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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A24는 어떻게 신앙이 되었나

 

글 김해경 / 앤드류와이어스 브랜드 컨설턴트 liquidspace@gmail.com

 


 

왓챠의 영화 콜렉션 피드를 내려보면 ‘이동진이 5점 만점을 준 영화들’ 언저리에 ‘현재 미국 독립영화의 핵, A24’라는 콜렉션이 뜬다. 해당 플랫폼 내에서 A24로 검색해 보면 많은 영화광이 A24를 주제로 영화 리스트(콜렉션)를 올려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각 리스트에는 서른 개에서 마흔 개의 A24 영화나 드라마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다. 희한한 광경이다. 이 리스트는 배우나 감독의 필모그래피 또는 자신의 취향과 성향, 특정 무드 등을 중심으로 큐레이션 하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스포티파이에서 제공하는 ‘달리기 할 때 듣기 좋은 음악’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영화사(정확히는 영화 제작/배급사)를 주제로 개인이 큐레이션 리스트를 공유하며 애정을 드러내는 건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해당 플랫폼에서 파라마운트, 유니버셜 등 다른 거대 영화사들로 이러한 리스트들이 존재하는지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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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가 제작한 영화 및 드라마 / 출처 a24films.com, @a24

 

한때 미국에서는 틴더 취향란에 단지 한 단어 ‘a24’(소문자로 쓰는 쿨함이 필요함) 하나 달랑 적어놓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긴 말 필요 없다는 거다. “그냥 이쪽 스타일이야. 그러니 알아서 접근하기로 해” 뭐 이런 쿨함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쪽 스타일’이 어떤 건지 하나로 규명할 순 없지만 ‘이쪽 스타일’이 뭔지 감도 안 잡히는 너하고는 데이트까지는 무리랄까. 그만큼 A24는 20~30대 사이에 막대한 트렌드로 작동한다. 영화사인데 트렌드라니, 이상하지 않나?

소피아 코폴라나 드니 빌뇌브 같은 감독들은 물론 엠마 톰슨이나 패트릭 스튜어트 등 A24 영화에 출연한 수많은 배우들도 공공연하게 A24를 찬양하고 다닌다. 사석에서도 A24 로고가 박힌 모자나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황홀했던 영화 제작 경험을 언급하곤 한다. 대체 이 영화사는 무슨 마술을 부리고 있으며 어떻게 신앙에 가까운 신뢰를 갖는 ‘브랜드’가 됐을까?

 

영화 <미드90>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조나힐은 인터뷰에서 이제 오프닝 크레딧에 A24 로고가 나오는 건 일종의 명예의 뱃지와 같다고 말했다.

 

A24는 <미나리>,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영화들로 많은 국내 영화팬들에게 익숙해진 영화사다. 그러나 이 같은 화제작 개봉 전 국내에서는 <미드소마>나 <유전> 같은 영화들로 A24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화들의 초기 네이버 영화평을 살펴보면 ‘기괴하다’ ‘내가 뭘 본 지 모르겠다’ 등의 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영화들의 장르적 특성(호러)도 있겠지만 A24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영화를 표방한다. 그러니까 익숙한 스토리와 연출은 여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영화 리스트를 보면 이상하게도 유명 배우들이 여럿 보인다. 독립 영화라며 왜, 아니 어떻게?

 

문화와 양식을 만드는 브랜드

A24는 메이저 영화들에서 판에 박힌 이미지로 커리어가 소진되기 십상이었던 배우들을 소환해 왔다. 트와일라잇의 창백한 존잘남으로 박제될 수 있었던 로버트 패틴슨, 꼬맹이 해리 포터에서 성장하지 않는 아역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다니엘 레드클리프, 마블의 여전사로 인상이 굳어질 수 있었던 스칼렛 요한슨 등 유명하지만 기존 이미지로 커리어가 고정될 수 있었던 하지만 잠재력은 분명한 배우들에게 독특한 소재와 감독들의 영화로 A24는 제안한다. 초창기 A24가 명성을 갖지 못했을 때도 이는 해당 배우들에게 나쁘지 않은 시도였을 것이고 지금은 당연히 포텐셜이 많은 감독이나 유명 배우들에게 A24는 커리어를 역전해 새롭게 자신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가 됐다.

