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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트래드맨즈 본사이_지금 가장 패셔너블한 분재

 

글 이예은 / 한국에서 호텔 홍보 업무를 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 석사 취득. 일본 여행사에서 근무한 경험담인 <콜센터의 말>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등의 책을 펴내며 번역가와 작가로 활동 중

 


 

도쿄의 고풍스러운 상점가인 마루노우치 거리에 트래드맨즈 본사이(Tradman’s Bonsai)의 분재 숍이 있다. 화이트와 그레이를 모던하게 배치해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안에서는 일본어 랩이 매끄러운 비트를 타고 흐르고, 정중앙과 양쪽 벽면에는 다양한 크기의 소나무 분재가 고고히 늘어서 있다. 그 사이사이에는 분재 패턴과 오리지널 로고를 간결하게 조합한 캐주얼 의류와 향수 그리고 스트리트 컬처의 상징인 스케이트보드도 뒤섞여 있다. 놀랄 만큼 아무런 이질감 없이.

 

 

분재의 정통성을 강조한다며 ‘트래디셔널 맨(Traditional Man)’이라는 영어 표현을 간추린 브랜드 이름도, 타투가 빼곡한 팔로 분재를 가꾸는 창립자이자 CEO인 코지마 텟페이(小島 鉄平)의 이미지도 비슷한 인상이다. 일견 모순되지만, 그래서 강렬하고, 눈을 뗄 수 없다.

2015년 트래드맨즈 본사이는 분재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단순하고도 당찬 이념 하에 탄생했다. 그 후로 끊임없이 일본 전통미의 극치인 분재를 가장 트렌디한 방식으로 제시하며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해오고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문화계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던 전통 예술과 스트리트 컬처의 폭발적인 시너지에 글로벌 브랜드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니!

 

 

품에서 길들이는 자연, 분재

아름다운 것을 길들이고 소유하려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의 유구한 욕망이다. 오늘날 Z세대가 각종 캐릭터의 미니어처인 키링을 지니고 다니듯이 고대 중국인들은 도기에 나지막한 나무와 돌, 물을 배치해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는 휴대용 정원을 꾸몄다. ‘분경(盆景)’이라고 불리던 이 풍습은 6세기경 일본에 전파돼 나무만 따로 가꾸는 ‘분재(盆栽)’가 됐고, 일본 귀족과 무사를 중심으로 발전하며 고유의 철학과 미학을 꽃피웠다.

일본 분재는 소나무, 단풍나무와 같은 교목을 축소하면서 가지를 치거나 철사를 감는 등 정교한 기술을 통해 자연의 웅장함을 인위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분재는 자그마한 화분에 나무 한 그루보다 훨씬 광활한 풍광을 담는다. 예를 들어 뿌리에 돌을 박은 뒤 한쪽으로 쏟아지듯 기울여 키운 소나무 분재는 해안 절벽의 거친 바람을 느끼게 하고, 여러 종의 나무를 한데 모아 심은 분재는 울창한 삼림을 떠올리게 한다. ‘백골화’라는 과정을 통해 가지 일부의 색을 빼앗아 하나의 분재에 생(生)과 사(死)의 극적인 대비를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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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분재는 교목을 축소하고 가지를 치거나 철사를 감는 등 정교한 기술을 통해 자연의 웅장함을 인위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 출처 ⓒtradmans.jp, @tradmans_matsubaya.inc

 

나무는 점토나 석고와 달리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단숨에 원하는 형태로 깎을 수 없다. 원하는 수형을 조각하기 위해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자연의 생명력과 씨름하고 함께 호흡해야 한다. 모든 분재에는 그 고유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작지만 경이롭고, 또 고요하지만 역동적이다.

 

 

분재를 사랑한 소년

어떤 운명적 만남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찾아와 마음 한편에 집을 짓는다. 어쩌면 트래드맨즈 본사이를 설립한 텟페이에게 분재가 그런 존재는 아니었을까. 여유와 인내심을 요하는 분재는 흔히 부유층이나 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그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던 대여섯 살 무렵에 일찍이 분재의 매력에 눈을 떴다. 늘 엄하기만 한 원장님이 분재를 가꿀 때만 보이는 온화한 표정에 호기심이 인 것이다. 분재에 관심을 보이는 어린 텟페이를 기특하게 여긴 원장님은 그에게 기본적인 분재 관리법을 알려줬다. 시설을 나와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된 후에도 텟페이는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분재를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러 주인에게 분재를 보여 달라 졸랐다. 그가 이사한 동네가 분재에서 가장 흔히 쓰는 소나무 잎을 뜻하는 ‘마츠바(松葉)’라는 마을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우연이다.

