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박우현 / 로컬 전문지 <비욘드 로컬> 기획위원이자 로컬 기획자. 저서로는 <뉴 로컬 컬처 키워드>가 있고, 역서로는 일본의 지역 재생 사례를 다룬 <온 더 로드>, <로컬로 턴!> 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사회 트렌드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로컬’이라는 말을 종종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로컬이 정확히 어떤 개념이며, 그곳에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로컬이 마치 미래를 위한 희망의 장소처럼 소개되고, 또 로컬로 향하는 젊은이(로컬크리에이터, 로컬 기획자 등)를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힙스터’ 같은 존재로 소구하는 경향이 컸던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로컬에 막연한 동경을 품거나 아니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로 규정하고 만다.
사실 로컬은 그리 특별한 말이 아니다. 처음에는 서울 같은 대도시와 지리∙문화적으로 상반되는 지역 또는 지방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며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곳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로컬이라는 개념은 ‘삶의 전환을 이루는 장소적 터전’이라는 물리적 의미 말고도 삶의 태도이자 라이프스타일로서 그 가치가 돋보이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패러다임의 변화
그렇다면 왜 이처럼 로컬이 주목받는 걸까? 알려진 바와 달리 지금 로컬에서 활약하는 청년 모두가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이주를 선택한 건 아니다(물론 그런 청년도 많다). 오히려 그들은 경쟁으로 점철된 서울에서의 삶, 나날이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비 등으로 불투명해진 미래, 스펙을 내세우다 부품처럼 소진되고 지쳐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재난적 상황에서 ‘로컬’의 가능성을 발견한 쪽에 가깝다. 이는 마치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경쟁적 삶을 살아갔던 일부 청년 그룹이 기존의 경쟁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고자 대거 고향 또는 지역으로 향한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에게 이른바 로컬 현상은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차원에서 생존의 문제나 다름없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개발과 성장 중심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개발과 성장 모델은 한계에 이르렀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동안 재택 근무의 가능성을 몸소 확인하면서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이나 노동자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이때 국내 지역을 여행하거나 워케이션 방식으로 머물면서 로컬의 재발견이 이뤄졌다. 특히 경험적 소비를 중시하는 MZ 세대에게 로컬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실현이 가능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기존 세대가 지역을 단지 ‘귀농’이나 ‘귀촌’ 또는 ‘은퇴 후 머물 곳’ 정도로만 여기던 사고에서 진일보한 해석이다.
정부도 움직였다. 인구 증가가 힘들다면, 로컬에 관심을 가진 청년을 지역으로 분산시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겠다 싶었다. 부처별로 청년의 지역 창업 및 이주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졌다. 이에 발 빠른 기업은 지역에 지점을 내고 거점을 마련해 로컬크리에이터와 협업하거나 지역 문제 해결을 비즈니스로 연결해 지역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로컬의 부상에는 IT 기술 환경의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지역이 지니고 있던 물리적 한계를 크게 낮췄다. 이에 따라 정보 접근과 유통, 콘텐츠 생산의 조건이 평준화되면서 과거에는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있어야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콘텐츠의 가치 기준은 ‘연남동이나 성수동에서 지금 무엇이 뜨고 있는가?’에서 ‘당신의 지역은 무엇이 매력인가?’로 옮겨갔다. 다시 말해 이제 대중은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장소에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식과 시간이 축적된 장소에 관심을 보이는 것. 그곳이 바로 ‘로컬’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스토리텔링의 재발견
도시 자본의 난개발을 피한 지역은 지금까지 그 땅이 이어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우가 많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로컬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이러한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데서 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한 복고적 향수가 아니라 잊힌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재생 작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로컬에서의 소비 방식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 제품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장소에서 비롯됐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그 히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을 중시한다. 기존의 가치 소비나 윤리적 소비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이런 현상은 상품이나 콘텐츠 소비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세계관을 드러내고자 하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이때 로컬은 도시의 대량 생산∙대량 소비 시스템과 달리 비교적 명확한 배경과 서사를 제공하기에 마케팅과 브랜딩의 영역에서도 로컬은 점점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에 걸쳐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에서 있었던 제주 한림수직 팝업 행사는 그야말로 글로컬(Global+Local)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로컬 콘텐츠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가 만나는 구체적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물론 모든 로컬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지역이니까 의미가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다. 로컬이 지속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 지역이 지닌 맥락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재의 언어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AI가 고도화할수록 오히려 인간다운 경험의 가치는 상승한다. AI가 처리할 수 없는 지역만의 고유한 서사와 사람 사이의 유대감은 로컬이 가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로컬리즘은 획일화한 삶에 대한 반동이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앞으로 로컬에서 벌어질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와 실험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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