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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시장의 진화, 모두의 일상이 되다

 

글 김혁주 / 로컬 매니지먼트 기업 <비로컬 주식회사> 대표. 로컬 트렌드를 소개하고 교육·컨설팅을 돕기 위해 인터넷 신문 <beLocal> 발행. 로컬크리에이터를 위한 멤버십 미디어 코워킹스페이스 <DAIR>를 운영한다.

 


 

수년 전부터 ‘로컬(Local)’이라는 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사전에서는 ‘국내의’ ‘지방’ ‘지역’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지만, 어느새 이러한 각각의 의미보다는 ‘로컬’이라는 원어 그 자체로 통용된다.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은 1물1어로 대응되는 표현보다는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로 인해 로컬이라는 단어 사용은 더욱 빈번해지는 추세다.

 

#1  로컬의 새로운 의미

필자는 다양한 로컬을 탐사하며 로컬크리에이터 사례를 모으고, 이들과의 협업을 통한 비즈니스를 만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최근 로컬에 대한 설명을 자주 요구받는데, 강연 등을 통해 필자가 언급하는 로컬은 사전적 의미와 사뭇 다르다. 그 이유는 로컬이 더 이상 지역성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로컬크리에이터나 그 활동의 수혜자인 MZ세대의 경우 이미 자연스럽게 로컬 속에서 살고 있어 굳이 힘주어 로컬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로컬이 생겨나고 로컬크리에이터가 등장한 후 MZ세대가 호응한 게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세대가 등장하고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비즈니스가 태동하면서 생활과 비즈니스 생태계의 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필자가 제시한 전제 속에서 이제 로컬은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로컬은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기반한 각각의 취향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서적 커뮤니티의 영역’이다. 최근에는 물리적 영역을 뛰어넘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좌) JYP엔터가 기획, 일본에서 선발해 한국에서 훈련을 마친 걸그룹 니쥬. 한국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우) 해외 시청자 사이에서 드라마 내 한복, 갓 등이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 <킹덤>. 이전에는 로컬이 세계화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지역에만 국한됐지만, 이제 글로벌로 진출하는 로컬, 세계로 확대되는 로컬이 중심이다. 이미 세계는 하나가 되어 로컬이 곧 글로벌이 되고 있다. 출처 니쥬 유튜브 영상 캡처, 넷플릭스 페이스북 캡처 / 클릭 시 이동

 

#2  로컬크리에이터의 활약

‘로컬크리에이터’ 또한 생소할 것이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펼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제안하는 혁신창업가’라 설명하면 적절할 듯하다.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예술인, 활동가, 스타트업 등 유형 또한 다양하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은 그들의 창의성이 반영된 독특한 상점, F&B 매장, 공방, 커뮤니티 공간 등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포가 고객을 유입하는 앵커스토어로 자리매김하면서 감춰진 골목을 뜨는 골목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동화가 시작된 원도심이나 지방 소도시, 대도시 변두리의 소외된 골목이 뜨기 시작하자 ‘골목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어 창업에 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창의성을 발현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없어 직접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공간을 만들다 보니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후암동에 정착한 로컬크리에이터 <도시공감협동조합>. 마을공동체 활성화, 공간재생을 후암동 프로젝트로 풀어나간다. (좌) 북캉스, 소규모 강좌 개최 공간인 <후암서재> (우) 하루 단 한 명을 위한 공유공간 <후암별채> 출처 도시공감협동조합 페이스북 / 클릭 시 이동
속초의 커뮤니티호스텔 <소호259>. 으슥한 분위기의 동명동 골목을 소호거리로 탈바꿈시키며 지역 관광산업 부흥에 일조하고 있다. 독특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해가고 있다. 출처 비로컬

 

대부분 기성화된 도시공간을 피해 자기가 살고(또는 일하고) 싶은 곳이나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로컬크리에이터의 공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차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트렌드세터인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며 비즈니스가 성립하기 시작한다. 프로슈머(Prosumer) 성향이 강한 밀레니얼 세대가 가세하자,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입지의 제약을 초월해 다양한 외부 고객의 유입을 가능케 하며 소외된 앵커스토어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을 들여도 활성화하기 어려운 지역재생을 위한 프런티어로 주목받고 있다.

 

#3  안전한 생활의 욕구가 불러올 뉴 이촌향도

로컬크리에이터의 등장은 로컬 비즈니스가 산업적 가치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로컬 비즈니스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격리와 재택근무의 경험이 쌓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포스트 코로나로 인해 생존의 문제가 대두되자 처음엔 비대면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그러나 인간에겐 생존 이외에 ‘생활’ 또한 중요하다. 오랜 격리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렵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기 쉽지 않다. 비대면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삶의 결핍을 충족시켜주기는 어렵다.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상권을 의미하는 신조어 ‘슬세권’의 등장은 집단감염의 위험이 만연한 상황 속 신뢰할 수 있는 저마다의 경계선이 생활영역 내에 설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살고 있는 골목, 로컬의 존재감이다.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안전한 생활의 욕구는 살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새로운 이촌향도의 움직임을 불러올지 모른다. 선행사례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개인의 안전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자연재해, 재난 시에도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이어가려는 수요가 겹쳐 동부지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서부지방으로 이주가 촉진되는 현상이 시작됐다.

 

#4  비즈니스와 생활의 노마드 라이프

이런 현상은 <골목길 자본론> 저자로 로컬과 로컬크리에이터 연구를 이어가는 모종린 교수의 저서와 칼럼 등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세미나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단순한 언택트 기술 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닌, 로컬적 감성까지 결합한 하이터치(High touch)가 요구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속에는 ‘탈물질적 가치 추구’라는, 주류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로컬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은 맞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이런 움직임이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디지털 노마드 현상은 일터나 일자리에 특정되지 않는 전례를 만들었고, 이미 비즈니스는 언택트로, 생활에서는 로컬과의 하이터치를 경험하며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성립시켰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지속가능한 골목상권을 주제로 열린 특별 강연 <포스트 코로나, 로컬에서 미래 그린다>

 

마지막으로 섣부른 예측을 던져본다면, 이제 로컬 비즈니스는 대세이며 이는 당분간 불가역적 현상이 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로컬을 부각시켜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어 온 로컬이 모두의 일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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