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내 처음 미래사회를 다룬 만화영화 ‘2020 원더키드(1989년 作)’가 내후년이고, 집 밖에서도 TV 드라마를 보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 소망은 언제 어디서든 움직이는 작은 스크린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으며 코 흘리개적 회상으로 남게 됐다. 이토록 놀라운 변화를 주도해 왔던 스마트폰이 도입된 지 9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영화처럼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직은 약 인공지능, 해 볼 만한 게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의 인공지능 찬반론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듯이,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에 대한 불안감은 실체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 인공지능의 시대로, 강 인공지능은 2010년, 초 인공지능은 2060년에 도래할 것이라고 하니, 우리가 우려하는 로봇의 인류 침공 시나리오는 잠시 접어 두어도 될 것 같다. ‘약 인공지능’은 인간 두뇌의 일부만 모사하여 특정 목적에 제한된 지능을 프로그래밍 한 것으로, 규칙을 벗어난 창조학습이 불가하므로 절대로 사람과 같은 이해력을 갖기는 어렵다. ‘강 인공지능’은 추상적이나 실제적인 주제의 전후 상황을 감지하고 추론하는 등 인간 본래의 능력에 근접하므로 우리가 우려하는 영화 속 위협은 강 인공지능 시대에나 가야 가능한 이야기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과 기계의 싸움에 해당하는 이슈라기 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다른 인간과의 싸움에 비유하는 것이 적합하다 하겠다.
더 강력해지는 AI 플랫폼 시대
인공지능의 파급력은 놀라운 기술력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새로운 플랫폼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플랫폼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이었지만, 앞으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이 한데 어우러진 테크놀로지의 장이 될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컴퓨터 스스로 소비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마케팅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과학적 영역이 커지게 될 것이고, 테크놀로지의 활용 수준에 따라 마케팅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 위에서 테크놀로지를 장착한 마케터들은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고객의 라이프를 설계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디지털 정보력으로 무장한 소비자에게 권력을 빼앗겨 왔던 그들이 기술 인프라에서 소비자의 삶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되면서 잃어버렸던 권력을 다시 찾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인간을 넘어서는 AI 핵심 역량은 미래 예측
인공지능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하게 될 일은 과거의 많은 사례들을 학습하고 행동이 일어나는 패턴을 발견하여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측 분석이 널리 확대되고 있는 분야는 단연 개인화 추천이다. 넷플릭스에서 다운로드 되는 영화의 약 80%가 추천에서 발생할 정도로 개인화 추천 시스템에 대한 적용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단언컨대 내년에는 개인화 추천이 마케팅의 주요 테마가 될 것이다. 예측은 그 알고리즘에 들어가는 소비자 변수들도 상당히 많을뿐더러 대단히 디테일하다.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구축, 데이터의 정제와 결합, 행동 예측을 위한 새로운 변수 탐색과 머신러닝 알고리즘 개발, 그리고 이들을 구현하기 위한 자동화 시스템의 관리라는 플랫폼 체계 위에서 마케팅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AI 플랫폼의 첫 번째 위협, 의사결정의 대행
이러한 AI 플랫폼을 기반으로 실행되는 마케팅은 어떠한 양상일까?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은 기술적인 부분이고, 소비자는 사람을 대신해 고도의 기술을 장착한 기계를 통해 브랜드나 서비스를 접하게 된다. 우리가 시리나 알렉사라고 부르는 AI 비서가 곧 서비스센터 직원이나 영업사원을 대신하는 기계가 된다. 이러한 기계가 소비자와 이야기하는 대화를 살펴보면 기-승-전-‘추천’이다.
AI 비서 고객님,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 나에게 어울리는 트렌치코트 추천해 줘.
AI 비서 고객님께 어울리는 코트를 추천해 드려요. 소비자 평이 좋은 것들 중에서 고객님 취향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순서로 제시하였어요.
고객 첫 번째 것이 좋아 보이네. 그걸로 구입해줘.
AI 비서 네 알겠습니다.
우리가 진짜 놀라고 주목해야 할 것은 생활 곳곳에 쌓이는 데이터를 가지고 AI 비서가 소비자의 ’선택’을 콘트롤하고 있다는 점이다. AI 플랫폼이 바꿔놓을 마케팅의 풍경은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형성되는 선택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에서 AI 비서의 추천 목록에 들어갈 수 있는 추천 우위의 전략을 짜는 것으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AI 플랫폼의 두 번째 위협, 소비자 접점의 통합
AI 플랫폼이 가져올 또 다른 마케팅의 양상은 채널 블랙홀 현상이다. AI가 모든 소비자 채널들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AI 플랫폼의 위력은 실시간 쌓이는 고객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AI 플랫폼에 내장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학습을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소비자가 플랫폼을 더 많이 쓸수록 그들의 성향이 더 잘 분석되어 AI가 그들의 니즈를 더 잘 충족시킬 것이며, 더 높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듯 소비자의 접점이 AI 하나로 모아지게 되면, 마케터의 타겟 역시 AI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채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자던 IMC란 마케팅 용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소비자 접점을 총괄해 왔던 종합 광고대행사가 두려워할 대상은 더 이상 디지털 에이전시가 아니라 시리나 알렉사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Branding 아닌 Consuming 시대!
예측 모델링을 등에 업은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개인 소비자의 동태를 추적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때 타깃의 필요에 맞는 서비스가 중요해지는데, 이는 ‘그들이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것을, 원하는 스타일로 제공’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일관적인 구매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옴니채널 마케팅을 추구했던 유통사들은 ‘일관된 경험’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하여 소비자 중심의 채널 융합을 이루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즉 유통 채널마다 동일한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구매 이력과 현재 상황에 맞게 채널과 메시지를 업데이트하여 그때그때 바꾸어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마케터들은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외쳐왔지만, 필자의 눈에는 AI 플랫폼 기반의 마케팅 환경이야말로 고객 니즈가 진정으로 실현되는 소비자 중심의 장인 것으로 보인다.
AI 시대, 마케팅 지각 변동의 시작
지금까지 마케팅을 지탱해 왔던 브랜딩은 소비자 머릿속에 차별화된 이미지를 각인시켜 제품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소비자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해왔다. 하지만 AI 플랫폼이 마케팅의 메인 스트림으로 들어오는 순간 브랜드 이론들이 무력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케터는 AI 플랫폼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행동 데이터들을 통해 소비의 패턴을 읽어내고 실시간 변화하는 고객 상황에 맞게 행동을 최적화하는 애자일 방식의 마케팅 액션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제 마케터는 AI가 작동하는 맞춤형 구매 기준을 이해하는 것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싸움의 장이 바뀌고 있으니 마케터의 손에 든 무기도 달라져야 한다. 추천 예측률을 높일 수 있는 변수들로 마케팅 관리 지표를 리셋해야 할 것이며, AI의 추천 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고객의 필요에 닿아 있는 브랜드 차별점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추천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는 행태 데이터에 대한 분석 역량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이제 Pull 마케팅에서 Push 마케팅 시대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선택하도록 ‘브랜딩’이라는 가치 창조 활동으로 매력을 어필하고 기다리던 시대는 갔다. 대신, 우리의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고객의 소비 흐름이 최적화되어 관리될 수 있도록 ‘소비자 여정 브랜딩’을 해야 하는 AI 시대가 우리 눈앞에 열리고 있다.
대홍기획 디빅스센터 / 김유나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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