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박선영 / 아트, 건축, 여행, 디자인 등 매혹적인 모든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전시 기획 및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모더레이터로도 활동. 저서 <독일 미감>, <유럽 호텔 여행>, <서울 서울 서울> 등
아만은 조용히 매혹시킨다. 큰 로고도 없고, 럭셔리를 설명하려 들지도 않지만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말이 줄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창밖을 오래 응시하는 사이 몸과 마음이 절로 느슨해진다. 1988년 태국 푸켓에서 시작해 전 세계 30여 곳의 프라퍼티(property)를 운영하는 하이엔드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 아만은 호텔이라기보다 하나의 리듬에 가깝다.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뜻하는 이름처럼 도심 한가운데든 산속 깊은 곳이든 아만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속도가 달라진다. 한 번 빠지면 쉽게 잊히지 않고,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아만 정키’라는 이름의 시작
‘아만 정키(Aman Junkie)’라는 말이 있다. 세계 곳곳의 아만 리조트를 찾아다니며 머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 표현에는 두 가지 결이 공존한다. 스스로를 아만 정키라 부르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 아만 정키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동경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나 역시 몇 해 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끝에 세 곳의 아만에 머물렀다. 도쿄 오테마치 타워의 33층부터 38층까지를 차지한 아만 도쿄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단절되며 공기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 유리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내려다보였지만, 객실 안에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만 베니스에서는 수상 택시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이동한 뒤 16세기 팔라초의 물가 입구로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 위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이 드라마틱한 동선은, 이곳이 호텔이기 이전에 오래된 시간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다. 프랑스 알프스의 대표적인 겨울 휴양지인 쿠흐슈벨 1850, 해발 약 1,850미터에 위치한 아만 르 멜레칭에서는 마치 영화 <007>에 나올 법한 위용 있는 건물 안에 머물며 눈으로 둘러싸인 채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듯한 휴식을 즐겼다. 겨울에만 운영되는 이곳의 시간은 스키 리조트 특유의 활기와는 달리 오히려 더 깊고 조용하게 흘렀다.
아만에서의 시간들은 공간의 공기부터 빛이 스며드는 방식, 머무는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까지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있다. 왜 아만은 전 세계의 여행자들, 특히 디자인과 건축,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매혹시키는 걸까.



조용히 퍼져나간 럭셔리
아만은 1988년 태국 푸켓에 문을 연 아만푸리(Amanpuri)로 시작했다. 창립자 아드리안 제차(Adrian Zecha)는 대형 호텔과 패키지 관광이 주류였던 당시 리조트 시장에서 소규모 객실과 넓은 대지 그리고 극도로 절제된 서비스를 시도했다. 아만푸리의 성공 이후 인도네시아 발리와 자바, 캄보디아, 부탄 등 동남아시아 섬들과 히말라야 인근 지역으로 확장해 나갔고 오늘날 아만은 전 세계 20여 개국, 30여 곳에 리조트와 호텔을 운영하는 하이엔드 리조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만은 이를 ‘지점’이나 ‘로케이션’이 아닌 ‘프라퍼티(property)’라 부르는데, 각각의 공간을 하나의 독립된 세계이자 고유한 서사를 지닌 장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리조트는 해안 절벽, 밀림, 사원 유적지, 산악 지형처럼 접근이 쉽지 않은 자연 환경 속에 자리 잡았고, 이는 곧 아만의 정체성이 됐다. 이러한 입지 선택은 아만을 대중의 시선을 피해 머무는 은밀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부유층과 셀러브리티들의 조용한 선택지가 됐다. 아만의 이름은 이렇게 소란스럽게 알려지기보다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용히 전해지며 명성을 쌓아왔다.





머무는 속도를 설계하다
아만은 건축적으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전면적인 오션뷰나 화려한 외관 대신 낮은 스케일의 건물과 지역 전통 건축 양식을 차용해 건물을 설계한다. 콘크리트와 유리보다는 목재, 석재,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부각시켜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다. 아만은 평균적으로 40개 안팎의 객실 수로 구성되는데, 이는 동급의 최고급 럭셔리 호텔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적은 규모다. 이러한 제한된 객실 수는 투숙객 간의 마주침을 최소화하고, 각 손님에게 충분한 거리감과 사적인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다.
길게 이어지는 동선과 비워진 공간은 풍경과 내부를 천천히 음미하게 만들며,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추도록 유도한다. 이 절제된 건축 언어는 리조트를 ‘보는 대상’이 아니라 ‘머무르며 체감하는 장소’로 만들었고, 아만은 빠르게 소비되는 휴양지가 아닌 깊이 있게 경험하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오늘날 럭셔리의 기준이 화려함보다 ‘시간의 밀도’와 ‘경험의 질’로 옮겨가는 흐름 속에서 아만의 느린 리듬은 오히려 가장 동시대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제차가 훗날 아만의 공간을 “건축가와 함께 소설을 써 내려가는 작업”이라 비유한 것도, 바로 이 서사적인 접근 방식 때문이었다.
아만은 왜 계속 진화 중일까
이후 아만은 유럽, 미국, 아시아의 도심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며 형태를 달리해왔다. 베니스의 16세기 궁전, 도쿄 도심의 초고층 빌딩, 유타 사막의 바위 지형 한가운데까지. 장소는 달라졌지만 각 지역의 역사와 풍경을 존중하는 태도는 유지됐다.
현재의 아만은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확장 국면에 들어서 있다. 현 소유주 블라디슬라프 도로닌(Vladislav Doronin) 체제 아래에서 아만은 레지던스, 라이프스타일, 도시형 프로젝트로 스펙트럼을 넓혔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문을 연 뉴욕 맨해튼의 아만 뉴욕이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뉴욕의 랜드마크 크라운 빌딩에 자리한 아만 뉴욕은 호텔∙레지던스∙회원제 클럽을 결합한 형태로, 자연 속 리조트에 뿌리를 둔 아만의 세계관을 도심으로 옮겨온 실험에 가깝다. 이 흐름은 서울에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아만은 청담동 핵심 부지에 호텔과 레지던스를 결합한 형태의 아만 서울을 2029년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자연 대신 도시의 결을 읽고 번잡함 대신 절제된 프라이버시를 제안하는 아만 서울은, 아만이 아시아의 메가시티를 해석하는 새로운 기준점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만의 변화는 숙박이라는 경계를 넘어 브랜드가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시도인 아만 에센셜(Aman Essentials)은 의류, 가방, 여행 소품 등으로 구성된 라이프스타일 라인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티나 로마노바(Kristina Romanova)는 아만 프라퍼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시적이기보다는 기능적이고 절제된, 이른바 ‘아만 클라이언트’를 위한 일상적 럭셔리를 제안한다. 호텔에서 느꼈던 촉감, 리듬, 분위기를 일상의 물건으로 옮겨오는 이 시도는 아만이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아만은 자누(Janu)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자누는 아만보다 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성격을 지닌 브랜드로, 웰니스, 소셜 경험, 보다 활기찬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 출발점이 된 곳은 2024년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에 문을 연 자누 도쿄로, 도시형 라이프스타일 호텔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2027년 오픈 예정인 자누 두바이 역시 중동 지역 특유의 스케일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자누의 해석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고요함과 절제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아만의 태도와는 분명히 다른 결이다. 도로닌은 “아만의 철학은 유지하되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가피한 변화 속에서 브랜드의 핵심을 지켜내려는 그만의 어법이다. 이 확장과 절제의 절묘한 조율은 아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시대 호스피탈리티의 예술이 아닐까. 고요한 럭셔리를 탄생시킨 아만의 비범함은 과연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기대와 궁금함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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