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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Brand

끄네끼_북유럽 액세서리인데, 한국 장인이 짠 머리끈

 

글 원민 / 브랜딩 전문가이자 원민브랜딩연구소 대표, 전주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초빙교수. 저서로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과 삶>,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는 힘, 브랜딩> 등이 있다.

 


 

노르웨이는 1998년 프랑스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에서 사라졌다. 돌아오는 데 28년이 걸렸다. 그사이 ‘엘링 홀란’이라는 공격수가 자랐고, 유럽 예선에서 혼자 16골을 넣어 조국을 본선에 올려놨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그의 첫 월드컵이었다. 첫 경기에서는 4-1 대승, 16강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두 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했다. 28년을 기다린 나라가 한 선수의 맹활약과 함께 사상 첫 8강에 올랐다.

그런데 그 영광의 순간, 의외의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홀란이 머리를 묶은 알록달록한 끈이다. 경기 내내 한 번도 고쳐 묶지 않던 그 끈에 사람들은 주목했다. 그 끈은 ‘끄네끼(KKNEKKI)’라는 제품으로, 실이나 끈을 뜻하는 경상도 말이다. 1987년 경남 함양에서 시작해 지금도 강원 춘천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인데,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회사는 노르웨이에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엘링 홀란이 착용한 머리끈이 화제를 모으며, 끄네끼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 출처 @kknekki

 

 

어쩌다가 국내에서 만드는 제품이 노르웨이에서 팔리게 됐을까? 그리고 세계적인 축구 스타 엘링 홀란은 왜 끄네끼를 선택했을까? 제품은 38년 내내 같았다. 달라진 점은 그 제품이 어떻게, 무엇으로 불리느냐였다.

 

 

30년간 이 물건은 ‘싸구려’였다

두지의 조현태 대표가 만든 이 머리끈은 얇은 실 60가닥 이상을 엮어 짠다. 특허로 쥔 독자 직조 기술이다. 조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요즘 기계는 시간당 100개까지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러 속도를 낮춘다. 속도를 높일수록 장력과 마감의 완성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이지만, 30년 가까이 한국에서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다수는 ‘홍보와 마케팅이 부족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브랜딩 관점에서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브랜딩은 표현에 앞서 어떤 인식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사람은 처음 보는 제품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의심한다. 낯선 것은 불안을 만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연결한다. ‘여기는 감성 카페’, ‘여기는 동네 밥집’, ‘이것은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머리끈’처럼 새로운 대상을 익숙한 정보의 틀 안에서 빠르게 해석한다. 그 찰나에 제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이름표를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붙은 이름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후 접하는 정보 역시 이미 형성된 인식을 기준으로 걸러진다.

끄네끼는 안 보인 게 아니다. 보였는데, 이미 ‘문구점 머리끈’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 인식 안에서는 60가닥의 실도 제품의 특별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인식이 제품의 가치를 먼저 규정했기 때문이다. 3,000원짜리 머리끈으로 인식한 순간, 특허나 장인정신을 이야기해도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본뎁은 첫 문장을 바꿨다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질문이 차례로 떠오른다. 먼저 “이게 뭔데?”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기존에 알고 있는 어떤 제품군에 속하는지 이해한 뒤에야 “그런데 왜 이걸 사야 하지?”라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간다. 앞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유사점(POP), 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차별점(POD)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음료를 "일종의 아이스커피인데, 얼음을 갈아 만든 음료"라고 설명한다면 '아이스커피'가 제품을 이해하게 만드는 유사점이고, '얼음을 갈아 만든다'는 특징이 다른 제품과 구별하는 차별점이다.

