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공적 마스크 판매 정보가 스마트폰 앱으로만 공개돼 정보취약계층을 불안케 했던 사례도 있다. 공적 마스크 판매 정보를 얻지 못한 이들은 번번이 마스크 구입에 허탕을 쳐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더 컸다.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통보를 받은 60대 남성이 격리 조치를 어기고 잠적했다가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그는 격리 조치되면 급하게 변제해야 할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에 잠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안타까운 것은 이 남성이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됐음에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이용이 서툴러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회 현상을 파악하는 데이터를 잘못 해석한 것에서 비롯된다. 전 국민이 1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지금,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 제공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급률 이면에 존재하는 활용 수준 차이를 간과할 수 있다.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과 디지털기기 이용 능력은 일반 국민 대비 약 60%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데이터 경제가 활성화됐을 때 정보취약계층에 대한 데이터 부족은 더 걱정된다. 데이터를 활용해 공공·행정 서비스를 최적화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들은 데이터를 생성하는 스마트기기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어려워 이들 계층의 데이터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공공·행정 서비스는 고려되지 않거나, 왜곡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보취약계층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 추이 /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업의 경우 구매력이 있는 계층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생각에 정보취약계층을 마케팅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용으로 발명된 엘리베이터는 이제 거의 모든 건물에 설치되어 오히려 일반인이 더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정에 하나씩은 있는 전동칫솔도 원래 팔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제품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계층의 니즈를 정확히 분석하거나 파악하지 않는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실버폰’이다. 실버폰은 타깃인 고령층 소비자의 기능적, 가격적 니즈는 충족시켰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니즈를 간과해 시장에서 실패했다. 스마트폰이 사치품이나 극소수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지만, 위치재(Positional goods) 성격을 띠어 실버폰이 외면받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격차로 인한 불평등과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등 사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앞서 타깃 대상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니즈 분석이 요구된다. 구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보취약계층에 대한 데이터는 정부나 기업 양쪽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기존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이들 계층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니즈의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여기에 제품과 서비스 개발 초기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을 적용한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이용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식을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도입한다면 누구나 편하고 쉽게 기회를 공유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객층의 폭도 훨씬 넓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 기기는 이용자에게 기존 매체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요구하기에 제조사의 참여가 필요하다. 텔레비전과 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의 이용자에게는 보다(See)와 듣다(Hear)의 역할이 요구됐다면 스마트폰 같은 뉴미디어는 이외에도 찾다(Search)와 쓰다(Write) 등 이용자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용자가 새로운 기기를 적극적이고 올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LG는 매년 500권 이상의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들어 시각장애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며, 저소득층 자녀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IT 발전소’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뱅크가 시니어 대상의 스마트폰 금융 교육을 실시하는 등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기업의 참여는 공익적 활동 수행과 사회적 책임의 이행뿐만 아니라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카카오뱅크의 시니어 디지털 금융 교육 / 출처 카카오뱅크 블로그

 

2019년 공익광고로 송출된 ‘내일의 나’라는 광고가 있다. 청년이 내일의 나인 노인에게 키오스크 이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내용이다. 누구나 나이는 든다. 불길한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도 있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일이 없더라도 노화로 인해 자연적으로 신체기능 저하에 따른 장애가 온다. 정보취약계층이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따라서 정보취약계층을 고려한 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제공, 사회적 공익활동은 비용이 아닌 투자다. 미래의 나를 대비하고 평등한 기회의 향유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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