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는 능란하다. 신록이 짙어졌다. 연록에서 짙은 초록으로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 찬란한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괜히 붙은 게 아니라고 자못 감탄한다. 확실한 건 사무실에만 있기엔 아까운 계절이라는 것. 이런 날씨엔 영화관에 가는 것도 낭비다. 창문 밖에 그 어떤 시퀀스보다도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기에 도무지 이 시절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모든 이가 바깥에 찬탄하고 있는 사이, 광고도 나들이를 서두른다. 15초의 프레임을 벗어나고, 스마트폰 속 유튜브 채널을 벗어나고, 여유만만하게 모든 규격과 지면을 벗어 던진다. 광고에겐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가장 유망한 매체이기에, 이런 날엔 아웃도어가 모든 브랜드가 선망하는 뜨거운 무대가 된다. 크리에이터들의 아이디어도 예상 밖으로, 기대 이상으로, 상식 밖으로, 자유로이 뛰쳐나가 너른 세상을 활보한다. 예상 밖의 세상, 그 열렬한 광경을 함께 목격해보자.
McDoanlds - Follow the ArchesZ
길을 나서기 전엔 이정표부터 확인해야 한다. 캐나다 맥도날드에서는 브랜드 로고를 매장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삼았다. 누구나 다 아는 골든아치 로고의 일부분을 표지판으로 활용, 맥도날드 매장의 방향을 알려주는 광고물로 제작했다. 맥도날드 고유의 레드 컬러와 옐로우 컬러 배색으로 교통 표지판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가시성까지 완비했다. 각각의 빌보드에는 맥도날드의 풀 로고도, 풀 네임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왼쪽으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가세요’와 같은 지침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단순 명료한 메시지는 입맛 돋우는 햄버거 시즐보다도, 줄무늬 양말을 신은 맥도날드 마스코트 로널드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2018 칸 광고제 OUTDOOR 부문에서 그랑프리까지 거머쥐었다. 브랜드의 방향성이 고민될 때. 어디로 가야 할 지 길을 잃었을 때. 이 캠페인을 떠올려보길.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가장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까.
BURGER KING - Burn That AD
코카콜라와 펩시, 맥도날드와 버거킹. 서로가 서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라이벌이다. 이들의 뜨거운 신경전은 TVC와 PRINT가 그어놓은 사각 링 밖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버거킹의 아이디어는 이번에도 화끈했다. 파격적인 AR기술로 소비자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버거킹 앱에 AR기술을 접목해 거리 곳곳에 있는 맥도날드 광고들을 태워버리게 한 것. 소비자들은 직접 맥도날드의 광고를 불태우는 쾌감과 동시에 무료 와퍼 쿠폰을 선물 받는다. ‘직화’라는 브랜드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맥도날드를 향해있던 소비자들의 눈길을 버거킹 쪽으로 돌려놓는 직설적인 메시지. 이에 머물지 않고 와퍼 쿠폰을 통해 소비자들의 발길까지 버거킹으로 이끄는 치밀함. 이토록 대담한 캠페인 앞에 당할 자가 있을까. 외부를 향한 시선을 브랜드 내부로 향하게 하는 힘. 이 또한 아웃도어 광고의 몫이다.
Louvre Abu Dhabi - Highway Gallery
옥외광고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생각의 크기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두바이에서는 이른바 두바이 스케일에 걸맞은 캠페인이 집행되었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오픈을 알리는 Highway Gallery 캠페인. 아랍 에미리트 정부가 지원하는 막대한 예산에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한한 아이디어가 힘을 실었다.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향하는 고속도로 무려 100km, 이곳에 세계적인 대작들을 실제 크기9m에 육박하는 ‘진짜 대작’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거기에 자동차가 다가가면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재생되는 디지털 오디오 가이드까지.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을 감상하게 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거대한 상상력을 훌륭하게 구현해낸 Highway Gallery 캠페인은 2018 칸 광고제에서 브론즈를 수상했다.
37.5 Technology - WELCOME TO THE CLIFFSIDE SHOP
팝업스토어가 스토어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많은 이의 방문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콜로라도 엘도라도에는 감히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가장 외딴 팝업스토어가 있다. 그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익스트림 스포츠 브랜드 37.5 Technology에서는 무려 해발 6,269m에 달하는 까마득한 절벽 끝에 Cliffside Shop을 오픈했다. 오직 거친 절벽을 올라야만 방문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라니, 암벽등반가들의 모험심을 자극 하기엔 충분한 요소였다. 팝업스토어 등정에 성공한 등반가들에게는 암벽등반에 필요한 장비들을 증정했다. 장소-브랜드-타깃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것은 물론, 익스트림 정신과 철학까지 확실하게 표출한 캠페인. 이 희귀한 팝업스토어 역시 2018 칸 광고제 OUTDOOR 부문에서 브론즈를 수상했다.
뛰어난 옥외광고들을 마주하다 보면 미시적인 고민이 해방되는 후련함을 느끼게 된다. 이번 사보 원고를 쓰면서, 비좁은 모니터 속에 머물러 있던 생각들을 잠시 꺼내보았다. 아이폰의 화소로는 감히 담아낼 수 없는 총천연색의 노을을 떠올려 보았고, 키보드 소리보다 활기찬 사람들의 발걸음을,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도심의 야경을, 몇 기가니 몇 테라니 하는 디지털 용량을 압도할 태평양의 질량을 상상했다. 1평도 되지 않는 카피라이터 책상 밖에는 평이라는 단위로는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무궁함을 잊고 살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예상 밖의 세상을 되찾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광활한 세상을 만끽하는 것, 그뿐이다.
박수진 CⓔM / 크리에이티브솔루션 4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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