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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d-Issue

스포츠 마케팅의 골든 이어

 

글 소선중 / 굴지의 식품 대기업에서 영업, 전략, 마케팅 등 깊이 있는 실무 경험을 쌓은 후 2021년 마케팅∙컨설팅 교육 기업 '마케티움' 창업, 국내 최초의 브랜드 매니저 대행 서비스와 마케팅 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저서로는 <모든 마케터는 사업가다>가 있다.

 


 

2022년 가을의 어느 날, 해외 마케팅 사례들을 찾아 온라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나이키의 'Never Done Evolving' 광고 캠페인은 거대한 충격이었다. 나이키가 50주년을 맞아 집행했던 이 캠페인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와 AI 기술의 만남으로 이목을 모았다. 1999년의 ‘신인 세레나’와 2017년의 ‘전성기 세레나’가 시공간을 초월해 대결하는 가상 경기를 구현한 것. 약 13만 건의 샷 데이터와 움직임 패턴 등을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생성된 두 개의 AI 모델은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의 샷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경기를 치렀다. 경기 결과는 ‘전성기 세레나’의 승. 기술이 스포츠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과거부터 스포츠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올해는 그 양상이 남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골든 이어(Golden Year)’이기 때문이다. 2월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6월 북중미 FIFA 월드컵, 9월 일본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메가 이벤트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전 산업계의 브랜드 활동이 이 황금기에 집중되면서 단순한 스포츠 스타 기용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마케팅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스포츠 팬덤, 초개인화 마케팅으로 진화

스포츠 마케팅에 있어 과거와 올해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AI 기술을 통한 팬덤 확장’이다. 과거에는 스포츠 스타를 광고 모델로 활용해 스타의 이미지를 단순 차용하는 일방향적 광고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제는 AI와 실시간 데이터를 결합한 초개인화 마케팅이 너무나 당연한 표준이 됐다.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은 물론, 선수의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팬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거나 경기장 밖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데이터화해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며 스포츠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지난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 EPL)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팬 경험 강화에 나섰다. 30개 이상의 시즌별 통계, 30만 개의 기사, 9천 개의 비디오, 시즌당 380개의 라이브 경기 데이터 등 방대한 정보를 AI가 번역해 개인화하고 실시간 콘텐츠로 전환해 전세계 곳곳의 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월, 롯데웰푸드의 대표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월드콘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을 새로운 모델로 발탁하고 월드컵 시즌에 맞춘 디지털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1위 콘 아이스크림과 글로벌 스포츠 스타의 만남을 ‘World Class X World Class’라는 슬로건으로 담아내며 1등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일관되게 전달하는 마케팅이다. 이 프로모션의 핵심은 QR코드다. 구매한 제품의 뚜껑 안쪽 행운 번호를 QR코드에 입력하면 월드컵 직관이 가능한 북중미 여행권을 제공하는 체험형 이벤트가 진행됐다. 소비자의 ‘인지도(Awareness)’가 필요한 브랜드와 다르게 구매, 경험 등 소비자의 ‘태도(Attitude)’를 높이려는 1등 브랜드의 정공법이라 생각된다. 응모 횟수가 많을수록 당첨 확률을 높이는 장치를 통해 세일즈 성과까지 고려한 캠페인의 정교함도 인상깊다.

 

월드콘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손흥민을 모델로 발탁해 월드컵 시즌에 맞춘 디지털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 출처 @lottewellfood_ice

 

구글코리아가 김연아와 협업한 ‘Our Queen is back' 캠페인 역시 인상 깊은 마케팅 사례다. 이번 캠페인은 구글의 생성형 AI인 제미나이를 활용해 피겨 무대에서 은퇴한 김연아가 발레리나로 변신하는 과정을 감동적인 서사로 담아냈다. 제미나이는 광고의 배경과 음악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과 발레의 동작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 김연아 선수의 신체 밸런스에 최적화된 발레 안무 시퀀스를 제안하는 파트너 역할을 수행했다. 은퇴한 선수의 삶이 기술로 다시 연장되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구글은 팬들에게 새로운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며 많은 AI 툴 사이에서 비교 우위의 브랜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스타’와 ‘기술’로 쟁취하는 브랜딩

많은 마케팅 실무자들이 흔히 하는 위험한 착각이 있다. 마케팅을 ‘예술’과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멋진 영상을 만들고, 좋은 콘텐츠를 뽑고, 재밌는 카피를 쓰는 작업이 마케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활동을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마케팅은 수많은 재무적 자원이 투입되는 경영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아웃풋을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필자가 마케팅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은 '마케팅은 예술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마케팅은 모호한 영감이나 아름다운 이미지가 아니라 고객이 우리를 선택해야만 하는 명확한 명분인 ‘RTB(Reason to Believe)’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과정이다. 최근 브랜딩의 성패는 이러한 RTB을 얼마나 일관되게(Consistency)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6년 스포츠 골든 이어의 화려함 속에서 ‘스타’와 ‘기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브랜드만의 일관된 목소리를 반복해서 전달하는 ‘진정한 승자’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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