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
글 CS8팀 박수진 CⓔM
태어난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일출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철없던 시절 밤새 술 마시다가 아침을 맞이한 적은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일출은 수평선 너머 동그랗게 떠오르는 해를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딱히 자연물이나 신께 소원을 비는 타입은 아니라 일출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을뿐더러 새벽부터 채비해 산이나 바다로 떠날 만큼 부지런함을 갖춘 인간도 아닌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일출에 대한 소회를 끄집어낸 이유는 연말과 새해 그 언저리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되면 괜히 동해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만 봤던 붉은 해가 궁금해서다. 물론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길 만큼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올해는 유독 아쉽다. 일출을 보겠다는 평범한 소망이 혹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해하는 몰상식이 될까 생각도 전에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고로 올해의 일출 감상도 영 틀려버린 거다. 진짜 해를 보러 떠났을지, 매년 그렇듯 이불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계획 앞에 우려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 서글프다. 그래서 준비했다. 갈 곳 없는 연말·연초, 마음마저 갈 곳을 잃지 않도록 다잡아줄 크리에이티브들. 지난했던 한 해 우리와 함께 2020년을 지나온 크리에이티브들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함께 감상해보자.
Google : 올해의 검색어
올 연말 이불 속에서 감상할 컨텐츠로 넷플릭스 대신 구글을 추천한다. 구글 ‘올해의 검색어’ 페이지다. 광고 캠페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색해 보일지도 모르나,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아둘 방법으로 고안한 툴이라면 이 역시 커다란 범주에서 마케팅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구글은 키워드 검색 데이터를 써머리해 짧은 카드뉴스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그 내용이 꽤 흥미롭다. “올해는 남을 돕는 법에 대한 검색 횟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텃밭 가꾸는 법이 2019년에 비해 2배 더 많이 검색됐다” “잠이 안 와서 걱정인가요?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불면증에 관한 검색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거든요” 등 전 세계인의 검색어가 공감과 위로를 넘어 직관과 통찰까지 선사하는 페이지. 2020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면 구글 키워드와 함께 시간을 되짚어보는 건 어떨까.
The New York Times : Those We’ve Lost
뉴욕타임즈는 코로나19로 희생된 인물 1만 명의 이야기를 담은 디지털 부고록을 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분명 어떤 이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였을 그들의 이야기. 페이지 속 인물은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낯설지만은 않다. 그들의 얼굴과 표정 속에 우리와 익숙한 이웃들의 면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매일 아침 부지런히 확진자 수는 확인하면서, 사망자 수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한 걸까. 올해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또 다른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버티는 일이 더 시급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무탈함에 감사하면서도 타인의 슬픔에 위로를 보낼 만큼의 여력이 남지 않았었나 보다. 누군가를 보내는 일은 늘 어렵고 슬프다. 그 이별이 예기치 못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예상할 수 없던 일이 줄줄이 이어진 올해, 힘겨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짧은 위로를 보낸다.
뉴질랜드 관광청 : Messages From New Zealand
남반구에서 날아온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실제로 지금 남반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보다 훨씬 기온이 높을 테니 이 영상은 감성을 넘어 물리적으로도 꽤 따스한 영상이다. 뉴질랜드 관광청에서 선보인 이번 캠페인은 “당신이 세상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로 이뤄져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들의 메시지가 한결같이 위대한 이야기가 아닌 평온한 삶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것. 한 해의 시작과 끝에 서서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가만히 떠올려보자. 확신하건대 남반구에 사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올해는 많은 것들이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새해엔 분명 지금껏 본 적 없는 새 해가 뜬다. 일출을 찾아 떠나던 사람들의 진짜 목적지는 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걸 그저 눈부시게 시작하기 위함이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새’라는 접두사는 늘 희망적이고 그 한 글자는 우리 모두가 기대도 충분할 만큼 든든하다. ‘해’는 그 어떤 것보다 따뜻하고 환하다. 그러니 다 함께 조금 더 기다려보자. 새해엔 새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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