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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d-Culture

콘텐츠의 특이점이 온다, 아니 왔다!

 

글 / 콘텐츠1팀 최예솔 YCD

 


 

매달 에펠탑 높이만큼 스마트폰을 스크롤한다는 시대, Z세대의 주의 집중 시간이 2.5초라는 시대. 자극적인 영상이 넘쳐 나고 각자의 관심사는 성벽을 쌓아가는 초개인화 시대에 광고는 도대체 어떤 수를 두어야 하는 걸까? 현시대의 광고인들은 이 생태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 속에서 광고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건지 저마다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이번 참관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지금의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숏폼 콘텐츠 소비가 가속화된 최근 몇 년 간 전 세계의 광고계 또한 비슷한 흐름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5 ADFEST의 주제는 ‘COLLIDE’ 역시나 범람하는 콘텐츠와 충돌하는 광고 마케팅의 방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세계의 다양한 크리에이터, 마케터들의 담론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강의를 들었지만, 뾰족한 해답보다는 숙제를 한아름 안게 된 기분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ㄱㄱ

The power of fast, flawed and fierce content - Pei Ling H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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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강연은 열정적이었다. 문득 나 왜 혼나고 있는 거 같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너제틱한 열변이었고, 발언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Chasing perfection is killing creativity

오길비부터 구글 웍스, 퍼블리시스 케미스트리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다수의 캠페인을 성공시킨 그녀가 제발 완벽지향적 태도를 좀 버리라니…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우리 업계가 그토록 집착해 온 완성도는 지금 시대의 흐름과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장인 정신으로 짜여진 스토리보드와 레이아웃, 빈틈없는 논리가 우리 스스로 씌운 감옥은 아닌지 점검해보라는 과감한 표현을 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녀는 다양한 데이터를 제시했다. MZ세대의 80%가 완성도 높은 브랜드 콘텐츠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선 추적 결과를 보면 가공되지 않은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가 브랜드 콘텐츠보다 감정 전달 측면에서 22%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우리 업계 종사자라면 로우파이 저예산 DIY 콘텐츠를 보며 이건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구도도 다시 잡고, 조명도 더 좋게 하고, 색상도, 컴포지션도…).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우리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세기 동안 완벽함을 추구하는 방식은 업계와 클라이언트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제작물의 정교함은 세상을 납득시켰고 사람들에게 열망과 욕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예산을 들여 브랜드를 구축하고, 대규모 캠페인을 진행해 빌보드에 노출하고, 통제 가능한 채널로 유통하던 시대를 보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지금 현실을 돌아보면 완벽함에 대한 집착은 우리와 클라이언트만 하고 있을 뿐 더 이상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출시한 그리머스 쉐이크가 SNS상 화제가 됐다. 마치 독극물처럼 먹으면 죽는 음료라는 컨셉으로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의 밈으로 널리 퍼진 것이다. 듀오링고의 [Duo is Died] 캠페인도 함께 예시로 들면서 동참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창작자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브랜드의 전통적인 지향점에서 벗어난 이야기 또한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광고가 이들의 속도와 유연성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필터링되지 않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세대가 우리 광고를 이질적으로 느낀다는 점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다듬어진 웰메이드 광고를 가식적이라고 여기는 반면, 괴짜 같고 엉뚱하며 빈틈 있는 콘텐츠를 자신들의 삶에 더 가깝게 느끼고 진정성 있게 받아들인다고. 완성도 높은 콘텐츠는 해석과 참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 결국 소통의 단절을 초래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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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완성도와 좋아요의 개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이에 몇 가지 팁을 전했다(클라이언트 설득용이라는 유머와 함께).

“Refrain perfection as an obstacle, not an achievement”

완벽을 성취가 아닌 장애물로 재정의하라고 했다. 조금 거칠더라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더라도, 기본 구조만 갖추었다면 빠르게 공개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이다. 진정한 실패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Don't let small logic kill big magic”

사소한 논리가 큰 마법을 죽이게 하지 말라. 훌륭한 아이디어가 늘 제품과 연결되지는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스스로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I strongly believe that experimentation is the new craft”

그리고 이제 새로운 장인 정신은 고퀄리티 제작이 아닌 실험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브랜드 가이드라인마저 일부는 던져버리라고 했다. 리믹스하고 낚시질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놀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여러분의 레퍼런스는 더 이상 상 받은 광고물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 아이폰으로 짧게 찍은 로우파이 콘텐츠입니다.”

