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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매드해피_나의 감정이 #OOTD로

 

글 박민지 / 프랑스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Studio Berçt) 졸업. 존 갈리아노 인턴, 코린 콥슨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시작해 패션 브랜드 론칭까지 20여 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패션 디자이너, 미래가 찬란한 너에게>,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 등

 


 

패션에 관심이 있든 없든 LA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거리가 있다. 바로 폴 스미스의 ‘핑크 월(Pink Wall)’이 있는 멜로즈 애비뉴다. 이곳을 기점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 로우, 슈프림 매장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쇼핑 스팟으로 떠오른 브랜드가 있다. 바로 ‘매드해피(Madhapp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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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즈 애비뉴에 있는 매드해피의 첫 매장. 공간에 여백을 두고 소파와 식물을 배치해 단순 판매가 아닌 대화와 휴식이 이뤄지는 장을 추구한다. / 출처 @madhappy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2017년 미국 LA에서 시작된 매드해피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다. 핏이 좋고 톡톡한 두께의 원단은 고급스럽다. 컬러나 프린트도 생동감이 느껴져 인상적이다. 여기에 특유의 스티치 디테일과 자수 로고는 비싼 가격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팬데믹 이후 ‘편안한 옷’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스트리트 웨어와 라운지 웨어가 유행을 이끌었다. 매드해피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후디와 스웨트 팬츠라는 친숙한 아이템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매드해피는 론칭 2년 만인 2019년, LVMH의 투자를 받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브랜드가 단순한 캐주얼 브랜드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평범한 옷으로 삶을 응원해

브랜드 이름부터 비범하다. MAD+HAPPY(미친 듯이 행복한)라는 단어의 결합으로, ‘삶이 늘 좋을 수는 없지만 좋아질 수는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많은 브랜드가 희소성과 쿨함을 내세우는 동안 매드해피는 ‘정신 건강(Mental Health)’을 대화의 주제로 끌어올렸다. “우울해도 괜찮아”, “기분이 오락가락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다.

브랜드가 말하는 ‘낙관주의(Optimism)’는 단순한 마케팅 언어가 아니다. 후디와 스웨트 팬츠 같은 가장 평범한 옷 위에 “It’s okay to feel”, “Be optimistic” 같은 문장을 얹어 자신과 타인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그래서 매드해피의 후디를 입는 사람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기분과 태도를 공유하며 일종의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소위 패션 브랜드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잘 입는 법’이 아니라 지금 나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이끌어가는 것. 패션이 감정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 그 단순함 자체를 브랜드의 중심에 두고 있는 셈이다.

 

초창기에는 ‘당신의 기분을 느끼세요’, ‘공감에는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와 같은 직접적인 문장을 옷에 새겼으나 최근에는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 출처 @madhappy

 

그렇다면 LVMH는 왜 신생 브랜드에 투자했을까? 매드해피가 패션을 매개로 ‘정신적 건강함’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패션 산업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감정의 영역’을 정면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럭셔리 코드라 할 수 있다.

매드해피는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와 달리 희소성과 완벽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함’을 브랜드의 미학으로 끌어올렸다. 다른 말로 하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바로 그 격려가 지금의 세대가 바라는 진짜 ‘여유’이자 ‘럭셔리’다.

 

적극적인 협업과 새로운 마케팅으로 승부 

매드해피의 브랜드 전개 방식은 전략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난다. 단순히 ‘좋은 말’을 새긴 옷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가치를 구체적인 협업과 마케팅을 통해 고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Local Optimist>가 있다. 지역 예술가들의 이야기 속에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며 고객들에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있다. 이 모든 전략의 중심에는 ‘상품-공간-담론-환원’ 이라는 명확한 구조가 있다. 매드해피는 이 순환을 브랜드 초기에 설정해 뒀고, LVMH의 투자를 발판 삼아 체험형 플래그십 및 코-브랜딩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드해피는 2024년 갭과 함께 40여 종의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한때 아메리칸 캐주얼의 상징이었던 갭은 최근 몇 년간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잃고 이미지가 정체된 상황이었다. 매드해피는 갭의 로고 위에 감정적 언어를 더함으로써 두 브랜드가 공유하는 기본기와 편안함을 새로운 세대의 정서로 재해석한 협업으로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같은 영역의 브랜드와도 철학적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2025년에는 주시 꾸뛰르와 협업해 트랙 수트 라인을 새롭게 해석했다. 과거 2000년대 감성을 상징하는 벨벳 트랙 수트에 “It’s Okay to Feel” 문장을 더해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지금 세대의 감성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과거의 아이콘을 재조명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마르니와 함께 ‘세계 정신건강의 날’에 맞춰 캡슐 컬렉션을 공개했다. 매드해피의 후디와 스웨트 팬츠를 마르니스러운 컬러로 풀어낸 이 컬렉션은 수익 일부를 관련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확장했다. 이외에도 푸마와의 ‘Becoming’ 캠페인, 오프라인 ‘Optimist Box’ 이벤트, 멜로즈 애비뉴 플래그십에서 진행된 참여형 팝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를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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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 푸마, 헬로키티, MLB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고객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 출처 @madhappy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 보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매드해피의 글로벌 시장 확장 전략이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카페와 행사 공간을 결합해 브랜드 철학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미국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라는 국지적 이미지를 넘어 글로벌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2025년 10월, 일본 도쿄 진구마 지역에 상설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아시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어 유럽, 북미, 아시아 전역에 걸쳐 향후 2년 이내에 8~10개 플래그십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 확장 전략은 단순한 유통망 확대가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공감이 섬세하게 유지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앞으로 매드해피가 브랜드 철학을 지키면서도 시장 안에서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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