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숙명 / 칼럼니스트. <프리미어>, <엘르>, <싱글즈>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외 다수.
“우리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제품은 그다음입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이 상징하는 바를 믿을 수 없으면 소비하지 않습니다.
이를 신경쓰지 않는 소비자는 단기고객일 뿐이며
오히려 브랜드에 해를 끼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스트리트웨어입니다.”
이 시대 가장 쿨한 패션 브랜드라는 찬사를 받는 에메레온도르(Aimé Leon Dore, 이하 ALD) 설립자 테디 산티스의 말이다. 이는 최근 15년 간 스트리트패션 분야에서 벌어진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브랜드의 역사나 연관된 하위문화를 강조하고, 협업으로 취향을 과시하며, 다방면의 예술가를 끌어모아 아트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건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매뉴얼이 됐다.
스토리텔링으로 정체성을 확보한 브랜드들이 다음으로 하는 일은 ‘가지치기’다. 소량 한정판으로 고객을 줄 세우고 안달나게 만드는 ‘드롭’ 문화는 리세일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패션계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강력한 무기다. 그런 점에서 ALD의 전략은 여느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차원에서 완성도와 깊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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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과 랄프로렌 사이
ALD 설립자 테디 산티스는 뉴욕 퀸즈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1986년생인 산티스는 밀레니엄 전후 퀸즈의 힙합, 브레이크댄스, 농구, 그래피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저지 티셔츠, 운동화, 볼캡, 빈티지 스타일이 ALD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가족이 휴가를 보내곤 했던 지중해 휴양지의 풍경은 영감의 다른 한 축이었다. 느리고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그리스 남성 노인들의 차분한 옷차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울코트, 캐주얼 셔츠, 테일러드 팬츠, 가죽 구두 같은 것들 말이다. 퀸즈와 그리스의 조합은 곧 캐주얼과 클래식, 스트리트웨어와 하이엔드, 가장 동시대적인 것과 시대를 초월한 것의 공존을 뜻했다.
테디 산티스는 ALD를 설립할 때 참고한 브랜드로 슈프림, 랄프로렌 그리고 2000년대 뉴욕에서 잠깐 활동하던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놈데게레(Nom De Guerre)를 언급했다. 놈데게레는 밀리터리룩과 미니멀리즘을 결합하고, 대부분의 제품을 일본에서 생산할 정도로 고품질을 지향하며 소수의 패션 애호가에게 인정받은 컬트 브랜드다. 슈프림의 재치, 랄프로렌의 프레피함, 놈데게레의 언더그라운드 감성이 조화를 이룬 결과, 세련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ALD만의 스타일이 완성됐다. 때문에 ALD는 ‘A.P.C.에 대한 뉴욕의 답’이라 평가된다.
구독자 148만 명의 남성 패션 유튜버 팀 드세인트는 ALD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모든 타입의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독특한 감성을 잃지 않는다. 멋있게 보이고 싶지만 의상에 너무 신경쓰고 싶지는 않은 소비자에게 안전지대를 제공한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입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친구를 만들면 팬은 따라온다
디자인과 내러티브가 좋다고 해서 모든 레이블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ALD는 태생부터 뉴욕 패션 신의 수혜를 듬뿍 받았다. 아버지의 식당 일을 도우며 자신의 창의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던 테디 산티스는 2010년, 스물넷의 나이로 친구와 함께 티나 캐서린(Tina Catherine)을 론칭했다. 일본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고급 아이웨어 브랜드였다. 이를 통해 뉴욕 패션계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중 하나가 KITH 설립자 로니 피그였다. 산티스가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설립하기로 결심하고 프로토타입 티셔츠를 만들자 로니 피그가 그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게시했다. 이 포스트가 600회 넘는 ‘좋아요’를 받으면서 스트리트패션 지형도에 ALD의 좌표가 생성됐다.
테디 산티스는 2014년 마침내 ALD를 론칭한다. 그는 패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스타일링뿐 아니라 시쳇말 ‘하입(Hype)’을 일으키는 데도 천부의 재능이 있었다. 무성의한 콜라보레이션으로 민심을 잃은 브랜드도 많지만 ALD는 자신과 어울리는 브랜드를 영리하게 골라냈다. 드레익스, 뉴에라, 팀버랜드, 포르쉐와의 협업이 화제를 모았지만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뉴발란스였다. 2019년 시작된 이 협업을 통해 ALD는 현대 스트리트패션 문화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운동화 애호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ALD의 룩북은 브랜드 팬들뿐 아니라 동시대 다른 브랜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2021년 아베크롬비&피치가 브랜드를 재건하겠다며 내놓은 룩북이 ALD의 그것과 유사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2020년에는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1995)를 오마주한 캡슐 컬렉션을 발표했다. 수익금은 독립영화학교를 후원하는 데 쓰였다. 서브컬처를 강조하지만 실상 그것에 기여하지 않는 얌체 같은 브랜드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행보였다. 이른바 ‘진정성’의 차이다. 2022년에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과거는 빨리 간다(The Past goes Fast)>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ALD 특유의 서정성으로 역사, 예술, 창의력에 대한 헌사를 담아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ALD는 신중하고 감각적인 소비자들이 기꺼이 소속되고 싶은 하나의 세계, 즉 ‘ALD 월드’를 구축했다.
하입과 과잉노출의 경계
ALD는 빠르게 성장했다. 팬데믹 직전에는 소매 창구가 160군데에 달했다. 미스터 포터, 센스닷컴, KITH 등 패션 리테일 분야 탑티어들이 포함된 숫자다. 2021년에는 LVMH가 ALD 지분 일부를 사들였다. 2022년에는 Stock X에서만 거래량이 265% 증가하면서 의류 분야 21위로 올라섰다. 이것들은 희소식만은 아니었다. 개성 있는 브랜드가 대중화되면서 그 브랜드에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투사하던 코어팬이 이탈하는 건 흔한 현상이다. 하지만 ALD의 행보는 이번에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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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ALD는 기존 유통망을 폐쇄하고 본사 온라인 스토어와 뉴욕, 런던에 자리한 두 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상품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그들의 매장은 단순한 옷가게가 아니라 ALD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체험장으로 거듭났다. 뉴욕 플래그십 매장은 카페, 스넥바, 아이스크림 코너를 갖췄다. 그리하여 이곳은 ALD를 모르는 사람들도 기꺼이 틱톡을 촬영하러 몰려드는 뉴욕 최고의 명소가 됐다.
ALD는 일시적인 하입을 경계하면서 패션, 문화, 스포츠,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견고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그들의 과거는 고작 10년이었지만 미래는 아주 길 것이다. 남성복의 미래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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