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은 변한다, 내가 바뀌지 않더라도
이 시대 감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여유’다. 여유라고? 청년실업에, 출산율 저하에, 미세먼지도 나쁨인데 여유가 이 시대의 대표 감성이라는데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은지를 보면 ‘여유’가 이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감성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본인이 성실을 가치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현실적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훌쩍 떠나 여유를 즐길 줄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삶은 무엇인가? 혼자만의 여유 있는 저녁, 제주 바람 쐬며 힐링 중, 반차 내고 동네책방에서 망중한, 아기 맡기고 여유롭게 산책. 한 때는 유기견을 돌보고,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아파트와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내 집을 짓는 개념 있는 삶이 간지로 여겨지는 때가 있었다.
지금은 혼자서, 나만의, 조용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삶이 간지로 여겨진다. 이를 두고 사실은 경제적,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으면서 척하는 거라고, 거짓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되는 허세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삶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된다. 삶에는 구질구질한 현실과 더불어 보여주고 싶은 허세도 포함되어 있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거두어 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맨눈으로 바라본다면 소비자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우리 제품과 서비스의 비즈니스 기회도 높아진다. 기억하자. 생활의 변화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이 추구하는 감성에 의해 좌우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
- 자아실현은 중요하지만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場)이 아니다
2019년을 준비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일터다.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다양한 유연근무 제도, 밀레니얼 세대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합쳐져서 일터의 모습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보다 ‘자기’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 두루뭉술한 회사와 팀의 비전을 위해 개인의 열정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업무는 개인 단위로 분배되어야 하고, 업무 수행의 충족 요건과 미충족 요건 역시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2시간 휴가 제도 ‘반반차’는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제도다. 긴시간은 아니지만 잠깐의 짬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육아나 가사, 듣고 싶은 강의, 하루 정도 느긋한 아침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하다. ‘반반차’라는 새로운 규칙이 생김으로써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자기중심적이다’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표현보다는 ‘자기존중감이 높다’는 중립적 표현이 새로운 세대를 더 잘 설명해 준다. 자기존중감이 높은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원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무임승차 역시 바라는 바는 아니다. 자기존중감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와 일하기 위해 개인으로의 업무 분배, 조직을 위한 개인의 기여도 측정, 개인의 성과와 기여도에 대한 알림이 필요하다.
주거 생활의 변화
- 우리가 원하는 것은 1인 가구가 아니라 1인용 삶이다
문제의 핵심은 혼자 사느냐 여럿이 사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각자의 삶을 존중 받고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1인 가구화 현상’이다. 혼술은 술 마실 친구가 없거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혼자’와 연관된 감성은 ‘외롭다’가 아니고 ‘편하다’이다. 이미 2012년부터 소셜빅데이터 상에서 ‘혼자+외롭다’보다 ‘혼자+편하다’가 높았고,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혼자와 관련한 또 다른 오해는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제품과 여럿이 같이 사는 사람의 제품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어프라이어를 예로 들어보자. 에어프라이어는 1인 가구에서 먼저 구입하기 시작하여 밥솥보다 유용한 아이템으로 입소문을 타고 다인 가구로 확산된 제품이다. 가전의 소비주체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1인 가구의 소비 경험이 다인 가구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족을 겨냥한 제품이 크기와 기능을 축소하여 1인 가구용 제품으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 산다고 해서 작은 TV, 작은 세탁기, 작은 냉장고를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내 취향대로 모아두고 싶어서 작고 예쁜 음료 냉장고를 사서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둔다. 이 냉장고의 핵심은 작은 크기가 아니라 나만의 냉장고라는 점이다. 가족 모두의 것 일 때보다 특정 개인의 ‘내 것’이 되었을 때 내 브랜드와 제품은 애착의 대상이 된다.
매체의 변화
- 아버지도 유튜브를 본다, 다만 아들과 다른 콘텐츠를 볼 뿐이다
매체로서 공중파 방송이 아니라 유튜브가 부상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현상이다. 한 가지 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유튜브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튜브는 젊은 채널이다. 하지만 60대 이상의 고령층이 유튜브를 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고령층은 자신이 유튜브를 보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상을 접한다. 단톡방에서 공유된 링크를 눌러서 보는 영상의 포맷은 공중파 방송의 뉴스와 동일하다.
콘텐츠와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선택지도 그만큼 많아진다. 진실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결국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가진 이들이 한 채널로 모여든다. 하나의 진실에 대해서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하나의 진실이 정말 참이라고 박수 치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떠나서 받아들일만한 진실을 찾으면 그만이다. 취향과 성향으로 특화된 유튜브 채널, 광고를 건너뛰기 위한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되고 있는 유튜브 라이브 등 유튜브의 진화는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광고와 매체 산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 의견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고, 강화되는지 보기 위해서라도 유튜브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의 인구통계학적 정보보다 그의 유튜브 구독 채널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노는 방식의 변화
- 돈은 없는데 호텔에서 바캉스는 즐긴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릴렉스 체어를 사고, 앱으로 수면패턴을 체크하고, 제주도로 힐링 여행을 떠나고, 수시로 때때로 호캉스를 즐긴다. 왜일까? 나는 소중하니까. 힐링은 너무 오래 전에 유행한 단어 같지만, 여전히 유효한 단어이다. 다만 그 의미가 바뀌었다. 2010년 초반의 ‘힐링’은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픈 과거를 속시원히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고 이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기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살다가 솔직히 터 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후반의 ‘힐링’은 스트레스 받은 본인을 스스로 위안하는 자기 보상 심리의 소비자 여행을 뜻한다. 부산에 위치한 프라이버시를 강조한 특급 호텔 관계자는 호텔 투숙객이 생각보다 젊은 층이어서 놀랐다고 한다. 나이 지긋하신 회장님을 주타깃층으로 고려했는데 젊은 커플, 영유아 아기를 동반한 부부들이 많아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 40, 50만원이라는 가격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특급호텔에서의 휴식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태도에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태도는,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나중으로 유예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지금의 행복과 경험을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태도는 더 큰 집, 더 큰 차를 포기한 대가가 아니다. ‘누림’의 순간을 뒤로 미루지 않겠다는 가치관의 반영이다. 때로는 어떤 말 자체가 가치 판단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N포 세대라는 말에는 좌절과 실패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누가, 무엇을 포기했단 말인가? 누구나 꿈을 꾼다. 다만 다른 꿈을 꿀 뿐이다.
박현영 연구원 / 다음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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