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서울을 벗어난다. 계절의 색(色)이 꽃으로, 녹음으로, 단풍으로, 설원으로 화하며 눈을 풍요롭게 한다. 자연의 음(音)이 물 소리로, 바람 소리로, 불 소리로, 산의 소리로 다채로이 느껴진다. 좋은 사람과 함께 웅장한 자연의 품으로 떠나는 짧은 시간, 도시와 분리된 몸과 마음이 빠르게 충전됨을 오감으로 느낀다. 그래서 캠핑을 사랑한다.
캠핑은 불편함을 즐기는 여행이다. 특히 노지로 떠나는 캠핑에는 일상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화장실, 전기, 수도조차 없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텐트를 세우기도 어렵다. 비가 오면 습도와의 전쟁이 펼쳐지고 장비가 온통 젖는다. 물 근처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이 가꾸고 관리하는 장소가 아니기에 노면은 불규칙하고 수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거져있다. 봄과 가을엔 새벽 어스름의 한기를, 여름에는 날벌레의 습격을, 겨울에는 추위와 안전(난로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을 걱정한다.
일거리는 또 어찌나 많은지 하루 종일 부산히 움직여야 한다. 커피 한잔, 밥 한 그릇도 직접 움직여서 장만하고 정리해야 한다. 텐트와 타프(그늘막)를 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장비를 세팅, 설치하는 일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없다. 마음대로 씻을 수도 없다. 따뜻한 물이 있을 리 만무하고 식수만 챙기기에도 짐이 버겁도록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캠핑을 떠난 사람들은 이 불편함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우선 자연 속에 내 머물 곳을 짓는다는 즐거움이 있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 느껴지는 발의 감각은 아스팔트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며 이른 저녁 벌레들의 합창 소리는 적어도 자동차 배기음보다는 아름답게 들린다. 에어컨, 보일러처럼 편하지는 않으나 그늘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불을 쬐는 아늑함도 있다. 무엇보다 흐르는 물, 고요한 산, 빛나는 별, 타오르는 불이 있다. 회색빛 건물 숲이 아니라 녹음으로 물든 진짜배기 절경이 있다. 근심보다는 여유가, 코로나19의 답답함보다는 마스크를 벗어던진 해방감이 있다. 바삐 살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롭게 맞이하는 시간들이 있다. 살다가 한 번쯤 자연 속에서 불편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캠핑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다른 요소는 사람. 같이 몸을 움직이고 멋들어진 경치를 즐기며 일상에서는 하기 힘들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기회가 된다. 설령 할 말이 많지 않아도 좋다. 물 흐르는 소리와 불 타오르는 소리는 적막함 사이에서 훌륭한 완충역할을 한다. 적막함이 평온함으로 승화한다. 불편한 침상에서 함께 잠을 청한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보다 조금 더 친밀해진 관계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은 서로 간 양해가 필요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캠핑의 재미를 한껏 올려준다. 자연 속에서 좋은 사람과 먹는 식사는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 라면을 끓여도 별미요, 고기를 구워 먹으면 맛집이 부럽지 않다. 해산물이라도 조금 준비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물론 뒷정리가 고단하지만 그래도 먹는 재미가 우선이다. 조금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한 팁을 소개한다.
Tip 1 평범하게 굽지 말고, 튀기듯 바삭하게
고기의 기본은 마이야르 반응! ‘노 컬러 노 페이버’를 명심하자. 넓은 팬을 준비하고 기름을 넉넉히 둘러 중불로 충분히 달군 다음 물기를 제거한 고기를 넣는다. 고기는 수육용으로 썰어둔 미박삼겹살(오겹살)을 추천한다. 각 면을 뒤집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굽는다. 특히 미박 껍데기는 ‘이러다 탈 텐데’ 싶을 때까지. 모든 면에 갈색반응이 맴돌면 마늘을 굵게 다져 향을 첨가하고 버터를 졸여 감칠맛을 더한다. 소스는? 필요 없다. 참기름장을 더하면 엄청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추천하는 야채는 미나리, 참나물, 고사리 등 향이 있는 종류. 남은 돼지기름에 묵은지를 굽거나 볶음밥을 해도 별미다.
Tip 2 고급진 캠핑용 수육
수육용 고기를 모든 면이 노릇하도록 굽는다. 이때 양파와 대파를 넣고 아래로는 가스불을 위로는 토치의 불을 동시에 쐬어주자. 야채의 겉면이 그을리며 불향이 입혀진다. 그다음 초벌된 고기와 야채를 끓는 물에 넣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가량 삶아준다. 주의할 점! 물이 한번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조절할 것. 모든 요리의 기본은 불 조절이다. 빠글빠글이 아니라 보글보글 끓인다. 여기에 다시다, 치킨스톡, 된장을 한 스푼 넣으면 식당에서 사 먹는 맛이 난다. 돼지고기 삶은 물은 버리지 말고 된장찌개를 끓여도 좋고 간을 더해 생면을 넣으면 더 좋다. 마치 돈코츠 라멘 같은 진한 육수 맛이 입안에 펼쳐진다.
