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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언제나 아웃도어

 

글 윤성중 / 월간 <산> 기자

 


 

‘아웃도어’가 어떤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요즘 여긴 서울 성수동만큼 붐빈다. 전문가들은 이걸 코로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격리’ ‘거리두기’ 등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시행했던 정책이 사람들을 아웃도어(야외)로 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석은 대체로 맞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 한국에선 달리기·마라톤이 유행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가 되며 크루를 만들어 달리기 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마라톤 대회도 열리지 않았다. 이들이 산에 등장했다. 당시 산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됐다. 러너들은 마스크 없이 몸에 쫙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산에서 달렸다. 이른바 ‘트레일러닝’이 붐을 이뤘고, 덩달아 등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만 아웃도어에 관심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스페인이 거점인 SPA 브랜드 자라(ZARA)에서 작년 초 스포츠 컬렉션을 출시했다. 여기서 스포츠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웃도어’다. 이들이 촬영한 룩북엔 사이클링, 등산, 암벽등반 등을 즐기는 진짜 아웃도어 마니아 모델들이 등장한다. 러닝화, 농구화 등 일반 스포츠 영역의 제품을 중점적으로 만들던 아디다스에서도 2020년부터 트레일러닝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디다스의 아웃도어 라인 테렉스(TERREX)도 최근 한국에 재론칭했다. 테렉스는 2012년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가 몇 년 뒤 종적을 감췄는데, 거의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자라 Athleticz 콜렉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스키, 크로스 트레이닝, 패들테니스, 클라이밍 의류 및 장비 / 출처 zara.com

 

돌고 도는 아웃도어 붐

지금 한국에서 불고 있는 아웃도어 열풍은 처음이 아니다. 이건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곤 했다. 그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1980년대가 그 첫 파도였다. 당시 등산객들은 산 여기저기서 캠핑을 하며 고기를 구웠다. 지리산 세석대피소 인근엔 주말마다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국립공원에서 시행한 취사 야영 금지법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텐트촌은 사라졌고 이후 국내 수많은 아웃도어 업체도 망해서 없어졌다.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산으로 쏠린 건 90년대 후반 IMF때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회사원들이 등산·아웃도어 문화를 주도했다. 몇 년 후 이 유행은 수그러들었다가 2000년대 후반 캠핑족이 늘어나면서 아웃도어 시장이 살아났다. 스키장에서 스노보드 타던 친구들이 캠핑장으로 내려오면서부터다. 이 유행은 3년 정도 지속됐다가 또 잠잠해졌다. 그 조용했던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다시 떠들썩하게 만든 게 얼마 전의 코로나다.

 

1984년 지리산 세석대피소 근처의 낮과 밤. 등산객들은 캠핑을 하며 고기를 굽곤 했다. / 출처 @monthly.san

 

다양하게 확장되고 즐기는 트렌드

이번 유행은 이전과 살짝 달라 보인다. 시내에서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아웃도어룩과 꽤나 닮아 있다. 이걸 ‘고프코어(Gorpcore)’라 한다. 고프코어는 야외에서 많이 먹는 견과류를 뜻하는 고프(Gorp)와 지극히 평범한 룩을 가리키는 패션 용어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지극히 평범한 아웃도어 복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50~60대가 입는 보통의 등산복을 20대 젊은 층이 변형해 입기 시작한 것이다. 중고거래 앱을 켜면 이런 경향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SNS에서도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아웃도어를 즐기는 나를 ‘인증’하는 게 대세다. 블랙야크가 만든 등산 앱 BAC 속 ‘100대 명산 인증 챌린지’는 100개의 산 정상에 올라 정상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어 앱에 올리는 방식이다. 2013년 앱스토어에 나온 이 앱은 2018년 4월까지 회원 수 10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올해 4월 회원 수 40만 명을 넘겼다. 회원들이 남긴 누적 인증 수는 686만 건에 이른다. 요즘 주말 유명한 산 정상에 가면 정상석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BAC 앱 회원일 확률이 높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100대명산으로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인증샷들 / 출처 인스타그램 캡처

 

자연스레 SNS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도 등장했다. 아웃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와 아웃도어를 합친 말로 ‘아웃도어 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명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들 중 최근 여러 기업의 ESG 마케팅과 맞물려 자연보호에 특화된 ‘그린플루언서’가 눈여겨볼 만하다.

젊은 층의 아웃도어에 대한 관심은 대학교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엔 산악부에 가입하려는 학생 수가 극히 적었다. 동아리방이 없어지거나 산악부 자체가 사라진 대학도 많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산악부 신입 회원 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 올해 신입 부원 모집에 100여명이 넘게 몰렸으며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들은 산악부 신입생을 뽑기 위해 입회 시험을 치렀다. 한 산악부 졸업생은 이를 두고 “1980년대 이후 40여 년 만에 나타난 이례적인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다양한 방식의 아웃도어 열풍 속 그것을 기록하는 입장에서 나는 매달 산에 다니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산이 왜 좋죠?”라고 꼭 묻는다. 어떤 60대 등산객은 이렇게 답했다. “기자님, 삼겹살 좋아하세요? 저 무지 좋아하거든요. 산에 가는 건 배고플 때 삼겹살 맛집 가는 거랑 같아요. ‘으 먹고 싶어라’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산에 가요. 100대 명산 찍는 게 목표예요.” 30대 초반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인스타그램 때문에 산에 가요. 인증 사진 찍으러요. 인스타그램 없었으면 산에 안 갔을 거예요.” 산에 가는 목적이 같으면서도 다른 두 사람은 이를테면 요즘 한국 아웃도어 문화의 샘플 같다. 복잡한 재래시장과 세련된 카페거리가 합쳐진 요상한 풍경. 그야말로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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