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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시마다전기제작소_버튼 너머의 세계

 

글 김도영 / 국내 대표 IT 기업 브랜드 기획자. 저서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기획의 말들>, <기획자의 독서>

 


 

물체의 뒤쪽 부분을 뜻하는 '이면(裏面)'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 너머에 더 중요한 진실이나 본질이 자리하고 있을 때 이면은 두 세계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돼준다.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뜻밖의 경험 속으로 진입하는 출입문인 셈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만드는 회사'. 이 한 문장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확하고 꼼꼼하게 설계도를 그리는 기술자들, 규격화된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흘러나오는 풍경, 조금은 딱딱하고 보수적인 제조업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모래시계 엎듯 거꾸로 뒤집는 회사가 있으니, 바로 일본의 '시마다전기제작소(Shimada Electric Works)'다.

 

 

1933년 설립된 이후 엘리베이터 전장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B2B 기업. 하지만 시마다전기제작소는 일반 고객들에게 더 큰 사랑과 환호를 받고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그저 산업 부품이 아닌 문화의 매개체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렇다. 만드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고객들 역시 제품과 산업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연 사람들

2024년 여름, 시마다전기제작소는 '오세바(OSEBA)'를 오픈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버튼 테마파크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음껏 누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버튼이 있으면 누르고 싶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심리를 반영해 무려 1,000개가 넘는 거대한 버튼 벽을 만들었고, 30초 안에 버튼을 몇 개나 누를 수 있는지 겨루는 하트 비트 버튼 챌린지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덕분에 관람객 수는 매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방문객들은 '이런 버튼을 만들어 주세요'라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버튼짱'이라 불리는 귀여운 캐릭터를 제작해 엘리베이터 버튼이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도록 만들었다. 사기 진작을 위해 직원 전원에게 자신의 다짐과 목표가 담긴 동기부여 버튼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버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버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논리로 접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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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전기제작소는 오세바 테마파크, 공장 투어, 버튼짱 캐릭터 제작 등 즐거운 방식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 출처 @oseba_official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다시 글 초반에 소개했던 '이면'이란 단어로 돌아가보자.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마다전기제작소의 행보는 엘리베이터 버튼 뒤에 존재하는 경험을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B2B 제조 업체가 굳이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말을 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무너뜨렸다. 물론 엘리베이터 버튼 제조 회사가 지켜야 할 기준이나 법칙은 없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쌓인 고정관념의 장벽 너머를 바라보고자 한 사람 역시 없었던 것이다.

시마다전기제작소는 그들의 제품이 고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하고, 그속에 그들만의 즐거움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 덕분에 시마다전기제작소는 고객들도,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완성할 수 있었다.

 

팬은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팬덤’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연예인이나 스포츠 팀 같은 대중문화의 영역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시마다전기제작소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주체가 팬을 확보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이라는 평범한 사물이 소중한 그 무언가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이를 만들고 가꿔가는 회사 역시 더 이상 단순한 제조 업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만들어주는 엄청난 역량의 소유자로 인식한다.

일본의 X(舊 트위터)에서는 시마다전기제작소의 굿즈를 자랑하는 게시물이 자주 눈에 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버튼’ 이미지를 AI로 생성해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당 게시물에는 '절대 터치 스크린이 도입돼서는 안 될 분야', '돈 많이 벌어서 집 안에 엘리베이터를 두고 싶다. 매일 버튼을 맘껏 누를 수 있게!'라는 등의 귀여운 댓글이 달려 있다.

이런 광경만 보더라도 시마다전기제작소는 굳이 ‘마케팅’, ‘브랜딩’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본질과 역할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구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엘리베이터 제조 업체들은 이왕이면 사람들이 환호하는 시마다전기제작소의 버튼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테니, '우리가 하는 일이 사용자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의 비즈니스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이상적인 공식을 만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스티커, 티셔츠, 인형, 키링 등 시마다전기제작소와 관련된 굿즈도 제작해 판매 중이다. / 출처 @oseba_official

 

당신에게도 마법의 버튼이 있나요? 

브랜딩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요즘은 뭐든 재미있어야 해. 아무 이유 없어도 그냥 귀엽고 재미있으면 좋아한다니까!'라는 반응과 '이런 거 한다고 해서 우리 물건이 하나라도 더 팔리겠어요? 왜 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라는 반응이다. 한쪽에서는 일단 독특하고 창의적이면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다고 외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게 대체 브랜드의 매출과 존립에 어떤 영향이 있냐며 반박한다.

하지만 시마다전기제작소의 사례에서 확인했듯 크리에이티브와 비즈니스의 관계, 고객과 회사의 관계는 하나의 버튼처럼 연결된 운명 공동체다.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치우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제아무리 호출 버튼을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결코 나를 태우러 오지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크리에이티브를 다룬다고 해서 창의성에만 몰두하는 것도, B2B 업체라고 해서 비즈니스 파트너만을 우선시하는 것도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더더욱 눈앞에 있는 그 대상 너머를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답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사람들은 겨우 하루만 지나도 싫증을 느끼지만 그저 그 흐름만 따르다 보면 우리는 영원히 이면의 세계와 마주하지 못한다. 오늘은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 벽 너머의 세계로 통하는 버튼을 찾아보자. 혹시 알까? 그 버튼이 한동안 전혀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로 우리를 데려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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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전기제작소는 이달의 MVP, 연말연시 파티 등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기업문화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 출처 @oseba_official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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