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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AD Note

[AD KEYWORD] MERRY CREATIVE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한다. 포근한 머플러를 두르고도 코끝이 한껏 빨개지는 겨울. 루돌프만 외롭지 않을 수 있다면 빨간 코끝쯤이야 차가운 겨울바람에게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 거리의 나무들은 일 년 동안 함께 해온 낙엽들을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화려한 미니전구로 옷을 갈아입는다. 길가에 있는 상점들도 멜론 TOP100에 있을법한 유행가들을 밀어내고 저마다 캐럴을 틀기 시작한다.

 

바깥세상만 이렇게 떠들썩한 건 아니다. 광고 회사도 마찬가지다. 층마다 트리가 놓이고, 휴게실엔 커다란 선물박스며 눈사람까지. 몇 년 전에는 회사 입구에 ‘Merry Creative’라고 쓰인 간판까지 놓였다. 들뜬 연말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라는 명목으로 야근을 할 때면 ‘Merry’라는 단어와 ‘Creative’라는 단어 사이의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졌는지, 그 간판이 얄밉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라는 녀석의 속성 자체가 그렇다. 남의 생일에 왜 내가 들떠야 하냐고 면박 주는 사람들의 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는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가만두지 않는다.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부모님의 주머니를 노리고, 커플은 커플이라고, 솔로는 옆구리 시리지 말라고, 연말이니 세일을 한다고, 각양각색의 핑계를 들이대며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이쯤 되면 산타는 푸근한 핀란드 할아버지 요정이 아니라 복면을 쓴 도둑놈일지도 모른다.

 

과연 자본주의 세상에서 크리스마스는 ‘대목’일 뿐인 걸까. 지금도 산타를 가장한 마케터들은 ‘Merry Christmas’를 당신께 외치며 ‘Merry Creative’한 광고물들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장삿속인지 낭만인지 모를 그들의 속내. 존 루이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캠페인과 함께 샅샅이 들여다보자.

 

 

 

 

 

The Boy and the Piano (2018)

 

올해 공개된 존 루이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는 엘튼 존의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로 문을 연다. 단순히 ‘시작된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문을 연다’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피아노 선율을 타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쭉 이어지기 때문이다.

 

화려한 카메라 기법 위를 타고 흐르는 엘튼 존의 목소리는 우리 손을 잡고 과거로 이끈다. 마치 원테이크처럼 이어지는 시간 여행은 엘튼 존과 함께 그가 더 젊었던 시절로, 그의 더 뜨거웠던 시절로, 처음 공연을 했던 시절로, 가진 것이 음악뿐이던 시절로, 그리고 마침내는 처음 피아노를 만났던 어린 시절로 우리를 끌고 간다. 처음 건반과 마주쳤던 그때의 추억이 지금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완성했다는 스토리. ‘Some gifts are more than just a gift’ 라는 카피로 마무리 짓는 이번 캠페인은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가 역사에 남을만한,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하는 위대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 The Boy and the Piano (2018) (출처: John Rewis & Partners 유튜브)

 

 

 

 

 

Buster the Boxer (2016)

 

카피라이터 겸 집사로 고양이 한 마리(고랭지님, 4세)를 모시고 사는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캠페인 중 하나를 소개한다. 크리스마스가 인간만을 위한 날이라고 누가 그랬나. 실제로 우리 집에서도 크리스마스엔 늘 랭지와 함께 케이크를 나눈다.

 

이러한 소비자들을 인사이트로 삼았을까. 존 루이스 백화점이 이번에는 야생동물 보호단체 ‘The Wild Trusts’와 손을 잡았다. 딸이 잠든 사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 산타를 자처한 아빠는 마당에 커다란 트램펄린을 설치한다. 밤사이 산에서 내려 온 야생동물들이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는 파티를 벌이는데, 유리창 너머로 이를 지켜보던 강아지는 그 모습을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 소녀는 트램펄린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지만, 강아지가 소녀를 앞질러 트램펄린 위로 달려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이번 캠페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리스마스 캠페인의 영역을 동물에게로 넓혔다는 점이다. 동물들이 트램펄린 위를 뛰는 장면은 VR콘텐츠로 제작해 소비자들에게 기분 좋은 경험까지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영상에 등장한 동물 인형들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The Wild Trusts’에 기부했다. 모두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자는 가슴 따뜻한 메시지, 그 이면에는 반려동물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의 영역을 넓혀보겠다는 속셈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올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서는 고랭지님을 위해 캣타워를 선물할 예정이다.

 

 

▲ Buster the Boxer (2016) (출처: John Rewis 유튜브)

 

 

 

 

 

The Man on The Moon (2015) 

 

이번에 소개할 광고는 2016 칸 국제 광고제 각종 부문에서 상을 휩쓴 캠페인이다. 단순히 영상 하나만으로 크리스마스의 감동을 선사한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사이트, 애플리케이션, 음악 등 다방면의 매체를 활용해 통합 미디어 캠페인을 완성했다. 깜짝 선물과도 같은 기특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이번에도 빛났다. 달에 사는 노인과 지구에 사는 6살 소녀 릴리의 우정이라니.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바꿔주는 크리에이티브는 달에서 지구까지 넘나든다. 달에 사는 노인을 향해 선물을 보내는 소녀의 따뜻한 마음은 함께 공개된 애플리케이션 게임을 통해 체험할 수 있고, 관련 디자인으로 머그컵, 옷, 쿠션 등을 판매하여 수익금을 독거노인에게 기부하는 완벽한 캠페인 플로우. 이 정도면 제아무리 마케팅의 일환일지라도 산타할아버지가 달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 The Man on the Moon (2015) (출처: John Rewis 유튜브)

 

 

 

 

 

The Power of Love (2012)

 

올라프 이전에 이 캠페인이 있었다. 무려 6년 전 캠페인이지만 지금 봐도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이번 광고의 주인공은 사랑에 빠진 눈사람이다. 눈사람은 사랑하는 여자친구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그야말로 목숨을 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백화점을 발견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우리 백화점에서 선물을 장만하세요’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존 루이스 백화점은 동화적인 서사로 풀어냈다. 엘사도 감동할 만큼 환상적인 이 캠페인은 이듬해 클리오 국제 광고제에서 브론즈상을 수상했다.

 

▲ The Power of Love (2012) (출처: Sabaah Q 유튜브)

 

존 루이스 백화점은 크리스마스라는 테마 하나로 매년 다채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고 있다. 단지 상술만을 위한 도구였다면 이토록 훌륭한 광고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크리스마스라는 이름 아래 이렇게 따뜻한 크리에이티브가 가능한 이유는 낭만, 설렘, 사랑, 우정, 나눔 등 모두가 공감하는 따뜻함을 브랜드의 자산으로 켜켜이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 경지에 이른 크리에이티브인데, 장삿속에 좀 넘어가면 또 어떠랴 싶다.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도심 백화점들을 향해 저건 다 상술이라고 비난하지말자. 사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커다란 선물상자도, 시끌벅적한 캐럴도, 눈부시게 화려한 트리 장식도, 결코 자라지 않는 소년 케빈도 아니니까.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2012년 존 루이스 백화점의 카피를 빌려서 대신 전해본다. ‘Give a little more love this Christmas’. 이거면 충분하다.

 

 

박수진 CⓔM / 크리에이티브솔루션 10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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