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래식당 ‘알바비 vs 식사 권리’
도쿄 진보초에 있는 미래식당. 이곳은 좌석이 12개에 불과한 조그마한 식당이다. 종업원도 없다. 가게 주인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해야 하는 구조다. 점심에 최소 3회전을 한다. 월매출은 100만엔을 조금 넘는데, 별도 인건비가 없으니 늘 흑자다. 이 조그마한 식당이 지금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어떤 식당이길래 이 난리인가?
지난 겨울에 이 식당을 방문했다. 그런데 주인 혼자가 아니라 알바생 두명이 더보였다. 알고 보니 50분 일하면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알바비를 돈이아닌 식사로 지불하니 당연히 추가적인 인건비가 안나갈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의 묘미가 있다.
50분 일에 대한 댓가로 받는 것은 한끼 식사가 아닌,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한끼 식사는 본인이 하지만, 식사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그렇다. 이들은 50분간 일한 뒤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배고파하는 누군가에게 양도한다. 남을 돕는 마음과 함께. 미래식당은 가장 겸연쩍을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대면상황을 배제시킨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한끼 알바를 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간다.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때에 와서 한끼 대접을 받는다. 서로 만나지 않기에, 진정성이 돋보인다. 미래식당은 바로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 식당을 연구하면서 점심 시간에 최고 10회전을 한 적이 있다는 자료를 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머리가 끄덕여졌다. 다들 빨리 먹고 뒷사람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루 10회전이란 말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반적인 혁신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메뉴판이 꼭 있어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메뉴판을 없앴다. 매일매일 바뀌는 단 한가지 메뉴만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거다. 10엔 이하 동전이 꼭 필요한가? 라는 의구심도 가졌다. 이 식당은 그냥 세금포함 900엔으로 정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100엔 할인권을 준다.다음부터는 800엔에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미래식당은 혁신이란 키워드와 ‘남을 돕는 마음’,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따뜻함을 추가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아멕스 카드 ‘자유의 여신상 복원 기부’ 캠페인
이번엔 미국으로 건너가 보자. 1983년 아멕스 카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신용카드로서 입지를 굳히고 싶었다. 눈에 띄는 것이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1886년에 들어왔으니 거의 100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100년 만에 자유의 여신상 복원공사를 한다!’ 당연히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아멕스는 단순히 돈만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소비자를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로 고민의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캠페인 기간 중 카드 소지자가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1센트를, 신규 가입 할 때마다 1달러를 적립하는 아이디어였다.
뉴욕 시민뿐 아니라 전 미국인이 환호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이 아닌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캠페인은 불과 두 달만 시행됐는데, 이 기간 중 170만 달러가 모였고 카드 사용액이 27% 증가했다. 170만 달러란게 어떤 의미일까? 두달동안 아멕스 카드를 1억 7천만번 긁었거나, 170만장의 신규 카드가 발급되었다는 의미다. 카드 사용은 거의 습관성이다. 아멕스는 그 당시 미국사람이 아멕스만 쓰도록 하는 습관을 만들어 버렸다.
이를 보고 대의 마케팅, 또는 코즈 마케팅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의명분이있는 소비를 할 때 일반적인 소비 상황과 다른 감정을 느낀다.
영국 이노센트 ‘빅 니트 캠페인’
영국에는 ‘이노센트’라는 음료 브랜드가 있다. 1998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스토리텔링에 아주 강하다.
세 명의 친한 친구가 대학 졸업후 각자의 길을 가다가 의기투합하여 음료회사를 설립코자 합니다. 런던의 작은 음악 축제에 500파운드 어치의 과일을 싸들고 가 가판대를 세우고 순수과일 음료인 스무디를 팝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다니던 직장을 내팽개치고 스무디 장사를 해도 될 것 같습니까?’라는 글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한쪽 쓰레기통엔 ‘예(Yes,) ’또 한쪽 쓰레기통엔 ‘아니요(No)’라고 큼지막이 써놓고는 스무디를 사 먹은 고객들이 음료를 다 마신 후 빈 병을 원하는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했지요. 축제 마지막 날 ‘예’라고 쓰인 쓰레기통이 꽉 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흥미롭지 않은가? 세 친구는 제품명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리고는 ‘순수한’ ‘결백한’을 의미하는 ‘이노센트(innocent)’라는 단어를 회사와 제품 이름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천연과일 스무디를 개발하면서 사람들이 건강히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맛있고 건강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촌스럽게, 노골적으로 제품을 알리는 대신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노센트는 앞서 설명한 대의마케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는 ‘빅 니트’ 캠페인이 바로 그 것이다. 이 캠페인은 ‘추운 스무디에 따뜻한 모자를 씌워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우선 음료 병에 씌울 모자를 짠다. 이어 그 모자를 이노센트 또는 관련 기관에 보낸다. 이노센트는 제품에 모자를 씌운 뒤 유통시킨다. 이 음료를 한 병 사면 그중 25펜스, 약 400원 정도가 자선단체로 전해져 노인분들을 위해 쓰인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털모자를 만드는 주체다. 캠페인을 시작할 때에는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이 뜨개질을 했다. 공짜로 도움을 받기보다는 무언가를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도움을 받는 편이 어르신들께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어르신들만 뜨개질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캠페인 취지에 동조하는 사람은 누구나 니트를 짜서 자선단체나 이노센트로 보내면 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이도 참여가 가능한 대의마케팅 모델이다.
다음은 털모자 모양이다. 여기서 엄청난 창의력이 발휘된다. 미니 마우스, 갈매기, 심지어 세계적인 육상 단거리 선수인 우사인 볼트 모양을 하고 있는 모자도 있다. 이 모자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진 기분은 고스란히 이노센트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캠페인의 시기가 겨울철이다. 불우이웃 돕기가 가장 활발한 계절이 겨울이고, 음료가 가장 안 팔리는 계절도 겨울이다. 이노센트는 빅니트 캠페인을 매년 겨울 특정 시기에만 실시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온정의 손길을 줄 수도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마다할이유가 없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일본, 미국, 영국의 기업이야기를 살펴 보았다. 비즈니스 모델이건 마케팅 기법이건 ‘남을 돕는 마음’을 장착시키는 것은 커다란 트렌드임에 틀림없다. 젠지(Generation Z) 세대들이 사회에 나오면 더욱그러할 것이다.
신현암 / 팩토리 8 대표
'DIGGING > Insi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데이터로 본 세상] 플랫폼의 가치는 소비자로부터 (0) | 2019.11.04 |
---|---|
[INFOGRAPHIC] 마케터를 위한 빅데이터 - 집안으로 성큼 들어온 푸드 트렌드 (0) | 2019.11.04 |
[INFOGRAPHIC] 2019 TREND PICK - 나를 위한 소비 가치관의 변화 (0) | 2019.11.01 |
[TREND SUMMARY] 디노베이션(Denovation) (0) | 2019.11.01 |
[INFOGRAPHIC] 빅데이터로 본 맥주 트렌드 (0) | 2019.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