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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테클라_ 고요하고 아름다운

 

글 유지연 /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기자

 


 

수도승의 방이 이러할까. 회색 바닥에 흰 벽.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 안에 나무로 된 침대 프레임이 단출하게 놓여있다. 매트리스도, 헤드 보드도 없는 나무 프레임 위에는 포근해 보이지만 절대 과장되지 않은 심플한 침구가 깔려있다. 요란한 무늬 없이 한 가지 색으로 물들인 질 좋은 면 침구. 지퍼가 아닌 단추 여밈까지도 단정해 보인다.

요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넘기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브랜드, 테클라(Tekla) 얘기다.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산뜻한 단색의 침대 시트와 줄무늬 파자마, 테리 소재의 푹신한 수건 등의 이미지에 한 번, 하단의 역시나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브랜드 로고에 또 한 번 눈길이 간다.

 

 

패션 매체 WWD에 따르면 테클라는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240% 성장했다. 2023년 한 해로 좁히면 30% 성장했다. 럭셔리 세계의 부침이 이어지고 있는 최근 글로벌 패션·라이프스타일 업계에서 이 정도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브랜드는 드물다. 편안함을 넘어 고요함을 추구하는 리빙 브랜드 테클라가 조용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고가와 저가, 클래식과 캐주얼 사이

테클라는 201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들어진 홈패브릭 브랜드다.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신발 브랜드 이티스(Eytys) 등에서 활동하던 찰리 헤딘(Charlie Hedin)이 디렉터이자 창립자로, 공동창립자 크리스토퍼 줄(Kristoffer Juhl)과 함께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테클라는 기존 홈패브릭 시장에 없던 비어 있는 지점을 공략한다. 기존 시장은 이집트산 면 혹은 이탈리아풍의 클래식한 고급 패브릭 브랜드가 한 축을, H&M·이케아 같은 저렴하면서도 캐주얼한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가 다른 한 축을 차지했다. 창립자 찰리 헤딘은 고가와 저가 사이, 합리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의 홈패브릭을 원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패션 업계에 종사하면서 암스테르담·파리·LA 등지로 자주 이사를 했는데, 적절한 침구나 수건을 찾는데 매번 어려움을 겪었다”며 “저렴하면서도 오래 쓸 수 있으며, 환경을 의식하면서도 디자인이 아름다운 가정용 패브릭을 만들고 싶었다”는 테클라의 창립 배경을 밝힌 바 있다.

테클라는 그가 어린 시절 활동하던 요트팀의 보트 명칭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한 헤딘은 요트팀에서 활동했던 경험에 기반을 둬 테클라의 디자인 가치를 정립한다. 그는 “요트를 타면서 수건은 몸을 말려야 하고, 담요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물건이 주는 단순한 기능적 가치에 대해 깨달았다”며 “테클라는 자유에 관한 것이며, 나에게 기능성은 곧 자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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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클라는 단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고가와 저가 사이 합리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홈패브릭을 전개한다. / 출처 teklafabrics.com /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처럼 테클라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 건축·디자인의 가치를 계승한다.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최대한 단순하며 기능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유다. 패턴 없이 컬러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단색 패브릭이 주조를 이루고, 무늬라고 해도 줄무늬 정도다. 대신 유기농 면이나 오코텍스 등 친환경 인증을 받은 질 좋은 소재를 사용해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며, 아름답고 편안한 덴마크 휘게 스타일의 공간을 꿈꾸는 이들에게 테클라는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홈패브릭 브랜드일 것이다. 실제로 테클라는 스위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색채에서 영감 받은 담요 컬렉션을 내고, 핀란드 가구 업체 아르텍과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패션 플랫폼 매치스 패션의 홈웨어 바이어 엘라 조엘은 이런 테클라를 두고 “스칸디나비아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혼합해 홈웨어 분야로 확장한 최초의 브랜드”라고 평했다.