Tip 3 김치 x 돼지고기
돼지고기의 클래식은 누가 뭐래도 김치와의 조합에서 나오는 맛이다. 묵은지 400~600g과 돼지고기를 동량으로 넣는데 특히 앞다리살을 추천한다. 물을 잠기도록 부은 뒤 양념을 한다. 된장, 설탕, 소주, 간 마늘 각 1스푼, 고춧가루 2스푼, 액젓(새우젓) 1스푼, 대파 한 뿌리를 넣고 불을 올린다.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낮춘 뒤 1시간 더 끓이면 끝! 시원한 계곡 밑에서 먹는 김치찜은 엄마 손맛과 견줄만 하다.
Tip 4 간단한, 하지만 있어 보이는 고기말이
값이 저렴하고 맛도 좋은 소고기 불고기거리를 준비한다. 야채는 쪽파면 충분하다. 고기를 펴 쪽파를 넣고 돌돌 말아준다. 밀가루나 부침가루가 있다면 훌륭한 접착제가 되므로 기억할 것. 기름 두르고 달군 팬에 고기를 넣고 익힌다. 불고기는 얇아서 금방 익는다. 말린 고기에 쌓인 쪽파는 익히지 않는 것이 좋다. 육향 진한 고기와 알싸한 쪽파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소스는 참기름, 진간장, 설탕, 물 각 1스푼, 간 마늘 반 스푼으로 통상적인 불고기 양념을 옅게 하면 충분하다. 귀찮다면 튜브형 고추냉이에 참기름장을 준비할 것. 저렴하지만 고급진 캠핑요리가 완성된다.
Tip 5 중화풍 매운 라면 페이스토
고춧가루를 종이컵 1컵 분량으로 준비해 볼에 넣어둔다. 팬에 1컵의 식용유를 넣고 달군다. 불은 중불을 유지한다. 대파와 양파를 잘게 다져 한 컵을, 간 마늘은 소복이 쌓아 1스푼 준비해 달군 기름에 넣고 볶는다. 언제까지? 마늘과 대파가 갈색으로 변하고 양파의 수분이 증발할 때까지. 충분히 볶아지면 대파, 양파, 마늘이 하모니를 이루며 야채거품이 생긴다. 이때 불을 끄고 볼에 덜어둔 고춧가루 위로 끓는 기름을 부으면 완성. 명심해야 할 것은 기름과 고춧가루가 만나면 쉽게 탈 수 있으니 반드시 따로 준비해야 한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맛일 것이다. 장담한다. 라면 1봉지당 3/4스푼 정도를 넣으면 적당하다.
Tip 6 고기맛 진한 전골풍 페이스토
원리는 위의 중화풍 페이스토와 같다. 간 돼지고기 600g을 준비한다. 식용유를 3~4스푼 둘러 달군 팬에 고기를 넣고 중불로 볶아준다. 언제까지? 고기에서 수분이 나와 증발하고 기름에 자글자글 튀겨질 때까지. 이때 송송 썬 대파 1대와 된장을 3스푼 넣고 볶는다. 파는 많을수록 좋다. 충분히 볶아졌다면 불을 끄거나 약불로 낮춰두고 고춧가루를 5~6스푼 넣고 고추기름을 만든다. 고춧가루의 풋내가 사라지고 고소함이 증폭된다. 완성된 페이스토는 냉장 보관하면 1~2주는 거뜬하다. 적정량은 라면 1봉에 어른 숟갈로 2~3스푼. 맛의 완성을 위해 끓인 라면에 송송 썬 대파와 간 마늘 반 스푼, 후추 1꼬집을 넣자.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맛의 변화구와 함께 ‘이거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는 말이 나온다. 간이 충분하니 물은 일반 라면보다 한 컵 더 넣는 센스를 발휘하자.
바야흐로 캠핑 붐이다. 예비 캠퍼들에게 한 가지만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 모두 자연 속에서 비로소 해방감과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니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나 하나쯤이야’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하천과 산, 들에 쓰레기를 버리고 함부로 불을 피우지 말자. 흔적을 남기지 말자. 캠핑은 도시를 벗어나 그 지역과 자연과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지역을 존중하고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가졌으면 한다. 감성과 힐링을 느꼈다면 다른 사람이 이를 느낄 기회를 주자. ‘아니 온 듯’ 캠핑을 즐기기 위한 기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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