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민용준 /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에스콰이어> 매거진 피처 디렉터를 지냈다. 영화,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트렌드에 대한 칼럼을 쓰고 강연, 방송 활동을 한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든다. 누구나 콘텐츠를 소비한다. 누구나 콘텐츠를 말한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분야를 막론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콘텐츠라는 단어를 발음한다. 언제부터 콘텐츠라는 것이 이렇게 우리의 삶을 지배한 것일까. 그러니까 대체 콘텐츠란 무엇인가.
사실 요즘 말하는 콘텐츠라는 단어에는 변별력이 없다. 인간이 즐기는 낙으로 분류되는 무엇이든 콘텐츠로 분류해 욱여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한때에는 콘텐츠라는 단어가 무엇이라 명명하기 애매한 장르를 의미하는 듯했다. 인터넷 상에서 돌고 도는 밈 같은 영상을 지칭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콘텐츠라 명명된다. 이미지도, 영상도, 언어도, 다 콘텐츠다. 영화도, 이야기도, 책도, 만화도, 다 콘텐츠다. 할리우드의 영화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를 콘텐츠라 부르는 것에 반발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 말인즉슨 이미 영화라는 것도 콘텐츠라 불리는 시대가 됐다는 반증일 것이다. 콘텐츠라는 이름 아래 수용하지 못할 낙이 없다.
콘텐츠라는 단어의 영향력이 커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전화 기능이 있는 컴퓨터이기도, TV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온갖 낙을 스트리밍하는 플레이어나 다름없다. 통화는 안 해도 음악은 듣는다. 영화도 보고, 웹툰도 보고, 책도 읽고, 그냥 다 즐긴다. 그래서 요즘 10대나 20대는 TV를 보지 않는다. 거실 앞에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보기 위해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한 곳에서 보면 된다. 덕분에 카페에서 마주 앉은 이들이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풍경이 만연한 세상이 됐지만, 사람이 없는 건 견뎌도 스마트폰이 없는 건 견디기 힘든 세상이다.
다양한 OTT를 비롯해 유튜브나 SNS에는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너무 많아서 뭘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콘텐츠를 소개해주는 콘텐츠까지 나온다. 그야말로 콘텐츠 범람의 시대다. 그 수많은 콘텐츠가 경계 없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위시한 콘텐츠 소비의 시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각개전투 양상은 대통합과 대전환의 연합종횡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듯 인기 웹툰을 영화로 만드는 건 당연하지만 단순히 원작의 저작권을 양도하는 수준을 넘어 원작의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가 직접 드라마도 만들고, 영화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위 지적재산권이라고 하는 IP(Intellectual Property)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런 흐름 덕분이다. 과거에는 큰 인기를 모은 웹툰을 연재한 작가나 작가가 소속된 회사에서 드라마나 영화 계약을 맺고 그에 따른 계약금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요즘에는 자체적으로 드라마나 영화로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IP를 확보하는 주요한 방법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활성화된 웹툰과 웹소설 연재처라 할 수 있는 양대 포털 서비스 회사 네이버와 카카오가 직접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N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콘텐츠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IP는 말 그대로 황금알이다. 성공한 혹은 성공 가능성이 예상되는 콘텐츠는 양식으로 변주해 더 너른 시장에서 소비를 권장하고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한 IP를 확보하는 사업 자체가 잠재적 재산 가치를 확대하는 기술로 평가받는 것이다. <미생>이나 <신과 함께>처럼 작가나 소속사가 판권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받거나 수익에 따른 러닝 개런티를 받는 것을 넘어 애초에 작품의 연재처 역할을 하는 기업에서 드라마나 영화 기획과 제작에 참여하며 원작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요즘의 경향이다.
OTT 플랫폼의 다양화와 다변화는 이런 방향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해 구독 모델로 수익을 창출하는 다양한 OTT 서비스 업체의 경쟁이 가속화될수록 콘텐츠의 중요성이 언급된다. 유료구독의 필요조건은 구독하고 싶은 콘텐츠의 유무이므로 화제성을 갖춘 콘텐츠를 보유한 OTT 서비스의 구독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런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넷플릭스의 <스위트홈>을 비롯해 <D.P.>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과 같은 화제작은 모두 웹툰을 원작으로 둔 작품이고, 애플TV플러스의 화제작 <파친코>는 유명 원작 소설을 극화한 작품이다.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제작 중인 <무빙>은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글로벌 OTT 플랫폼의 화제성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된다.
잘 알다시피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한국 시청자의 심금만 울리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OTT 서비스로 <나의 아저씨>를 본 동시대의 문호 파울로 코엘료가 트위터에 극찬을 남기는 시대다. 최근 한국영화 <브로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배우 섭외 배경을 설명하면서 <나의 아저씨>로 아이유를, <이태원 클라쓰>로 이주영을 봤다고 말한 바 있다. 콘텐츠의 경계는 물론 소비자의 경계도 사라진 시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OTT 서비스를 구독하는 시대이지만 주된 소비층은 단연 MZ세대다. 설문조사(출처: 오픈서베이 OTT 서비스 트렌드 리포트 2022)에서 20대와 30대 80% 이상이 OTT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응답으로 다른 세대보다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이용 서비스 개수도 20대가 1.9개, 30대가 2.1개로 역시 다른 세대보다 많은 플랫폼을 구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OTT 서비스 이용률 면에서도 20대와 30대가 단연 앞선다. 현재 OTT 서비스를 통한 IP 콘텐츠 소비를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성향은 MZ세대가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익숙한 세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히 콘텐츠 소비를 넘어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까지 자처한다. 재미있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SNS에 올린다. MZ세대는 지금 느끼는 것을 SNS에 즉각적으로 공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모든 것이 스마트폰이라는 디바이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손쉽게 연결되는 시대에 IP 콘텐츠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해지는 것이다. 메타버스 같은 초월적인 세계관까지 제시되는 지금 IP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IP 콘텐츠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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