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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미스피츠 마켓_못생겨도 괜찮아

 

글 김콜베 / 2012년 브랜드 개발 전문 에이전시 ‘엔스파이어’를 설립해 ‘성수연방’, ‘안녕인사동’ 등 수많은 브랜드 론칭. 공유 오피스 브랜드 ‘집무실’을 선보였고 현재는 브랜드, 예술, 건축, 문화, 디자인을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와 인사이트 발굴. 저서로는 <브랜드, 결국 이야기다>가 있다.

 


 

2018년, 필라델피아의 한 아파트 거실에 사과가 상자째 쌓여 있었다. 썩은 사과가 아니었다. 맛도 신선도도 멀쩡한데 겉모습이 유통 규격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농장에서 버려질 뻔한 사과들이었다. 스물여섯의 아비 라메시(Abhi Ramesh)는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Misfits) 사과를 사들여 자신의 집 거실에 쟁여뒀다. 그는 직접 코딩한 웹사이트를 열었고, 코스트코에서 산업용 냉장고 두 대를 신용카드 한도까지 긁어 마련했다. 사이트를 연 지 열흘 만에 선주문 500건이 들어왔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미스피츠 마켓은 연 매출 약 5억 달러의 신선식품 물류 플랫폼이 됐다. 거실의 사과 상자와 5억 달러 사이에는 아득한 간극이 있다. 이쯤 되면 그 간극이 도대체 어떻게 메워졌는지가 궁금해진다. 좋은 콘셉트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면 쉽지만, 미스피츠가 실제로 분투해온 궤적은 그보다 훨씬 다사다난하고 필사적이다.

 

미스피츠 마켓의 창업자 아비 라메시는 유통 규격에 못 미치는 사과들을 사들여 사업을 시작했다. / 출처 ⓒmisfitsmarket.com, @misfitsmarket

 

 

못생겼지만, 멀쩡하다!

라메시는 투자 회사 아폴로(Apollo)에서 냉장 물류 기업을 분석하던 중 배송 트럭이 몇 시간만 늦어도 멀쩡한 신선식품이 통째로 폐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몇 달간 농부들을 만나며 그는 확신했다. 맛과 품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직 겉모습 때문에 유통망에 오르지 못하는 '못난이 농산물'이 산더미이고, 이런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소비할 사람들이 꽤 많으리라는 사실을. 미스피츠는 그 못난이 농산물을 시세보다 30~40% 싸게 사들여 어떤 상품이 배송될지 모르는 미스터리 박스로 구성해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싸다'라는 가치는 이 브랜드의 창업 첫날부터 새겨진 DNA다. 할인의 원천은 철저히 ‘소싱(Sourcing)’이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못난이였기에 원가가 낮았고, 그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람들은 버려질 뻔한 농산물을 구한다는 ‘명분’, 그리고 어떤 상품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상자를 여는 ‘재미’를 입소문 내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라메시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팔리지 못한 농산품들은 미스피츠 마켓을 통해 재미있는 아이템으로 재조명받았다. / 출처 @misfitsmarket

 

 

호황의 숙취, 경쟁자를 과감히 삼키다

초창기 날 선 콘셉트로 주목을 받은 브랜드들의 첫 위기는 대개 '너무 잘될 때' 찾아온다. 팬데믹이 닥치자 주문은 400%나 급증했다. 미스피츠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신규 대기자 명단을 닫았고 페이스북 광고마저 중단했다. 들어오려는 손님을 되레 막아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그해 매출은 352% 뛰어 1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회사는 폭증하는 수요를 좇아 창고와 물류 인프라를 서둘러 키웠다.

콘셉트의 힘이 실행 역량을 앞지르는 순간 성장통은 반드시 뒤따른다. 백신이 보급되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자 밀물이 빠지듯 주문은 줄고 회원은 이탈했다. 라메시는 이 시기를 '숙취'라 불렀다. 붐이 계속될 줄 알고 키워둔 몸집이, 이제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와버렸다. 미스피츠는 물류센터 세 곳을 닫고 상당한 감원을 겪었다.

