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윤성중 /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산에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산악부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산악인’의 삶을 시작. 현재 월간 <산>에서 기자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등산시렁>이 있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단복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어떤 브랜드에서 참여했나? 디자인은 어떨까?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 2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밀라노-코르티나 2026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도 오랫동안 TV를 지켜봤다. 노스페이스, 아르마니, 룰루레몬, 랄프로렌, 유니클로 등 익숙한 브랜드에서 디자인한 단복을 걸친 선수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중 생소한 모양의 로고가 박힌 단복이 눈에 띄었다. 눈을 크게 떴다. 빨간색 사각형 안에 숫자 ‘66’이 적힌 로고였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어디에 있는 나라고, 저 브랜드는 뭘까? 궁금해서 검색을 시작했다.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가깝다. 영국 최북단에서 아이슬란드 최남단까지 810km쯤 된다.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 나라는 겨울이 길다. 좀 춥다. 바로 위가 북극권(위도 66°)이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입은 단복을 만든 업체는 ‘66노스’라고 불렀다. 외국의 한 리뷰 사이트에는 아이슬란드 국민 브랜드라고 쓰여 있었다. 금세 흥미가 떨어진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다시 TV로 눈길을 돌렸다.
가혹한 날씨로부터 탄생한 옷
몇 달이 지났다. 지금 한국은 전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 박람회장이 됐다. 각종 아웃도어 업체가 손님들을 붙잡고 “산에 가자”고 난리다. 나는 잠깐 박람회를 기획하는 기획자가 됐다고 상상했다. 알려지지 않은 아웃도어 브랜드를 찾아 부스를 차려보자고 생각하면서 인터넷을 헤매다가 지난 겨울 봤던 66노스를 떠올렸다.
66노스는 1926년에 생겼다. 한스 크리스티안손(Hans Kristjánsson)이라는 사람이 설립했다. 그는 아이슬란드에서 ‘의인’으로 평가 받는 듯 하다. 일화를 잠깐 살펴보면, 그는 아이슬란드 서쪽 끝자락의 한적한 피오르드 마을인 수두레이리(Suðureyri)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 지역 주민들은 주로 바다에서 대구를 잡아 생계를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해 친구의 아버지, 여러 이웃들이 바다에서 얼어붙을 듯한 추위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어떤 어부는 방수가 되지 않는 옷을 입고 나갔다가 저체온증에 걸려 사망하거나 동상에 걸린 신체 일부를 절단하기도 했다. 청년이 된 한스는 자신의 이웃과 동료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비극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고, 어부들을 보호할 옷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로 건너가 옷 만드는 법도 배웠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 무겁고 두꺼운 캔버스(무명천) 천에 질긴 기름을 여러 번 덧발라 말리는 방식(Oilskin)의 옷이 탄생했다. 이 옷은 바닷바람과 파도를 완벽하게 차단했고, 어부들은 젖지 않은 상태로 장시간 조업할 수 있었다. 이 생존복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26년, 66노스의 전신인 ‘아이슬란드 해상 의류 제작소(Sjóklæðagerð Íslands)'가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옷 덕분에 아이슬란드 어부들의 해상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이 옷은 아이슬란드 해상 구조대도 입었다. 유명해졌지만 한스는 옷을 과잉 생산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류의 본질은 디자인이나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가혹한 날씨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 맞아?”
아웃도어 박람회 기획자가 된 나는 한 친구(이른바 바이어)에게 66노스를 이러쿵저러쿵 설명했다.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어때? 굉장한 브랜드지?” 그러자 친구가 물었다. “굉장한 브랜드인데 왜 잘 알려지지 않았지? 얼마 전 유럽에 갔는데, 이 브랜드의 로고가 붙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좋은 브랜드 맞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우선 66노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어서 친구에게 보여줬다. “자, 이것 봐! 팔로어 숫자가 25.8만(25만 8천 명)이야! 이 정도면 유명하다고.” 친구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목소리를 깔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66노스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25만 명은 웬만한 인플루언서 팔로어 숫자와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의미 있는 해석은 가능하다. 지금 아이슬란드 인구는 40만 명 정도다. 나라 인구의 60%에 이르는 숫자가 이 브랜드를 팔로우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 사정에 대입해보자. 한국에서 만드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SNS 팔로어는 3천만 명(국내 인구 약 5천만 명의 60%)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런 수치를 가진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는 없다. 그러니까 인구 40만 명의 나라에서 탄생한 브랜드가 25만 명의 글로벌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이 브랜드가 ‘아이슬란드’라는 강력한 스토리텔링만으로 세계 아웃도어 마니아 여럿을 매료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66노스는 한국에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대체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라는 뜻이다.
이 브랜드의 로고가 한국인의 눈에 아직 낯선 이유가 또 있다. 66노스는 물량 공세를 하지 않는 ‘희소성 전략’을 펼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유통망을 무분별하게 확장하지 않고, 아이슬란드 자국 매장과 유럽 일부 핵심 패션 도시(런던, 코펜하겐)의 플래그십 스토어 그리고 브랜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한 직영(D2C) 판매를 고수한다. 최근에는 생산하는 제품 가짓수를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과감히 줄였다. 유행에 따라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옷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무나 쉽게 살 수 없는 희소성’을 유지하다 보니 노출 빈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손님이 곧 브랜드의 주인공
그렇다면 66노스는 좋은 브랜드인가? 좋은 브랜드의 절대적 기준은 모호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대적 기준에 따르면 ‘고유의 철학을 가진 색깔 있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66노스는 친환경 공정을 따른다. 제품을 구매한 손님에게 평생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번 산 옷이라면 대를 이어 오래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브랜드의 가장 큰 가치로 둔다. 홈페이지에 설명만 번드르르 적은 건 아닌 모양이다. 획득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B Corp’에서 인증했다.
마케팅 방식도 독특하다. 66노스는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는데, 이를 기념해 1926년부터 2025년 사이에 태어난 100명의 사람을 한 명씩 선정해 촬영했다. 192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할아버지부터 2025년생 신생아까지. 특이한 건 참가자 모두 소장하고 있는 66노스의 의류를 착용했다는 점이다. 촬영한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톱스타 대신 평범한 아이슬란드 국민을 모델로 기용한 마케팅을 보며 수준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66노스를 애용하는 손님을 브랜드 성장을 이끈 주인공으로 재조명했다는 데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아이슬란드 출신의 그래미 수상 재즈 아티스트 레이베이(Laufey)와 협업한 캡슐 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레이베이 역시 어린 시절부터 66노스를 입었다고 알려져 있다.

‘친환경’, ‘사회적 기업’,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 좋은 브랜드를 수식하는 단어와 문장들은 이제 진부한 표현이 됐다. 모든 브랜드가 자신들이 선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66노스처럼 자국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브랜드는 보지 못했다. 박람회장의 기획자인 나는 66노스의 부스 크기를 두 칸에서 세 칸으로 늘렸다. 천막 앞에 커다란 현수막을 펼칠 계획인데, 거기엔 이렇게 쓰려고 한다. “새 옷 사려는데 고쳐 입으라고 잔소리하는 브랜드, 평생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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