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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Insight

[M Report] 소비에서 기부까지

 

글 정지원 / 제이앤브랜드 대표. 아이덴티티 기획, 브랜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두루 경험한 후 다방면에서 마케팅 솔루션을 풀어낸다. 저서 <맥락을 팔아라> <어바웃 브랜딩> 외 다수.

 


 

2014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기부 캠페인이 있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이 3명의 동참자를 지목하면 24시간 내에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루게릭병 관련 기부금을 내야 하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다. 빌게이츠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들과 일반인이 참여했고 2억 2천만 달러(한화 약 3천억 원)의 기금이 모였다. 대부분의 참여자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시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이 독특한 캠페인은 ‘기부’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쉽고 재미있고 무엇보다 ‘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인 확산력을 가지고 이어지는 기부의 형태를 등장시킨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기부 마케팅은 있었다. 1983년 자유의 여신상 복원을 목표로 금융회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시도한 캠페인은 최초의 기부 마케팅으로 기록된다. 이후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온 기부 마케팅은 현재 최대 소비주체로 등장한 MZ세대의 가치관에 힘입어 그 속도와 밀도가 남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1983년 자유의 여신상 복원 프로젝트를 펼쳤다. 자사 카드 신규 발급 시 1달러, 자사 카드 거래 시 1센트를 적립해 5개월 만에 170만 달러를 기부했다.

 

세상을 바꾸는 소비

MZ세대는 두 가지 키워드로 정의된다. 디지털과 가치소비. 디지털은 MZ와 X를 비롯한 나머지 세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심지어 디지털은 밀레니얼과 Z 간 ‘세대 차이’를 만든다. Z세대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로 문자가 아닌 동영상 메시지로 소통하며 자랐다. 그들에게 온라인은 ‘Real world’이며 온라인에서 검색하고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밀레니얼과 다르다.

또 다른 키워드는 가치소비. MZ세대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며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젠더, 윤리, 환경, 사회적 의미에 둔감한 브랜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실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면 공짜라도 거부하는 것이 이들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세대가 바로 MZ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가치소비가 반드시 사회적 의미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 감성과 개성에 맞는 브랜드에 끌린다. 스토리와 가치, 재미, 진정성이 문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부 마케팅은 이러한 MZ세대의 특성이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해올 수 있었다. 앞으로의 기부 마케팅 역시 ‘디지털’이라는 환경,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될 ‘가치소비’를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메타버스에서 현실에 기부를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기부 마케팅의 흐름에서 개인 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힘을 확인시켜준 사례라는 점은 또 다른 가능성 역시 기대하게 한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를 활용한 사례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롯데월드는 제페토에서 ‘기분 UP! 기부 UP!’ 캠페인을 진행했다. 제페토 롯데월드맵에서 캐릭터인 로티, 로리 아이템을 구매하면 금액만큼 기부금을 적립하는 캠페인이다. 롯데월드는 이 캠페인을 통해 적립된 기부금을 도심 숲을 조성하기 위해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공식 사회공헌(CSR) 계정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롯데월드. 목표 걸음 수 인증을 통해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 기금을 전달하는 <놀면서 기부하자> 챌린지, 제페토에서 캐릭터 아이템을 구입하면 기부금을 적립해 도심 숲 조성을 위해 쓰이는 <기분 UP! 기부 UP!> 캠페인을 진행했다. / 출처 @betterworld_lotteworld

 

롯데월드가 가상현실에서 체험과 재미라는 요소를 강화하며 기부를 첨가했다면 유한킴벌리는 현실에서의 기부활동을 가상현실로 확장했다. 메타버숲은 이용자들이 유한킴벌리 제페토 월드에 생긴 사막 숲에 나무를 심으면 그것이 현실 숲에 나무 심기로 옮겨지는 캠페인이다. 가상세계에 100그루의 나무가 심어지면 용인 탄소중립 숲에도 100그루의 나무가 심어지며, 강원도의 산불 피해 지역과 몽골 숲 조성 등 현실의 나무 심기로 이어진다. 가상세계의 숲과 현실의 숲을 오가는 이 기획은 최근 기부 마케팅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한킴벌리의 가상세계 제페토맵 / 출처 yuhan-kimberly.co.kr

 

보다 근원적인 사회 문제를 매칭할 수 있다면

미국의 슈퍼마켓 브랜드 크로거(Kroger)는 2022 ESG 리포트를 통해 ‘Zero Hunger, Zero Waste’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음식물 쓰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데 동시에 어딘가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기이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크로거는 이미 오래전부터 Food Rescue Program을 운영해왔다.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음식을 푸드뱅크 및 지역에 기부해 쓰레기를 줄이고 굶주리는 사람도 돕는 것이다.

최근 이를 더욱 구체화해 유제품 기부로 확장하고 2025년까지 30억 끼의 식사를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크로거는 고객이 자사에서 장을 보는 것을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문제해결에 참여하는 경험으로 승화시켰고 ‘크로거 마트 소비자는 곧 기부자’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인류의 숙제인 폐기물과 기아 문제를 매칭해 브랜드의 이미지뿐 아니라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고민도 덜어주는 효과를 만든 것이다.

 

출처 kroger.com

 

가치소비를 하는 MZ세대가 소비의 주축이 된 이상, SNS 시대가 열린 이상, 브랜드는 어정쩡한 중립의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됐다. 누구보다 먼저 행동하고 시대에 맞게 실천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시대가 원하는 브랜드란 언제나 그래 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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