감독들에게도 A24는 천상의 포털로 가는 게이트와 같았다. 단편만 찍어본 아리 에스터 감독에게 <미드소마>의 전권을 쥐어주고, 데뷔작인 <엑스 마키나>에서 알렉스 가랜드 감독에게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다른 것’을 찍겠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초창기의 A24는 ‘다름’ 하나만으로 영화 제작 여부를 판가름했다. 공동 창업자인 다비드 펜켈은 “우리의 관점,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이 행동해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영화를 찾습니다”라고 밝혔다. 늘 해오던 방식을 벗어나 새로움을 시도하는 문화가 장착된 것이다. A24가 초창기에 이렇다 할 스타 없이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을 수밖에 없는 영화들을 만들어 낸 배경이다. 그렇게 A24는 제작사의 간섭 없이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과 신뢰를 얻는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A24는 이제 영화팬들에게는 일종의 ‘양식’으로 통하게 됐다. 브랜드의 행동 방식이 대상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양식’이 되는 것, 아마도 대부분이 꿈꾸는 이상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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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가 판매하는 다양한 굿즈 / 출처 shop.a24films.com

 

A24의 양식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나 스티븐 소더버그로 대표되던 미라맥스 영화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오스카에서는 몰라도 선댄스의 왕자였던 미라맥스는 당시 획일적인 헐리우드 영화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대안과 같은 영화사였다. 1994년도에 <중경삼림>을 미국에 배급한 영화사도 다름 아닌 미라맥스(정확히는 타란티노)였다. 미국에서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형태의 이 홍콩 영화를 보고 훗날 배리 젠킨스 감독은 왕가위의 영향을 받은 <문라이트(역시나 A24의 영화)>를 만들고 그 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제 A24는 예전의 미라맥스 보다 더 확고한 영화사, 아니 브랜드가 됐다. 미라맥스는 특정 감독들의 역량이 영화사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A24 영화들은 어떤 별종 감독이 만들어도 모든 영화가 A24 영화였던 것이다. 단지 장르와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어떤 걸 바라보기로 했는지의 태도에서 그것을 증명한다. 마치 넷플릭스의 N 로고 오프닝 사운드처럼 오프닝 크래딧에 A24가 올라가면 팬들은 이제 ‘어떤 가치관, 어떤 태도, 어떤 무드’를 예상하게 됐다. 그렇게 유대와 지지는 점점 더 확대됐고 그것을 ‘문화’라 부를 수 있는 지경에까지 다다르게 됐다. 문화가 만들어지고 심지어 양식이 된다는 것, 가히 브랜드가 지향하는 최상의 지점일 것이다.

 

최전선의 마케팅 레퍼런스

기존의 메이저 영화사였던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셜, 파라마운트, 콜롬비아, 21세기폭스 등은 대중에게 흥행할 수 있는 영화를 잘 만들고 배급에 신경을 썼다. 예고편을 잘 만들어 대형 미디어 노출에 전념을 다했고, 배우들을 미디어 라운딩에 밀어 넣었다. 마케팅 프로세스가 분명했다. 그리고 모든 영화사들은 그 천편일률적인 방법론을 답습해왔다.

A24는 십여 년 전 이미 지금의 디지털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통용되는 대부분의 마케팅 방법론을 먼저 시도해왔다. 2013년 미국에서 개봉한 <Spring Breakers>는 선댄스에서 큰 반응을 보였고 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3,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페이스북에 올린 ‘최후의 만찬’ 패러디 이미지 하나로 만들어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개봉 전 이 이미지는 엄청난 바이럴이 됐고 그 대부분은 오가닉이었다. 관계자들은 이 영화가 세계 최초의 소셜미디어 홍보 영화였다고 회고한다.

 

영화 <Spring Breakers> 홍보를 위해 그림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이미지. 당시 페이스북에서 60만 건의 좋아요와 1억 7,400만 건의 노출을 기록하며 1020 세대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 출처 a24films.com, 네이버영화

 

다른 영화사들은 소셜미디어를 고려조차 하고 있지 않을 때 A24는 심지어 각각의 소셜미디어의 특성에 맞게 개별적으로 활용해 왔다. 2015년 <End of the Tour> 개봉 전에는 Medium을 통해 영화에서 나오는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기사와 에세이를 팝업 매거진으로 게재했고 문학 애호가들에게 정확히 노크했다.