테클라의 미학은 지난 2023년 4월 코펜하겐에 문을 연 그들의 첫 매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여백의 미를 과시하는 듯한 텅 빈 공간은 매장이라기보다는 집에 가깝다. 자연 소재 그대로의 나무 카운터와 매끄러운 콘크리트 바닥의 대조는 단정하고 현대적인 테클라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곳곳에 놓인 빈티지 가구는 지나치게 새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고 매장 안의 공기마저 편안하게 만든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홈패브릭 브랜드 테클라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혼합해 홈웨어 분야로 확장한 최초의 브랜드’라는 평을 듣고 있다. / 출처 teklafabrics.com

 

평범한 하루를 기분 좋게

미니멀 디자인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함께 팬데믹은 테클라의 부상을 이끈 막강한 조력자가 됐다. 팬데믹 동안 모두가 실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런 경험은 머무는 공간과 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SNS에 드러나는 유명인들의 집에 테클라 로고가 박힌 수건이 걸려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고, 테클라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채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종종 노출됐다. 요란한 명품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편안하고 질 좋아 보이는 파자마와 침대 시트가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여유롭고 부유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했음은 물론이다.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이런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화려한 외투를 사기보다 고가여도 질 좋은 잠옷을 입고 집 안에서 여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었다. 고급스러운 공간에 대한 관심은 패션계에 부는 ‘조용한 사치’ 바람과 결합해 테클라 같이 조용히 속삭이는 고급 리빙 브랜드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발간한 <2025 트렌드 노트>는 이런 흐름을 두고 ‘일상의 여가화’라고 설명한다. 과거에 사람들이 집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야만 가능했던 특별한 시간이 이제는 집에서 머무는 평범한 하루로 전환하고 있다는 의미다. 평범한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고급 일상용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그런데 왜 ‘힙’하지?

미니멀 디자인과 팬데믹에 따른 고급 리빙 브랜드의 부상만으로 테클라의 상승세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테클라는 기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힙’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는다. 이는 새로운 고급 리빙 브랜드에 눈을 뜬 젊은 층을 주요 고객 군으로 끌어들인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흔히 고급 리빙 브랜드가 타깃 고객으로 설정했던 3040 기혼 그룹이 아니라, 2030 독립 그룹을 유혹한다.

이들은 그동안 집을 이케아로 꾸며왔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조금 더 나은 대안을 찾고 있다. 빈티지 가구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비싼 가구를 살 수 없을 때는 디자인 조명을 구매 목록에 올리기도 한다. 이들은 스웨트 팬츠에 후드 티셔츠를 입고, 어그나 투박한 등산화를 신는 등 스트리트 패션에 열려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개성적 스타일을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도 투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팝업 매장을 열었던 테클라가 29CM와 손잡고 성수동에 상륙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테클라는 고가 리빙 브랜드를 주로 취급하는 청담동이나 백화점 리빙 층이 아니라, 성수동 길거리에 팝업을 열고 덴마크 스페셜티 커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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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브랜드와의 콜라보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테클라. 스투시, 자크뮈스, 버켄스탁, 아르텍, 오라리 등 Z세대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와 협업해 화제를 모은다. / 출처 @teklafabrics /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테클라는 기존 리빙 브랜드와는 다른 보법으로 힙스터들을 공략한다.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역시 ‘협업’이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스투시, 디자이너 브랜드 자크뮈스를 비롯해 신발 브랜드 버켄스탁, 가장 최근의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 오라리까지, Z세대의 ‘최애’ 브랜드와 차례로 만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스트리트 패션과 홈·리빙 브랜드의 뒤섞임은 실제로 최근 꽤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를 운영하는 파이브스페이스는 지난달 라이프케어 브랜드 ‘아오삭’을 선보이고 감각적 침구와 파자마, 욕실용품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패션에 가까운 홈웨어, 홈패브릭 시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을 입을지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침대와 집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스타일리시하게 꾸밀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Z세대에게는 밖에서 입을 수 있는 스웨트 셔츠, 스니커즈와 마찬가지로 집에서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침구 브랜드도 필요하다. 더구나 휴식과 재충전을 갈구하는 젊은 층에 질 좋고 아름다운 패브릭 제품은 그나마 합리적인 사치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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