주목할 점은 이 위기를 돌파한 방식이다. 미스피츠는 사업 콘셉트를 수정하거나 버리는 대신 실행력의 근간을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최대 경쟁사인 임퍼펙트 푸즈(Imperfect Foods)를 전액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인수해 그간 페덱스∙UPS에 맡기던 배송을 임퍼펙트의 자체 배송망으로 바꿨다. 신선식품을 먼 거리로 보내는 동안 곰팡이와 손상이 생기던 문제 — 즉 '외모는 흠이지만 품질은 정상'이라던 약속이 규모 앞에서 흔들리던 문제 — 를, 배송을 직접 통제하며 집요하게 해결해 나갔다. 품질은 올라갔고 환불은 줄었으며 재구매율은 높아졌다. 콘셉트를 받치는 실행을 고도화해가며 미스피츠는 더디지만 분명한 개선의 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스피츠 마켓은 자체 배송망 구축, 풀필먼트 시스템 등 실행력의 근간을 보강하며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 출처 ⓒmisfitsmarket.com

 

 

구축한 가치를 확장하는 법

배송 역량을 내재화한 미스피츠는 자신들의 가치를 더 넓은 곳으로 밀고 나갔다.

첫째는 대상의 확장이다. 창업 DNA인 ‘싸다'라는 가치를, 못난이 농산물 한 종목에서 장바구니 전체로 넓혀갔다. 오늘날 소비자는 일반 식료품을 동네 마트보다 미스피츠에서 10~50% 싸게 산다. 그런데 못난이 농산물 한 종목을 싸게 파는 것과 상온∙냉장∙냉동을 두루 아우르는 장바구니 전체를 싸게 파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의 일이다. 후자는 소싱의 재치가 아니라 그것을 실어 나를 사업의 '근육'이 받쳐줄 때에야 가능하다.

그래서 미스피츠는 그 근육을 실제로 길러나갔다. 상온∙냉장∙냉동 제품을 한 상자에 담아 문 앞까지 보내는 풀필먼트 시스템 — 미국에서도 몇 곳 안 되는 방식이다 — 을 구축했고, 상품의 크기∙무게∙온도에서 구매 빈도, 심지어 도착지의 날씨까지 수십 개 변수를 계산해 포장 순서를 짜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자체 냉장∙냉동 트럭 350대와 전국 50만 제곱피트가 넘는 물류 공간이 그 배송을 떠받쳤다. 좋은 콘셉트는 사업의 근육이 자랄 때 비로소 확장된다.

둘째는 약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확장이다. 미스피츠는 자체 브랜드 '오즈 앤 엔즈(Odds & Ends)'를 선보였다. 여기서 핵심은 없던 것을 새로 벌인 게 아니라 창업 이래 못난이를 싸게 사들이며 쌓아온 소싱 역량과 공급망을 그대로 지렛대 삼았다는 데 있다. 겉모습이 걸림돌이던 농산물을 잘라 얼리고, 소스로 만들고, 병에 담아 가공하면 '못생겼다'는 결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못난이라서 팔지 못하던 재료가 가공을 거치자 결점이 지워진 온전한 상품이 됐다. 원가 경쟁력은 유지한 채. ‘오즈 앤 엔즈’는 약 5천만 달러 규모의 새 매출 축으로 자랐고, 소비자들은 "미스피츠가 이번엔 이런 제품을 내놨다더라”라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미스피츠를 소비했다.

 

 

 

 

미완의 이야기가 주는 시사점

콘셉트의 종착지는 결국 플랫폼이다. 미스피츠는 자사 물류망을 다른 브랜드에 빌려주기 시작했다. '풀필드 바이 미스피츠(Fulfilled by Misfits)'라는 이름으로 고퍼프(GoPuff), 리틀 스푼(Little Spoon), 스몰스(Smalls) 같은 브랜드의 주문을 대행하는 사업을 펼쳐갔다. 냉장∙냉동 트럭 350대를 굴리며 총 마진은 40%를 넘겼다. 일반 마트가 20%,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츄이(Chewy)가 30% 안팎인 점과 비교하면 마진이 낮은 식품 산업에서 이례적인 숫자다.

사업의 무게 중심 또한 확연히 이동했다. 창업의 본류였던 못난이 농산물은 이제 전체 매출의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반 식료품과 물류∙마켓 플레이스 사업이 채운다. 라메시는 '식품계의 아마존', 적어도 '아마존 프라임'을 꿈꾼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물론 미스피츠는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한 브랜드이고, 기업 가치도 2021년 20억 달러에서 지금은 10억 달러 안팎으로 조정된 상황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완성된 성공담이 아니라 여전히 쓰이고 있는,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초창기 반짝이는 콘셉트가 사업으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논리다. 날 선 초기 콘셉트를 자신의 정체성과 어긋나지 않게 시기마다 다시 그려내고, 그 콘셉트가 고객의 만족으로 이어질 만큼의 실체를 끝없이 채워 넣는 것. 미스피츠는 이 과정이 성장을 동반한 생존의 필수 조건임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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