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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AD Note

대퇴사 시대의 인터널브랜딩

 

DDEx센터 브랜드익스피리언스셀 강효정 CⓔM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마지막 결투에서 검을 뽑듯 비장하게 사표를 꺼내려다 다시 삼켜 넣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불현듯 헤어질 결심을 한다. 마침내.

‘대퇴사의 시대’라고 한다. 직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퇴사 현상을 일컫는 이 말은 요즘의 경제 추세다. 그것도 글로벌하게. Big Quit, Great Reshuffle, Great Resignation이란 말이 오르내렸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먼 했는데 김난도 교수는 ‘트랜드코리아 2023’에 포착해 두었다. 대사직, 조용한 퇴사, 일터의 정의, 직장문화가 빅뱅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는 오피스 빅뱅이 도래했다고.

많은 기업들이 입사자의 조기 퇴사를 막고 회사 내 빠른 정착을 돕기 위한 '온보딩(Onboarding)'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직원들이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고 정의된 약속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널브랜딩’의 일환으로 웰컴키트를 적극 활용한다. 새로운 시작을 환영하고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함이다.

 

NHN 신규입사자 웰컴키트(2022 IF 디자인어워드 본상 수상) / 출처 nhn.com

 

NHN의 웰컴키트는 사옥인 플레이뮤지엄을 형상화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회사 탐색 경험을 제공하는 디자인이다. NHN의 일하는 방식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표현한 마그넷과 펜을 제작해서 기업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플레이뮤지엄의 각 공간을 상징하는 사이니지와 그래픽 스티커를 패키지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으로 공간에 대한 기대감도 부여했다. 신규 입사자에게 ‘즐거운 문화를 만드는 곳’이라는 플레이뮤지엄의 가치를 전하는 첫 경험을 제공한 셈이다.

 

배달의민족 웰컴키트 / 출처 story.baemin.com

 

인터널브랜딩의 사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하는 방식’에 진심인 배달의 민족 웰컴키트는 대놓고 ‘환영, 재미지게 일하자’고 적혀 있다. 입사자의 이름으로 된 배달 쿠폰도 넣어 개인화 저격도 빼놓지 않았다. 주변인들에게 입사 턱으로 쿠폰을 선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웰컴키트를 만드는 기본 조건들이 있다. 첫째, 회사의 정체성을 담는다. 뭘 하는 회사인지, 회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보여준다. 둘째, 소속의 자부심을 느낄 디자인,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디자인이다. 인스타그램에 ‘#웰컴키트’ 해시태그 업로드 사진이 5000개가 넘는다.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만들었지만 외부적으로 기업을 더 친숙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홍보 효과도 노리는 것이다. 셋째, 취향저격하되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구성품이어야 한다. 직원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인기가 많았던 후드집업, 티셔츠, 슬리퍼를 제작 구성품에 넣고 온라인 굿즈샵에서도 판매했던 ‘토스’ 사례가 그러하겠다.

 

최근 몇몇 기업에 EX(Employee Experience) 부서의 이름이 생겼다. 인사팀, HR 부서들의 이름은 직원들을 조직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먼저 경험하는 Customer의 개념으로 본 관점의 이동이다. 인터널브랜딩은 다양성과 영향력에 초점을 맞춰 고용, 구인 시장의 측면에서 재직자는 물론 잠재적 입사 지원자, 퇴사자 등 근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기업의 가치와 이미지로 EVP(Employee Value Proposition)를 정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Internal Branding 대신 Employer Branding.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좋은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함이고, 구성원들의 자세와 행동이 브랜드의 비전과 일치해야 고객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일관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피스 빅뱅 시대에 우리의 내부 고객에 대한 기업들의 세심하고 진정성 있는 고민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들의 웰컴키트는 모두 비슷한 것 같아도 디테일이 다르다. 회사에 소속된 구성원과의 첫 번째 만남이기에 회사와 조직의 가치, 비전,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녹여내고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 브랜딩의 세심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웰컴키트가 아니다. 브랜딩에 대한 고민, 구성원에 대한 생각의 흔적인 셈이다.

 

몇 해 전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 둔 사진이 있다. 아마 그때도 현타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나 보다. 글귀는 이러하다.

 

그러니 먹고살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지겨움이든 불안함이든 견뎌야 한다.

아직 어른이고 싶지 않다 해도

우리의 부모님이 그랬듯 그렇게 어른인 척하며

어른이 된다.

 

대퇴사 시대의 인터널브랜딩이라는 거창한 제목, 바야흐로 오피스 빅뱅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피라미드를 쌓던 그 먼 옛날부터 이어지는 인류의 근본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과제, ‘벌어먹고 사는 일’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회사와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성원의 하나된 시그널을 맞추기란 어찌 보면 참으로 오래된 과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비장한(슬프면서도 그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다) 어제를 보내고, 장하게(훌륭하고, 크고, 성대하고,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오늘을 견딘, 내일의 내 일을 위해 곯아떨어진 이마에 잡힌 주름을 토닥토닥 펴주고 싶다. 그렇게 너와 나는 어른이 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먹고사는 일’에 대한 고심을 위로하며 마무리하고 싶다고 첫 줄을 쓰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잘 살고 있다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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