이 순서는 뒤집히지 않는다. 무엇이 특별한지 알기 전에 먼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38년 동안 끄네끼가 놓여 있던 인식은 ‘문구점 머리끈’이었다. 그 안에서는 특허도, 장력도, 60가닥의 실도 제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차별점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더해도 결국 ‘좀 비싼 머리끈’으로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2015년, 노르웨이 라이프스타일 기업 ‘본뎁(Bon Dep)’이 오슬로의 한 매장에서 이 머리끈을 발견했다. 본뎁은 제품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이름을 붙이고, 색을 고르고, 패키지를 다시 짜고, 판매 자리를 옮겼다. 헤어용품 매대에서 셀렉트숍 매대로 자리를 옮기고, 600~700가지 색을 갖춘 뒤 여덟 개를 한 세트로 묶었다. 그날 입은 옷에 맞춰 색을 고를 수 있게 되면서 단순한 머리끈에 ‘고르는 재미’가 더해졌다. 700가지 색을 늘 갖춰 두는 데 따르는 재고 부담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비용을 남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장벽으로 바꿨다.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액세서리인데, 한국 장인이 손으로 짠 머리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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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로 건너간 끄네끼는  700 가지 색을 갖춰 고르는 재미를 더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액세서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 /  출처 @kknekki / 이미지를 좌우로 클릭해 더보기

 

 

흔히 끄네끼를 ‘한국 전통 기술과 스칸디나비아 감성의 결합’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다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맥락 안에 제품을 먼저 놓고, 한국의 장인 기술로 차별점을 더했다. 만약 ‘한국의 전통 직조 기술’을 앞세웠다면 어땠을까? 2015년 유럽 소비자에게 그 말은 아무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낯선 것은 기억되기 전에 먼저 이해돼야 한다.

여기에 브랜딩의 냉정한 규칙이 하나 있다. 차별점은 그 자체만 강조한다고 선명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기준을 먼저 제시해야 무엇이 다른지도 분명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반대로 한다. 무엇이 다른지부터 열심히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무엇과 비교해 그 차이를 받아들일지는 정하지 않는다.

 

홀란은 모델이 아니라 주주였다

2024년 4월, 홀란은 본뎁의 소수 지분 주주가 됐다. 단순한 광고 모델 계약과는 달랐다. "끄네끼는 몇 년째 내가 쓰는 머리끈이고, 세계 최고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홀란의 말이다.

요즘 소비자는 광고를 볼 때 상품만큼이나 그 이면의 의도를 읽는다. ‘왜 이 유명한 사람이 이 제품을 들고 나왔을까?’라는 질문 끝에 광고 계약이 떠오르는 순간, 메시지의 설득력은 약해진다. 하지만 홀란과 끄네끼의 관계는 순서가 달랐다. ‘광고 계약’이 ‘제품 사용’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오랫동안 즐겨 쓰던 제품과의 인연이 협업으로 이어졌다. ‘설득’이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이유에서 출발한다면, ‘납득’은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에서 출발한다. 홀란과 끄네끼 사이에는 이미 그 납득을 가능하게 하는 맥락이 있었다.

본뎁은 빠르고 영민하게 움직였다. 월드컵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관심이 집중된 시점에 홀란 에디션을 선보였다. 출시와 동시에 완판됐고, 웹사이트 트래픽은 70% 증가했다. 대대적인 마케팅 캠페인도 없었다. 이미 존재하던 제품에 ‘홀란’이라는 이름과 적절한 타이밍을 더한 전략이 주효했다.

 

 

인식은 빌릴 수 있지만, 차별점은 빌릴 수 없다

지금 끄네끼는 전 세계 6,000여 개 매장에서 팔린다. 특허와 핵심 기술은 여전히 두지가 보유하고 있고, 상표권은 2023년 본뎁으로 넘어갔다. 한국에서 이름 없이 팔리던 물건이 노르웨이 브랜드가 돼 프리미엄 가격표를 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빼앗긴 사례로 볼지, 배울 사례로 볼지는 우리가 무엇을 읽어내느냐에 달렸다. 본뎁은 ‘스칸디나비아’라는 이미 형성된 인식을 빌려 썼다. 인식은 빌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인식을 뒷받침할 본질까지 빌릴 수는 없다. 끄네끼에는 38년 동안 춘천에서 쌓아온 기술과 60가닥의 실이라는,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경쟁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 사례를 자신의 브랜드에 적용하고 싶다면 ‘저들은 무엇을 했나’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저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앞의 질문이 방법을 향한다면, 뒤의 질문은 브랜드가 가진 자산을 향한다. 방법은 따라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을 가능하게 한 자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물건이 저절로 브랜드가 되지는 않는다. 이미 가진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 브랜드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볼 차례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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