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앞두고 나란히 서점가의 ‘여행’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두 주인공을 만났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광고인들을 찾아 세계 여행을 다녀온 김세영CⓔM, 남유럽의 다정한 사람들을 여행하고 돌아온 노윤주CⓔM. 두 여행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두 분 모두 내로라하는 대홍의 여행가들인데요. 여행지에서의 기록을 책으로 엮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노윤주CⓔM(이하 윤주) 제가 대학생 때는 블로그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라, 해외여행을 가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연락했어요.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빨리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제 책의 80%는 그때 적어놓은 일기예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는 먼저 책을 낸 친구들이 실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중간에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아니야, 네 글 재밌어. 계속 해봐’라고 말해준 것, 그게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김세영CⓔM(이하 세영) 전 회사에서 슬럼프를 겪으며 방황하던 때에 EBS 세계테마기행에 낸 시청자 출연 기획안이 당선됐어요. 그 때 주제가 ‘광고없는 나라 쿠바’ 였는데 시청률이 좀 잘나왔죠. 그렇게 여행을 몇 번 다녀오니까 주위에서 여행기를 좀 써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행기는 요새 출판사에서 비인기 종목이에요. 잘 안 팔리거든요(웃음).
문득 ‘다른 나라 광고인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슬람 광고회사도 경쟁 프리젠테이션 끝나고 회식할 때 술 마시나? 여성 광고인들도 히잡쓰고 출근할까? 아프리카 광고회사는 어떻게 작업하지? 그런 것들이 괜히 궁금해졌어요. 뉴욕에서 만났던 수십 명의 광고인들에게 당신네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꼭 가고 싶었던 나라의 친구들에게서 다행히 답장이 왔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죠. 누군가 세계 광고회사에 대한 탐방기를 써야 한다면 내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Q.책속에 잘 안 알려진 여행지가 많이 나오는데, 선택한 이유는요?
윤주 대학생 때는 가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 내가 모은 돈으로 갈 수 있는 나라에 갔었어요(웃음). 여행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끌리는 곳으로 가요. 따뜻한 곳에서 내내 수영하고 싶어서 남유럽으로, 웹서핑하다가 발견한 다이빙 사진에 끌려서 그리스로,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어서 스페인으로, 그렇게요.
세영 전 화려한 곳보다는 남들이 잘 안가는 곳, 소외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항상 관심이 갔어요. 그런 나라에 가서 내 경험을 글로 써내면 우리가 가진 편견을 좀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에도 열정적인 크리에이터가 있더라, 이슬람에도 더 깨어있는 광고인이 있고, 사회주의 국가에도 우리보다 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더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구요. 이 다음편으로는 쿠바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요.
Q.낯선 여행지를 다니다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었겠네요?
세영 이슬람 세계는 너무나 친절했던 반면에 비싼 항공료와 가이드비를 지불하고 도착한 남아프리카는 정말 위험했어요. 그때의 불안과 무게감이 책에서도 느껴지거든요. 현지 가이드 없이는 못 돌아다녀요. 그 위험한 도시에도 번듯한 광고회사가 있고 칸 광고제에서 상받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는게 아이러니하죠. 그곳의 CD들과 대화하면서 제 마음을 ‘쿵’하고 울리는 것이 있었어요. 나 또한 경제적인 잣대로 그들의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했구나 반성도 했구요. 그래서 책 후기 중에 아프리카 편이 배울게 많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고마워요. 다녀온 보람이 있구나 싶어서.
윤주 저는 반대로 첫 해외여행지가 인도와 터키여서 무슬림 문화권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어요. 아마 짐작이 갈 거예요. 이슬람 국가에 동양인 여성이 혼자 여행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그런데 따뜻한 남유럽에서 몇 달 지내면서 그걸 까맣게 잊은 거죠. 모로코는 이슬람 율법이 엄격해서 술도 못 마시고 해 지면 거리에 여자가 한 명도 안 보이는 나라인데… 마라케시에 도착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어요(웃음). 낯선 도시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쏟아지던 어마어마한 시선들이란.
Q.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언어적인 장벽은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세영 장벽이 많았죠. 저는 영문학을 전공해서 완벽한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거든요.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을 하면서 열등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언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 내 실력에 점수를 매기는 사람은 없단 걸 깨달았죠. 이렇게 말하지만 예전에 광고인들을 인터뷰했던 녹취파일을 들으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긴 해요(웃음).
윤주 스페인은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라서 현지에서 어학원을 다녔어요. 초반에는 내가 천잰가 싶을 정도로 실력도 늘고 현지인들하고 더듬더듬 대화하는게 재밌었는데 거기까지였어요(웃음). 제가 깨달은 건, 언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미사여구가 줄고 더 정확한 소통이 가능해진단거예요. 거짓말 하지 않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고요. 여행에서 나눈 대화가 여전히 생생한 이유는 단순할수록 더 강력해지는 언어의 힘 때문인 것 같아요.
Q.광고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윤주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장기적인 관계잖아요. 서로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지만 부대끼다 보면 그게 잘 안돼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반면에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짦으면 한 시간 동안 가장 좋은 모습만 주고받는 거예요. 가장 매력적인 내가, 가장 매력적인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까. 마치 인스타그램의 한 장면 같은 매력이 있죠.
세영 전 일상이 있기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있고, 여행을 했기 때문에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여행하다 보면 때론 낯설음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자극이 너무 없으면 삶이 단조로워지잖아요. 균형을 잘 잡아야겠지요.
Q.책이 나오고나서 반응도 궁금하네요.
윤주 사실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걱정됐어요. 위험한 나라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항상 걱정하셨거든요. 엄마에게 책이 나왔다고 말한 다음날 너무 재밌어서 새벽 두 시까지 봤다는 메시지를 받고 안도했어요. 책 속에 사적인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래도 가족이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겠지하는 마음. 참, 실뱅과 라우라에게도 덕분에 책이 나왔다고 메일 보냈어요. 같은 답장이 왔더라고요. 제 메일받고 울었다고. 많이 팔려서 영어와 불어로도 번역됐으면 좋겠다고.
세영 인터뷰에 응해줬던 광고인들에게 책이 나왔다고 하니까 자기 사진 나온 부분 캡쳐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프로필 사진으로 쓰겠다고(웃음). 제 책은 여행기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실은 광고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광고에 대해서 좌절하거나, 회의감을 가진 친구들, 후배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두분께 대홍기획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세영 두 번째 입사했기 때문에 더 큰 애정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다른 나라의 광고인들을 만나고 다시 대홍에 돌아온 이유는 가장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여기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이뤄나가고 싶습니다.
윤주 이렇게 오래 다닌 회사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친구가 많은 회사도 처음이에요. 시간에 쫓겨 일하다 보면 회사에서 인간적인 교류라는 걸 상상 못할 때가 있었는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이렇게 자주 회사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회사를 다닐 수가 있구나 했죠(웃음). 대홍에는 다정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말할까요? 다정한 사람에게 매일 다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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