지금은 만연한 콜라보레이션에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2014년에는 공포영화인 <Tusk>의 개봉을 앞두고 A24는 LA의 대마초 소매업체와 제휴해 프로모션을 위한 두 가지의 마리화나를 출시했다. 팝업스토어 역시 달랐다. 보통 영화의 홍보를 위해 영화 속 장면과 소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작은 굿즈를 들려 보내는 팝업스토어가 일반이라면, 2017년 <Ghost story> 개봉 전 맨해튼에 있는 ‘Ghost Store’에서는 고객들이 두꺼운 흰색 시트를 두르고 천상의 음악이 연주되는 방으로 안내돼 ‘의미 있는 반성’을 하는 독특한 체험이 화제였다. 영화 <Uncut Gems> 팝업스토어는 주인공의 직업 그대로 뉴욕의 다이아몬드 판매 거리에 만들어졌고 배우 아담 샌들러가 직접 특정 제품을 판매했다.

 

(위 좌측부터 시계방향) 영화 <Ghost story>의 팝업스토어 Ghost Store, 영화 <Uncut Gems>의 팝업스토어, 영화 <Swiss Army Man>의 투어 버스, 영화 <Ex Machina> 주인공의 틴더 계정 / 출처 stevenjosphan.com, @uncutgems, a24films.com, tinder.com

 

2015년 <엑스 마키나> 개봉 전에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내용에 착안해 틴더 앱에 AI 여주인공인 아바의 계정을 만들어 상대방들과 대화를 주고받았고 틴더에 기입된 인스타그램에 해당 영화의 내용을 예고했다. 2017년 <Swiss Army Man> 홍보에는 영화와 같은 컨셉으로 다니엘 레드클리프의 밀랍 인형을 만들어 뉴욕의 투어 버스에 앉혀 놓았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일련의 마케팅은 ‘적은 숫자의 사람이 인상 깊은 체험’을 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아직도 대다수 마케팅 활동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느냐에 집중하고 있다. A24는 소통 채널을 적확한 타깃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무엇보다 그 대상들은 스스로 확산의 매개 즉, 미디어 자체가 됐다. 적은 대상에게 제대로 인상을 주는 것이 더 큰 바이럴이나 홍보의 활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선보인 A24의 마케팅에서 읽을 수 없다면 여전히 역시 특이한 게 먹히네, 잘 얻어걸렸어. 하는 식의 교훈 밖에는 남지 못할 것이다.  

 

브랜드가 상품을 파는 단계

사람들이 A24 영화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치는 순간(그것이 영화 그 자체든 그들의 활동이든) 브랜드는 이미 고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A24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더니, 단지 영화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A24의 유산을 가진’ 에에올을 홍보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흥행은 두말할 나위 없고 그들만의 ‘양식’을 지킨 A24의 진열장에는 이제 오스카 트로피가 즐비하게 됐다. 

영화 홍보 페이지도 아닌 영화사 자체 홈페이지에 트래픽이 넘쳐날 것을 상상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개별 영화의 머천다이징 상품은 물론이고 영화사 자체 굿즈를 멤버십으로 구독해 구매하게 하는 건 분명한 팬을 만든 엄연한 브랜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현재 A24의 공식 트위터 팔로워는 185만, 인스타그램은 230만이며, 심지어 멤버십 가입자만 볼 수 있는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인 @a24closefriends의 팔로워조차도 2.8만이다. 어떤 독립 아니, 영화사가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가.

 

A24는 멤버십인 AAA24를 운영한다. 한 달에 5불을 내고 가입하면 전용 앱, 매거진 제공 및 한정판 굿즈 구입이 가능하다. AAA24 멤버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2.8만이다. / 출처 aaa24.a24films.com

 

A24의 소셜 전략 업무를 담당했던 조 베이어는 인터뷰에서 트위터 운영과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이러한 회사 뒤에 실제 인간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국적인 애완동물이나 NBA에 대해 트윗을 올리곤 합니다. 아이디어는 언제나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행여 상품을 몇 개 팔아보고 파기할 브랜드가 아니라면 대중에게 브랜드를 확고히 인지시키고 (가능하다면) 사랑하게 해야 한다. 사랑하려면 그것은 단지 로고나 이름이 아닌 대상이어야 한다. 즉, 브랜드를 확고한 개체로 만들어야 하며 그를 위해 그 개체가 가져야 할 취향과 양식과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할 것이다. 명확한 그 브랜드의 문화 아래 탄생한 상품이라면 각각의 마케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언컨대 긍정적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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