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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디지털 온리 키즈, 잘파세대

 

글 이주영 / 남성 패션 매거진 <아레나옴므플러스> 편집장

 


 

우리 집에는 2019년생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 최근 생일을 맞았으니 만 4세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보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고, 유튜브의 채널을 클릭한다.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게 아니라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곁에 있는 일상이다. 출생연도로 범주화되는 세대론에 의거, 그는 알파세대다. 지금까지 미디어 및 트렌드 담론은 MZ세대 위주로 형성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밀레니얼이라 불리던 M을 구세대로 조금 더 올리고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한데 묶는 ‘잘파(ZALPHA)세대’론이 대두되고 있다.

MZ라는 통칭적 범주가 애매했듯, Z와 알파를 묶는 카테고리도 일정 부분 혼선이 도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공통점은 존재한다. 밀레니얼이 나와 같은 X세대처럼 아날로그 기반의 문화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잘파세대는 디지털 디바이스에 훨씬 더 친숙한 이들이란 점이다. 디지털에 친숙하다는 건 과거 세대의 대중문화 노출보다 이른 시기부터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 가능함을 의미한다. 콘텐츠 경험 시기가 당겨진다는 건 동시에 소비자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됨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벌써부터 잘파세대에 대한 마케팅적 접근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래 소비자로 인정받은 이 세대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을까?

 

K-Pop: 고객층 확대의 매개

(좌)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앰배서더가 된 보이그룹 라이즈 (우) 루이비통, 구찌, 샤넬,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의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뉴진스 / 출처 @musinsa.official @newjeans_official

 

가장 주요한 매개체는 바로 K-팝 아티스트다. 하이브 산하 ADOR 소속의 걸그룹 뉴진스는 공식 출범과 함께 각 멤버별로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 자리를 모두 꿰찼다. SM엔터테인먼트가 최근 선보인 보이그룹 라이즈는 노래가 알려지기도 전에 유명한 명품 브랜드와 단체 앰배서더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뉴진스의 다섯 멤버들은 2004년부터 2008년생까지로 구성돼 있다. 라이즈 일곱 멤버의 평균 나이는 약 21세다. 이들은 말 그대로 잘파세대의 전형적 카테고리에 속한다. 명품 브랜드의 주요 고객층을 이루는 세대는 대부분 밀레니얼이라고 보면 된다. 업계에서 들리는 전언에 따르면 이들을 내세운 브랜드의 매출이, 이들 덕분에 오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해외 유수 하우스 브랜드들이 이 어린 아티스트들을 모델로 계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새로운 세대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그들을 미래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다. 앞서 잘파세대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콘텐츠에 노출됐고, 구세대가 브랜드를 접한 시점보다 훨씬 더 이르게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명품 브랜드들이 아이돌을 모델로 기용하는 데에는 현시점의 매출보다는 디지털 바이럴을 일으키고 이 메시지들을 통해 고객 층을 더 확대하려는 바람으로 이해된다.

 

GAME: 취향과 재미를 소비로

(좌)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게임 형태의 가상공간을 선보인 삼성전자의 <스페이스 타이쿤> (우) GS25가 로블록스에 만든 편의점 시뮬레이션 게임 <모여봐 GS25> / 출처 로블록스 캡처, gs25.gsretail.com

 

잘파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MZ세대론에서도 주요 특성으로 인지되던 ‘취향’이다. M과 알파의 중간 세대인 Z부터 취향은 소비의 핵심이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부합된다면 무조건 가지려 한다. 또 돈을 모으기보다는 어떻게 가치 있게 쓰느냐를 더 중시한다. 그 가치 있는 씀씀이는 곧장 취향에 부합되는가로 직결된다. 이런 세대에게 마케팅적으로 접근하는 또 다른 접점은 바로 게임이다. 서두에서 등장시켰던 우리 집의 아이를 다시 호명해보겠다. 우리 부부는 그에게 게임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도, 체험하게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또 유치원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게임이 무엇인지를 벌써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TV나 유튜브 속에서 실행되고 있는 게임 광고도 한몫을 거든다. 아무튼 불과 네 살 밖에 안된 녀석이 탁자 위에 손을 얹어두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듯한 시늉을 한다. 그게 게임이라며.

이처럼 게임은 잘파세대에게 아주 중요한 접점이 된다. 특히 제페토나 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이들의 또 다른 놀이터로 기능한다. 이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세상에 마케팅이 침투한다.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구찌와 루이비통 등의 명품 브랜드도 일찌감치 메타버스 플랫폼 속에 자신들의 세계관을 창조한 바 있다. 실제로 그 속에서 수익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상 세계 속에서 잘파세대는 자신만의 (가상) 명품 백을 구매해보기도 하고 심지어 트레비스 스캇과 같은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SHORTS: 순간의 이야기

 

잘파세대에게 접근하는 마케팅 기술의 마지막 사례는 (짧은 콘텐츠를 의미하는) ‘쇼츠’다. 최근 해외에 있는 친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초등학교 5학년 두 명, 중학교 1학년 한 명, 총 세 명의 조카가 있다. 그들의 손에는 모바일 폰 또는 패드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있었다. 그들이 뭘 하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들은 주로 유튜브의 쇼츠 콘텐츠를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10초의 시간도 긴 듯했다. 끊임없이 손가락을 위로 튕기며 콘텐츠를 넘겼다. 중학생 조카는 틈만 나면 로블록스에 접속하거나 마인크래프트 등의 게임을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쇼츠 필름이다. 현재의 잘파세대는 하나의 콘텐츠에 집중하는 시간이 꽤나 짧다. 예를 들어 오래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같은 걸 단 몇 분 내의 ‘짤’로 전부 섭렵하는 세대이기에 그렇다. 이 탓에 그들을 타깃으로 한 쇼츠 광고들이 범람하고 있다. 잘파세대 뿐만 아니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해진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은 긴 것 자체를 인내하지 못한다. 무조건 짧아야 한다. 그런데 이목을 집중시켜야만 한다. 10초 내외의 러닝타임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풀어내야만 한다는 뜻이다.

 

마인크래프트가 대체 뭔지도 모르던 내게 네 살짜리 아들이 다가와 설명을 한다. 그 조차 그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뭔지를 이해하는 듯하다. 이런 아이를 보며 새로운 세대의 면모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Z세대까지는 현실 속에서 부딪히며 이해하려 하고, 알파세대는 당장 눈앞의 그 녀석에게서 배운다. 최근 게임 및 캐릭터와 협업하는 다양한 제품들의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X세대인 나를 타깃으로 하는 전략이 아님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또 다른 세대는 그것에 열광하고 있다. K-팝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하고, 메타버스라는 세상을 공부해야 하고, 짧은 호흡 속에 내러티브를 심어내는 방법론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잘파세대에게, 시쳇말로 ‘먹히는’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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