 

물론 이 업계는 여전히 세련됨(Polishing)에 보상을 주고 있으며 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작업이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를 내려놓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창의성은 문화적 영향력을 얼마나 행사할 수 있는가에 의미를 두어야 하며 진정한 완성도는 소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며 업계와 본인 스스로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강의를 듣고 흥미 위주의 소셜과 목적성을 가진 광고를 같은 선에서 바라보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여전히 고퀄리티의 콘텐츠가 필요한 영역과 역할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부분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주장이 소셜 커뮤니케이션에 국한된 특수한 이야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광고가 소비자에게 가닿는 온도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하게 했고 고전적인 잣대의 브랜딩이 현시점에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조금 더 가볍고 유연한 자세로 콘텐츠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 지금까지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번창할 수 있는 법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수라는 점은 충분히 유의미한 이야기였다.

 

용기 없이는 영광도 없다

When Bravery and Business Collide - GUT A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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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dfest.com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클라이언트가 입찰을 진행할 때 “우리의 슬로건 만은 바꾸지 말아주세요, 우리의 전부예요”라는 말을 했다면 슬로건을 바꿔 들고 갈 강심장이 있을까? 그런데 바꾼 슬로건으로 입찰을 성사시킨다면? 후에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타임지에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용감함이 곧 크리에이티브라는 한 조직의 이야기다. 이들은 단순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투명성(Transparency)과 용기(Bravery)의 원칙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용기 있는 크리에이티브와 비즈니스는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BRAVERY에 진심인만큼 용감함을 정의하는 기준, 척도를 도표화해서 보여주었다.

이 조직이 정의하는 용감함이란 아무도 이전에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처음인 것,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실행이 까다로운 것, 완전히 빈 도화지에서 시작하는 그런 것에서 흥미로운 것이 탄생한다고 했다. 또한 어떤 것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 그래서 특정한 적이 있거나 갈등에 기반을 두는 것,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 무언가의 진실을 말하는 것, 특정한 시기의 무드나 스피릿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전 세계 클라이언트와 이 여정을 거친 작업물들을 소개했다.

 

 

마요네즈에 깊은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모아 NOT-MAYO 제품을 시음하게 한다. 예상되는 수순이라면 그래도 이건 비건이라 그런지 먹을만하네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마요 헤이터들은 해당 제품도 한입 베어 물고는 역시나 구역질을 하고 뱉어낸다. 그리고 If you hate MAYO, You’ll hate NOT-MAYO라고 말한다. 이 용감한 혐오감은 소셜 참여를 220배, 구매 의향을 14%나 높이는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캠페인을 제안한 에이전시도 용감하지만 실행한 클라이언트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은 사례였다.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으로 아르헨티나는 나라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때 아르헨티나의 배달앱은 유저들에게 가짜 푸쉬 알람을 보냈다. “당신이 주문한 물품이 곧 도착 예정입니다” 그 메시지로 월드컵 트로피가 배송되는 과정을 실시간 항공 데이터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단순한 푸쉬 알람은 0달러의 투자로 월드컵 공식 스폰서보다, 우승의 주역인 메시보다 32% 더 언급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뉴욕에는 베이글 세금이 있다고 한다. 베이글이 샌드위치나 조리식품으로 변할 때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베이글이 잘려 토핑이 발라져 있으면 통째로 살 때보다 더 많은 세금이 붙는다고 한다. 이 억지스러운 정책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자르지 않고 크림치즈를 주입한 텍스프리 베이글을 출시한 것이다. 그리고 세금 신고일에 맞춰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는 STUFF IT 메시지의 새로운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우리 정서는…’ ‘그렇지만 내가 뭘…’이라며 쭈뼛쭈뼛 자기변명을 하고 있을 즈음 그들이 말했다. 용기라는 것은 누군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한 사람의 철학과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클라이언트에게, 조직에, 지역에 의미 있는 목소리로 변화를 만들어보기를 권유했다. 용기는 용기를 끌어당기므로. “Life is too short to do shitty ads”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멘트로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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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용기 있는 브랜드만이 빠르고 혼란스러운 흐름 속에서 문화를 만든다는 주장은 실험 정신이 앞으로의 장인 정신이라는 이전의 강의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각해 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네 업무를 마주하며 몇 주 전 태국에서의 강의와 고민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불쑥 의심이 들기도 한다. 강연자들은 성공 뒤에 하나같이 이상적인 해석만 덧붙인 건 아닐까 하고. 그렇지만 그들의 낙관론을 믿어보기로 한다. 여전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는 모르겠고, 용감한 질문만 가득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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