분재를 향한 애정을 놓은 적은 없지만, 텟페이가 성인이 돼 처음 업으로 삼은 분야는 어패럴이었다. 10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리바이스 501 진의 영향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가 마모되기는커녕, 새 제품보다도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빈티지 의류에 흥미를 느꼈다. 리바이스 진을 입고, 펑크 음악을 듣고, 중고 스케이트를 타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20대에 의류 바이어로 활동하는 한편, 마음 맞는 지인과 클럽을 경영하거나 인테리어 사업을 전개하며 사업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다 해외 출장 중 엉성하기 짝이 없는 분재가 버젓이 전시된 광경을 보고 분재의 진가를 보여주고자 분재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30살이 되던 해, 그의 삶의 총집합체이자 오늘날 가장 트렌디한 분재 브랜드인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시작이었다.

 

 

 

스트리트 감성을 입은 분재

설립 이래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 초기에는 젊은 나이대와 화려한 차림새 탓에 보수적인 분재 업계로부터 거래를 거부당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텟페이는 자신의 백그라운드인 스트리트 컬처를 감추거나 버리기보다 융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날 기분 전환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길 한복판에 음악을 틀어 놓고 분재를 다듬었는데, 예상 밖의 인파가 몰려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분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신한 텟페이는 일본 패션&디자인 전시회인 룸스(Rooms)에서 조명과 장식을 현대적으로 연출한 분재를 선보였고, 이 계기로 일본의 대표 편집숍인 유나이티드 애로우즈(UNITED ARROWS), 빔즈(BEAMS)와 함께 콜라보 및 팝업 이벤트를 진행하게 된다.

트래드맨즈 본사이의 실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23년 5월에는 전통 예술인 분재와 서브 컬처인 그라피티 아트를 결합한 슈퍼 트래드(SUPER TRAD) 전시를 주최했다. 일본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스니커울프(Sneakerwolf)와 협업해 분재 화분을 그라피티 아트로 꾸미거나 화분에 나무 대신 그라피티로 제작한 분재 일러스트를 올리기도 했다. 2024년 5월에는 교외의 고즈넉한 원예원이 아닌 도쿄의 중심가에 쇼룸을 열고 분재와 함께 패션 아이템과 라이프스타일 굿즈를 선보이며 가장 트렌디한 분재 숍을 선보였다.

글로벌 브랜드의 반응도 심상치 않았다. 2025년 2월에는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인 반스(Vans)와의 콜라보를 통해 분재 패턴을 대담하게 입힌 스니커즈 모델 3종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도 나이키, 랜드로버, 디올, 리모와 등 다양한 메이저 브랜드와의 콜라보도 줄을 잇고 있다.

 

나이키, 반스, 넷플릭스, 유니클로 등 다양한 메이저 브랜드와의 콜라보로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 출처 ⓒtradmans.jp, @tradmans_matsubaya.inc

 

분재를 제공하는 방식도 혁신적이다. 분재는 잘 관리하면 몇 세대에 걸쳐 유지되지만, 단 며칠만 방치해도 상해버리기 일쑤다. 트래드맨즈 본사이에서는 관리에 대한 부담을 줄인 리스 서비스를 운영하며, 실제 존재하는 분재 이미지를 디지털 아트로 확장한 NFT 프로젝트도 전개한다.

 

 

‘올드’도 ‘뉴’도 아닌 빈티지

트래드맨즈 본사이 쇼룸에서 만난 오엽 소나무 분재에는 리바이스 진과 같은 ‘501’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유일무이한 가치를 더해간다는 점에서 분재와 빈티지는 닮아 있다. 역사 없는 전통은 성립할 수 없지만, 변화 없이는 존속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텟페이는 ‘전통은 혁신의 연속’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한 사람의 삶에, 그리고 하나의 공간에 고전적인 예술과 스트리트 컬처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아름다움의 시대적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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